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도시 - 뉴욕의 예술가들에게서 찾은 혼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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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걷기라는 주제에 맞을까 싶어 고른 책읽기였습니다. 영국의 일요판 잡지 옵저버의 부편집장을 지낸 올리비아 랭이 30대 중반 사랑하는 이를 따라 뉴욕으로 이주했다가 하루아침에 실연을 하고 혼자가 되면서 겪어야 했던 힘든 시절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이었던가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The Lonely City>라는 원제목의 의미를 그대로 옮긴 <외로운 도시>는 도시가 외롭다는 것인지, 아니면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 외롭다는 것인지 모호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뉴욕의 예술가들에게세 찾은 혼자가 왼다는 것의 의미라는 부제를 보면 거대도시에 뚝 떨어진 이방인이 느껴야 했던 외로움을, 혹은 거대도시에서 외로움을 느끼면 살았던 예술가들의 삶을 살펴보겠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서울도 거대도시입니다만, 그래도 옛날부터 이리저리 맺어진 인간관계 속에서 부대끼면서 살아왔습니다. 뉴욕이나 LA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찾아간 적은 있습니다. 시카고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한 경험이 미국의 거대도시에 혼자 뚝 떨어진 경험이었습니다. 그때는 두려움 때문에 숙소 밖으로 나가보지 못했었고, 그 뒤로 학회 사람들과 함께 떼거리로 참석하였을 때는 밤거리도 두려워하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한밤에 빌딩 6층이나 17, 아니면 43층 창가에 서 있다고 생각해보라. 도시는 세포의 집합처럼 보인다.() 아주 사교적인 사람에게도 고독의 전율을, 격리와 노출이 복합된 불편한 감각을 전해준다.(13)”라고 시작하는 대목을 읽다보니 거대도시에서 홀로 밤을 맞을 때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으로서의 외로움이 절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런 느낌을 극복하기 위하여 고독에 시달리거나 그것을 표현해내는 것으로 보이는 예술잡품을 모아 보았는데, 특히 에드워드 호퍼, 앤디 워홀, 헨리 다거, 그리고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등 네 명의 미술가들의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그밖에도 클라우스 너미, 조시 해리스, 조 레너드, 피터 후자, 벨러리 솔라나스, 래리 크론 등의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차례로 등장합니다. 물론 그들 모두가 고독을 영구히 붙들고 산 것도 아니고, 바라보는 시각과 접근하는 각도도 저마다 달랐지만, 그들 모두는 사람들 사이에 놓인 간극에, 군중 속에서 고립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징 극도로 예민한 사람들이었다고 했습니다.


저자가 인용한 예술가들 가운데 에드워드 호퍼나 앤디 워홀은 그래도 익숙한 편이었지만 나머지 예술가들은 전혀 생소하였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용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들에 대하여 상당한 자료를 섭렵하여 소개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호퍼나 워홀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적지 않습니다.


도심 걷기와 관련된 대목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호포에게는 언제나 상상력을 자극할 실제의 어떤 계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어떤 장면이나 공간이 자신을 붙들 때까지 시내를 돌아다녔고, 그런 다음에 그것을 기억 속에 자리 잡게 했다.(63)” 저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그럴 일이 없겠습니다만, 사실 창작하는 분들은 소재를 구하기 위하여 다양한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가 개인적인 체험도 있습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외부인이 되고 적응하지 모사는 것이 만족감, 심지어 쾌감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고독으로부터 휴식을 얻는, 치유가 아니더라도 휴가 정도는 종류의 고독이 있다. 때로 나는 걸었고, 윌리엄스버그 다리의 철골 아래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이스트 강을 따라 걸어가사 은색으로 빛나는 유엔본부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한심한 나 자신을 잊을 수 있었고, 안개처럼 푸석푸석하고 경계선 없는 상태로 도시의 흐름에 실려 유쾌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75)”

