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 Shakespeare's Complete Works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윤기.이다희 옮김 / 달궁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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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세계 방방곡곡 널리 읽히는 유명한 러브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오기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토록 강경하게 주장할 수 있는 극단적인 정의에 반문을 제기하는 분은 아마도 없으리라 본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효시로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소설과 영화들이 수 없이 탄생했다. ‘죽을 만큼 사랑했다.’ 아마도 이 문장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닐까 싶다.

  웬만한 장비가 없고서야 도저히 불가능한 벽 타기. ‘줄리엣’을 보기 위해 발코니에 올라가 사랑을 속삭이던 ‘로미오’의 벽 타는 기술은, 거의 암벽 등반가 수준이다. 또한 조숙한 줄리엣은 어떤가? 만 열 네 살도 안 되는 어린 나이에 로미오를 보자마자, 곧장 한다는 소리가 ‘손바닥을 맞대는 것은 곧 입맞춤……. 사람을 보낼 테니 식을 올릴 시간을 알려주세요.’라는 당찬 포부를 밝힌다.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두 번 보고 나서 결혼식을 올리고, 죽도록 사랑하여 결국 죽음에 이른다.


  전 세계 여성 99%가 꿈꾼다는 바로 그 ‘운명’!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운명적인 사랑은 언제나 방해자들이 있기 마련이라는 법칙 아닌 법칙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이토록 순간적인 불꽃처럼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사랑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던 이유는 비극적인 결말 때문이 아니었을까? 만약 두 사람이 해피엔딩으로 끝나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결말을 맞이했다면, 분명 지금까지 이토록 수많은 패러디를 낳으며 유명한 작품으로 남겨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다시 읽어보는 내내, 나의 눈앞엔 ‘디카프리오’가 아른거렸다. 60년대 당시 ‘레오나드 위팅’이 제 아무리 조각미남이었다고 해도 나는 ‘디카프리오’세대였으니, 그 옛날 나의 로미오는 오직 ‘디카프리오’ 뿐이다. 그의 우수에 젖은 눈동자와 신들린 연기력을 보며 흠뻑 빠져 있었던 소녀 시절이 떠오른다. 책 본 김에, 영화도 다시 한번 보며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애틋함을 느껴봐야겠다. 그리고 차근차근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과도 조우해야지.


  덧붙여 번역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한다. 원문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번역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므로, 역자의 재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나 희곡 같은 경우는 한 문장 한 문장에 더욱 섬세한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전에 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었을 때는 굉장히 지루했다. 이른바 맛깔스러운 대사의 묘미를 찾아볼 수 없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시대에 맞게 번역 또한 다르게 탄생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윤기씨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지금 시대에 적절한 단어의 차용으로 원문의 맛을 더욱 멋지게 살린 아름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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