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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 ㅣ 밀리언셀러 클럽 58
조지 펠레카노스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액션, 멜로, 범죄 일색의 밑바닥 인생을 유희의 소재로 다룬 영상이나 도서들을 미국적인 색채의 상징으로 인정해주어야 할 듯 하다. 아니, 전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점잖은 척 분위기 잡는 마피아나, 인정사정 볼 것 없는 야쿠자, 그리고 미국의 갱단을 보노라면 허접한 밑바닥 인생들일 뿐인데, 그럼에도 묘하게 폼이 난다.
알량한 자존심 하나로 끝까지 가는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으며, 인간의 원초적인 말초신경까지 자극하는 선정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굳이 폭력의 역사까지 들추어내지 않더라도, 언제부터인가 ‘폭력’은 문화를 이루는 하나의 상징이 되어 젊은이들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마약과 범죄, 노골적인 성이라는 악의 원천을 베이스로 깔고, 선량한 경찰은 파트너와 함께 악당들을 소탕하는 판에 박힌 스토리…. 뻔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즐기며 넘어갈 수밖에 없다.
「살인자에게 정의는 없다. Right as rain」역시 흔히 보아오던 미국식 하드코어 액션물이다. 마치 일상처럼 다루어지는 마약과 매춘, 그리고 인종차별에 따른 흑백논란, 강자와 약자의 영역다툼 등이 철저하리만치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여기엔 어려운 두뇌게임도 없고, 그 흔한 반전 맞추기 놀이도 없으며, 사유를 기능케 하는 탁월한 메시지 또한 결여되어 있다. 다만 모든 시름을 잊고, 매력적인 두 주인공과 함께 신나게 한 판 뛰면 되는 것이다.
장소는 익숙하게 보아오던 뉴욕이 아닌, 워싱턴 DC. 전직 경찰관 ‘데릭 스트레인지’와 ‘테리 퀸’은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인연을 맺게 되었고, 합심하여 흑인의 인종차별에 따른 마약 관련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주인공 데릭은 전직경찰 사립탐정인데, 경찰 특유의 의협심은 어딘가에 출가시키고, 지극히 인간적인 본능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들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로 입이 험악하고, 얕은 지식으로 어둠의 세계를 경영하는 범죄자들이 대부분이다.
역자의 후기를 읽고는 묘한 웃음이 나왔다. 욕을 번역하는데, 이토록 당당할 수 있음이 부끄럽기도 하고, 자신감에 넘치기도 한 복합적인 고백에 나 역시 크게 동조했다. 번역서를 접할 때, 기껏 등장한다는 욕은 ‘젠장, 제기랄, X발’이 대부분인데, 역자는 실로 리얼한 욕을 선보이며(?) 번역에 충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첫 부분부터 등장하는 욕설들로 인해 인상을 찌푸리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으나, 이 정도의 비속어는 가장 가까운 친구나 선후배, 심지어 가족들의 입을 통해서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하물며 한국 조폭영화를 보면 어떤가. 대사의 절반이 출처 불명의 비속어의 파라다이스다.
거칠고, 투박하고, 몹시 리얼한 미국 문화의 한 귀퉁이를 체험한 기분이다. 성급한 두 주인공들의 애정 전선까지 들추어보면서 일종의 옅은 인간미도 발견하였고, 진실은 언제나 정의의 편이라는 단순 명쾌한 결론으로 마침표를 찍게 되어서 후련한 기분도 들었다. 다만, 지나치게 솔직하고 단순한 이야기를 읽은 후에는 짐짓 아쉬움이 남는다는 사실이다. 약점이 많은 소설이지만, 약점을 수긍시킬 수 있는 ‘조지 펠레카노스’의 리얼한 저력을 발견했기에 시원한 범죄 액션물을 기대한 독자라면 일단 만족 선에는 머무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