레오나르도 다 빈치 노트북
레오나르도 다 빈치 글.그림, 장 폴 리히터 엮음, 김인선 외 옮김 / 루비박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 미국 국적의 한 소설가의 붐을 타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독특한 주목 끌기가 시작되었다. 상업성으로 물든 거대한 흐름에 발맞추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그의 작품들까지 선풍적으로 저널리즘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는데,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루브르박물관을 찾은 관광객들로 박물관은 사상 초유의 만원사태를 일으키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그 전에도 박물관의 명성답게 줄을 서야만 들어감은 당연했지만, 한 소설의 굉장한 히트로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인파로 둘러싸인 박물관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향한 대중의 관심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될 것이다.

그 소설의 성공이 상업적이라 힐난 할지라도 새롭게 추앙받기 시작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업적에 대한 맹목적인 겸허함은 옳은 방향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비록 무수한 소문과 억측 망상, 더불어 음모론과 함께 제기된 은밀한 그의 사생활까지 들쑤시는 대중들의 관심이 한 예술가의 삶을 흐르게 채색할 지라도 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참으로 바쁜 사람이었다. 화가라는 명성이 널리 알려지기까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며 안주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무던히도 노력했던 사람으로 보인다. 화가, 수학자, 과학자, 건축가, 조각가, 작가, 해부학자, 철학자…. 이 정도라면 이미 그의 삶이 어떠했을지 갓 초등학교를 입학한 어린 아이도 대번에 눈치 채리라 예상하지만, 그의 삶을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하고자 하는 분들이 있다면 그가 남긴 낙서들을 다르게 해석하면서 작품이 탄생하기 이전에 습작으로 그린 그림들과 메모들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천재라 칭송 받기 이전의 삶이 어떠했는지 간혹 궁금했던 차에, 5천 쪽이 넘는다는 그의 육필원고를 편안하게 해석한 책을 만나서 매우 기쁜 마음이다. 더욱이 그의 글은 왼손을 사용하여 역방향으로 써 내려갔고, 짧은 단어 몇 개만을 사용하여 문장으로 이어갔기에 해석하기에 상당히 난해하고 험난하다는 필자의 설명에 경외감이 들었고, 특유의 정자법까지 창안한 다빈치의 성의에 그가 얼마나 자신의 메모를 아끼고 은밀스럽게 보관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본서의 가장 큰 장점은 다빈치가 남긴 원고들을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과 더불어 미공개 회화작품들까지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교한 회회가 탄생하기까지 무수하게 많은 시행착오와 소위 ‘학문의 발전을 위한 수양’을 게을리 하지 않았을 것이란 점은 쉬 짐작 되지만, 그가 그토록 아끼며 돌본 원고들의 실체를 알게 되자, 더욱 더 숙연해짐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 된다. 르네상스를 이끌고 르네상스라는 거대한 시대를 휘어잡은 한 인간의 내면은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연구에 몰두해 있었다. 회화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예술의 한 분야에서 원근법과 인체해부학이란 학문의 이론을 파고들며 완벽하게 완성코자 정진한 다빈치의 예술을 향한 간절한 정성 또한 느낄 수가 있다.

방대한 양의 메모와 간결하지만 엄청나게 난해하다고 알려진 그의 육필 원고들은 분명 일반인이 쉽사리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빈치 본인이 아닌 이상, 아무리 뛰어난 암호해석가라 할지라도 당시 직접 원고를 작성하며 느꼈던 감정과 사상의 전반적이고도 정확한 내용들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해석하기란 불가능 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후 몇 세기 동안 전해 내려온 그의 필사본이 이토록 중요하게 인식되는 까닭은, 다빈치 내면의 사상과 인식들, 혹은 은밀한 사생활을 알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완벽하게 보존된 원고가 아니기 때문에 앞, 뒤 연결이 불안전한 문장도 다수이고, 어딘가 모르게 중심 틀이 무너진 듯한 인상을 받은 문장들도 여럿 있었다. 그렇지만 전반적인 학문에의 열망과 인간의 모습을 한 채 신의 영역에 도전한 인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깊고도 음습한 내면은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본서의 절반이상의 분량은 회화와 해부학에 대한 학술이론이고, 나머지는 다빈치의 문학론과 철학적, 윤리적으로 사유하는 일상사를 만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바로 문학론이었다. 유명한 화가 내지 건축가로만 알고 있었던 무지한 본인은, 다빈치가 이토록 위트 있고 해학적인 원고를 작성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문학론 제1장을 살펴본다면 아마도 깜짝 놀라는 분들이 많으리라 예상한다. 상당히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주제를 적절하게 다루고 있는 우화들을 읽으며 여느 시인 못지않은 작가로서의 소질까지 겸비했다는 사실을 발견 할 수 있다. 미술학도라면 당연히 배우고 있을 기본적인 이론들로 충실한 본서의 무게감에 압도되어 상당히 위축 받을 수도 있지만, 지인들과 주고받은 개인적인 편지나 가계부, 혹은 다량의 격언들까지 읽어보며, 다빈치의 평범한 한 인간으로써의 모습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놀랍고 놀라워서, 이제 더 놀라울 것도 없을 것처럼 여겨지는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러나 그를 알면 알수록 더욱 궁금증이 증폭되어 가는 것은, 알렉산더 폰 품볼트의 말처럼 자연의 통일이라는 관념 하에 인간의 감각들의 인상이 수렴되는 지점을 향하는 첫 출발점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정한 자연주의 지향의 예술가로써, 유일하게 신의 영역까지 도전하고자 인간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한 위대한 인간 레오나르도 다빈치. 과거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는 인간의 예술적 감각에 대한 위대한 선구자로서의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먼 미래의 후세까지 존경받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