아마도 그냥 지나쳐보기는 했겠지만, 내려서 걸어보지 못한 타임광장이 꽤나 조심해야 하는 장소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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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의 순간들 더 갤러리 101 1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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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술책>에서 소개된 책들을 따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질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 존 버거의<본다는 것의 의미>, 움베르트 에코의 <미의 역사><추의 역사>, 수전 손태의 <사진에 관하여><타인의 고통>, 오주석의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2>와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 작가가 소개한 62권의 책을 모두 읽지는 못했지만 나름 따라 읽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진숙의 <인간다움의 순간들>은 아내가 고른 책읽기에 동참한 책읽기였습니다. 이 책은 <더 갤러리 101>이라는 연작의 첫 번째 책입니다. 르네상스로부터 21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의 예술가 101명의 미술작품 속에 담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저자는 기획의도를 설명하면서 예술가들이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포착하고, 새로운 미학 속에서 인간의 풍부함을 드러낸 것이 미술의 역사다라고 하였습니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말대로 예술을 그 한 편 한 편이 저마다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인간다움의 순간들>에서는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에 이르는 시기의 예술가들을 다루었습니다. 첫 번째 등장하는 인물은 15세기 초의 화가 마사초의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이라는 그림에서 다룬 아담과 이브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태초의 인간으로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최초의 인간인 셈입니다. 낙원이라고 생각했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두 사람의 모습에는 낙원을 잃은 허무함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낙원에서 쫓겨나는 두 사람을 따르는 것은 그림자뿐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물론 중세 천년 동안 그려진 적이 없는 그림자를 마사초가 처음 그려 넣었다는 관점에서 보면 미술이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즉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자라났다는 데 저가는 방점일 찍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서 알게 된 무엇 역시, 낙원에서 쫓겨난 상실을 충분히 보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두 번째 이야기는 원근법에 관한 내용입니다. ‘지나친 성취욕이 일을 망치는 경우가 있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새로운 기법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익히고 발전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왜 그러는지도 모르고 몰두하게 되는 시점이 온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에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는 절대로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앞서도 마르셀 푸르스트의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저자는 보티첼리를 이야기하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끌어왔습니다. 예술적 감식안이 뛰어났던 샤를 스완이 오데트란 여인에게 빠져든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스완이 오데트를 만났을 때 보티첼리의 <모세의 일생>에 그려진 모세의 아내 세포라를 닮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두 번 읽고 있는 중입니다만, 그런 대목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저와는 달리 이 책의 저자는 차원이 다른 책읽기를 해왔구나 싶었습니다.


독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들렀던 트레차코프 미술관에서 감명을 받아 미학을 새로이 공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늦게 배운 도둑이 밤새는 줄 모른다는 우리네 옛말처럼 미술사와 미학의 영역에서 저자는 대단한 재능을 보여주고 계신 듯합니다.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책, 영화, 노래 등, 놀랄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끌어오는 이야기의 소재들을 자신의 생각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어 부럽다는 생각과 따라해 보고 싶다는 염원이 생겨납니다. 33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함께 인용한 예술가들의 작품까지 포함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등장하는 것도 놀랄만합니다. 그 중에는 이미 알고 있는 작품도 있지만 처음 대하는 작품이 대부분인지라 미술에 대한 앎의 폭을 넓히는기회가 된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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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의 눈물
조르주 바타유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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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의 설명대로라면 <에로스의 눈물>“20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철학과 문학, 경제학과 신비주의, 고고학과 예술사, 미학을 종횡무진하며 다채롭고 독보적인 사유를 보여 준 금기와 이단의 작가, 조르주 바타유의 마지막 저작이자 사상적 유서입니다. 바타유에게 에로티즘은 인간 혹은 자기에 대한 이해의 출발이자 종착점이었다고 합니다.


<에로스의 눈물>2개의 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에로스의 탄생은 초기 인류가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 벽에 그려놓은 동물의 모습들로부터 놀이와 예술 그리고 종교의 탄생을 유추해냈습니다. 라스코 동굴의 벽화는 프랑스 남부 지방에 있는데, 19404명의 젊은이들이 처음 발견했습니다. 바타유는 특히 라스코 동굴벽화에 매혹되었습니다. 창을 맞고 쓰러져 내장이 쏟아진 채 죽어가는 들소의 그림에서는 엄청난 생명력과 힘을 느꼈으며, 그 앞에 새의 머리를 한 인간이 죽어 나자빠진 모습에서는 들소의 신성한 힘을 마주한 인간의 무력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죽어버린 새의 머리를 한 남자는 성기가 힘차게 발기한 모습인데, 바타유는 이런 모습에서 죽음에 대한인식을 바탕으로 한 에로티즘 체험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단계에 이르는 최초의 조건은 노동이라는 것입니다. 노동에서 출발한 인간의 활동은 유희로 바뀌었고, 이어서 제의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에서는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시대와 기독교 시대로 나누어 에로티즘의 역사를 다루었습니다. 기독교 이전의 고대 세계에서는 전쟁, 노예 매춘 등의 사회적 변화 속에서의 종교적 에로티즘을 다루었습니다. 기독교 시대에서는 에로티즘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단죄하였는데, 이런 조치는 역설적으로 에로티즘에 강렬한 힘을 부여하였던 것입니다.


