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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의 여정
소냐 나자리오 지음, 하정임 옮김, 돈 바트레티 사진 / 다른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해매다 중남미 국가들에 살고 있던 70만 명의 주민들이 미국의 국경을 불법으로 넘어온다고 한다. 이렇게 엄청난 불법 이주민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혹독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중남미의 국민들은 일자리가 없어 미국을 찾게 되는데, 자식들을 떼어 놓고 일자리를 찾아 머나먼 타국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엔리케의 여정」이러한 불법이주민들의 힘겨운 삶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엔리케’는 ‘온두라스’라는 중앙아메리카 작은 나라에 살고 있는 소년이다. ‘언리케’가 다섯 살 때, 엄마 ‘라우데스’는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떠나오게 되고, ‘엔리케’는 엄마 없는 11년을 견디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미국에서 간간히 붙여주는 돈으로 학교도 다니고, 생활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엄마’라는 존재의 따뜻함이기 때문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참지 못한 ‘엔리케’는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기차여행을 떠나게 된다. 화차에 몸을 실어 엄마의 전화 번호 하나만 달랑 들고 머나먼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엔리케 외에도 많은 불법이주민들이 기차의 지붕이나 짐칸에 몰래 숨어 멕시코를 경유해 미국으로 떠나고 있었다. 그 길은 너무나 위험해서 사람들은 불안정한 기차를, ‘죽음의 기차’라고 부른다고 한다.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진 멕시코 최남단 주 치아파스는 짐승 같은 깡패들과 경찰들의 소굴이었다. 이 곳에서 몰매를 맞고 목숨만 간신히 건진 ‘엔리케’는 처음으로 이 여정의 위험함을 몸소 깨닫게 된다. 깡패도 무섭고, 이민국의 단손도 무섭고, 각 지역 주민들의 냉정함도 무섭지만, 가장 무서운 존재가 바로, ‘경찰’이다. 모든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경찰이 갈취를 하고, 강간을 하고, 모든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참으로 끔찍한 그 곳의 온갖 고난을 견디면서 ‘엔리케’는 엄마를 찾아가기 위한 여정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차마 눈 뜨고 볼 수도 없을 만큼 끔찍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죽음의 기차에 올라탄 수많은 불법 이주민들의 생사를 건 험난한 여정이 그저 믿을 수 없을 뿐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나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길 수 있을까? 경찰들의 횡포에도 쉬쉬하며 눈 감아버리는 당국의 태도는 단연 최고의 몰상식함이었다. 물론, 짐승보다 못한 나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천사의 마음처럼 따뜻한 주민들과 신부님도 있었다. 그들은 몇 일째 굶주리고 있는 불법 이주민들에게 식량을 제공하며, 친절을 베풀기도 했다.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견디며, 122일 동안 일곱 번의 헛된 시도 끝에 19,310킬로미터를 달려온 엔리케. 그토록 바라던 엄마와의 해후는 과연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뒷부분을 유추해보면서 책을 읽었지만, 바라는 만큼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포근한 감동만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이 작품이 픽션이었다면, 가장 멋진 마무리로 감동적인 엔딩을 장식할 수가 있었겠지만, 어디까지나 이 작품은 ‘논픽션’이므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말해야하기 때문이다.
엔리케의 가슴 아픈 여정에 동참하는 동안 머릿속이 참 복잡해졌다. 불법 이주민에 대한 미국의 너그러운 태도도 문제고, 불법 이주민을 강력하게 제안하여 타도하는 태도 역시 문제이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가난에 치여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의 최후의 선택을 막을 방법은, ‘라우데스’의 말처럼, 오로지 ‘넉넉한 일자리’ 뿐이다. 일자리가 풍부해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많다면, 엔리케처럼 엄마를 찾아 위험천만한 여행을 자초하는 아이들은 사라질 테니까.
그러나 이 문제가 결코 말처럼 이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의 부채 탕감이나, 일자리 창출이 그토록 간단하게 해결 될 문제라면 이미 지구상에는 모든 나라들이 잘 살고 부자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이대로 굶어 죽느냐, 다른 나라로 떠나 돈을 버느냐.’ 이런 좁은 선택의 기로에서, 지금도 수많은 엄마, 아빠가 아이를 혼자 남겨두고, 돈을 벌기 위해 먼 나라로 떠나고 있다. 과연 어느 길이 올바른 길인지는 그 누구도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맛있는 음식도, 축구공도, 나이키 운동화도, 곰 인형도 아닌, 바로 ‘엄마, 아빠’의 따뜻한 손길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