중세 기독교 시대가 지난 다음에는 프랑스의 리베르티나주와 함께 시작한 시대적 변화를 논하는데, 사드 고야, 질 드 레, 에르제벳 바토리 등을 비롯한 종세 종교화로부터 20세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의 에로티즘적인 회화들을 소개합니다. 마지막 부분 결론을 대신하여에서 바타유는 부두교 사제와 능지형을 당하는 중국의 죄수를 통하여 옛 희생제의를 다시 소환해냅니다. 저자는 에로티즘이 현실적 질서와 타협함으로써 신의 축복을 받는 유용한 성이 아닌, 종교 이전의 죽음의 불안이라는 악마적양상이라고 보았습니다.


1부와 2부의 중간에는 붉은 색종이에 라스코 동굴의 우물 벽화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에로티즘을 표방하는 대표적 예술작품의 도판이 실려 있습니다.


바타유는 라스코 동굴의 벽화로부터 영감을 받아 에로티즘에 천착하게 된 듯합니다. 흔히 에로티즘이 도덕과 연결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종교적 미신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는 불합리함을 깨닫게 된다고 머리말을 열고 있습니다. 에로티즘이라면 성활돌을 연상하게 되는데, 바타유는 인간의 삶에 내재된 욕망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악마적이라할 만한 활동을 하는데, 그것이 에로티즘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악마적이라는 말은 기독교와 연결된다고 생각하지만 라스코 동굴벽화를 보면 선사시대의 인류 역시 에로티즘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고 했습니다. 에로티즘은 죽음을 인식하고 근심과 걱정을 하게 된 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반적인 논지의 전개가 비약적이라는 느낌이 든 탓인지 쉬이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았습니다. 함께 읽은 유기환교수의 조르주 바타이유 평론, <조르주 바타이유, 저주의 몫.에로티즘; https://blog.naver.com/neuro412/223044962708>에서도 풀리지 않은 무엇을 풀어내지 못한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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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지혜 동서문화사 월드북 27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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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문화사에서 출간한 쇼펜하우어의 <세상을 보는 지혜>세상을 보는 지혜’, ‘인생을 생각한다’, ‘삶의 예지’, 그리고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등을 한 권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오래전에 읽었던 심강현님의 <시작하는 철학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에서 추천한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인생을 생각한다를 한 번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1788222일 독일의 단치히에서 유복한 사업가인 아버지와 문학활동을 하는 명문가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쇼펜하우어가 상인이 되기를 기대하여 프랑스어를 가르치고 유럽여행에도 함께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상점에서 실무를 배우던 중에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와 불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결국 괴팅겐 대학에 입학하여 의학을 공부하다가 한 학기 만에 철학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인생이란 어렵고 힘든 문제이지 즐거운 게 아닙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살기로 결심했습니다라는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합니다.


25살에 <충족이유율의 4가지 근원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제출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괴테와 친교를 맺게 되었고 함께 색채론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26살에는 <시각과 색체에 대하여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2년 뒤 출간하였고, 29살부터는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일체의 현상은 의지의 객관화라고 보는 세계관과, 인생의 고뇌의 원인은 아무리 만족시키려 해도 만족할 줄을 모르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바로 이 욕심을 없애야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염세론과 해탈론이 핵심내용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대중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던 모양입니다.


동서문화사 판의 <세상을 보는 지혜>에 수록된 4권의 저서를 요약해보면, <세상을 보는 지혜>17세기 스페인 예수회 수도사인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인생철학에서 305가지 항목을 뽑아 편역한 것입니다. 제목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아주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어 젊은 날 읽었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인생을 생각한다><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부록으로 쓴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으로 소개되어왔습니다. 쇼펜하우어가 세속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계기가 된 작품입니다. 이 책에서는 삶, 자살, 사랑, 여성, 교육, 죽음, 문예, 윤리, 종교, 정치, 사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삶의 예지>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자아, 재산, 명예, 나이 듦 등에 관한 권고와 잠언을 담았는데 이 무렵 쇼펜하우어는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물의 허무함과 공허함을 먼저 이야기하고, 세상의 거짓들을 관조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였습니다.


동서문화사 판에 실린 쇼펜하우어의 4개의 글은 발표순서가 아니라 그의 철학세계를 이해하기 쉽게 단계적으로 접근하기 위하여 배치하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세상을 보는 지혜>가 아주 쉽게 읽히고 이해되는 반면, 그의 철학의 정수라고 하는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가 가장 어렵게 읽혔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해석하여 계승하는 것으로 믿었다고 합니다. 당대의 철학자 헤겔과 대비되기도 하는데, 헤겔이 현학적인 문장으로 난해한 반면 쇼펜하우어는 명료하고 지시성이 있는 문장으로 후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도 합니다. 쇼펜하우어는 과학과 문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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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 - 완화의학이 지켜주는 삶의 마지막 순간
캐스린 매닉스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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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받은 종합검진에서 암이 의심되는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정밀검사를 해본 결과 암이 틀림없다는 확인을 받았습니다. 여러 가지 치료방법이 있습니다만, 현 상황으로는 수술을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같습니다. 수술을 맡아줄 선생님과도 어느 정도 이야기는 됐습니다만, 수술의 범위라거나 시기를 정하는 단계가 남아있습니다.


처음 암이 의심되는 소견이 나타났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싶었습니다. 조직검사를 하고, 검사를 하기 위하여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순간 아주 나쁜 형태구나 싶었습니다. 다음날 다시 보았을 때서야 제대로 챙겨서 볼 수 있었고, 행태로 보아서는 아주 좋은 경우는 넘어서 중간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 무렵 눈에 띄어 읽게 된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 수 없겠지만>은 다양한 상병으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른 사람들이 죽음을 맞는 과정을 지원해주는 완화의료 전문가의 경험을 담았습니다. 저자는 완화의료 분야엣 37년을 활동한 전문가입니다. 특히 인지행동치료법을 적용하여 환자들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자문을 해왔습니다.


저자는 죽어가는 사람들이 보이는 일정한 틀을 설명하고, 내 방식대로 죽음을 설명함으로써 죽음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남겨줄 무엇을 생각하고, 나아가 죽음을 초월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렇게 죽음을 맞는 사람들을 6개의 시선으로 설명합니다. 각장의 맨 앞에는 해당 주제에 대한 간략한 요약이 붙어있는데, 이렇게 짧은 요약에 대한 제목은 꽤나 유명한 노래에서 따온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역시 맨 끝에는 기왕에 소개한 사례를 중심으로 한 시선의 핵심을 요약해놓았습니다. 저자가 만난 다양한 환자들이 죽음을 맞는 모습을 읽다보면 죽어가는 과정을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삶의 끝이 다가올 때 경험하는 바는 매우 비슷하다고 합니다. 첫 번째 신호는 기력이 떨어져 피로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기운을 회복하기 위해서 잠을 자는 시간이 점점 늘어갑니다. 나중에는 아주 깊이 잠들어서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마침내삶의 끝에 이르면 늘 의식이 없는 상태가 됩니다. 동시에 호흡의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하비다. 때로는 깊고 느리게, 때로는 얕고 빠르게, 그러다가 아주 완만하게 호흡이 느려지다가 마침내 조용히 멈추게 된다고 합니다. 영화나 연속극을 보면 목이 푹 꺽이는 장면을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죽음을 맞는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위에 적은 죽음을 맞는 순간의 모습처럼 제가 시작한 투병일기에 옮겨 적어둘만한 좋은 글귀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투병일기에서도 짚었습니다만, ‘투쟁-도피 반응에 대한 설명도 있습니다. “우리 몸이 위험에 직면하면 아드레날린이 방출되어 더 깊이 숨을 쉬게 되고, 심박수가 상승하고, 근육에 산소공급이 촉진되어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긴강 상태가 된다.”라고 설명해놓았습니다.


잔병치레가 많은 사람을 삐걱거리는 문이라고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는 삐걱거리는 문이 가장 오래 달려있다.(Creaking doors hang the longest)라는 속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는데, 잔병치레가 잦은 사람이 건강에 신경을 더 쓰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산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광산촌에 왕진을 나갔을 때, 바라본 풍경을 묘사한 부분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내 옆 창문으로 옅은 녹색 베일 같은 봄이 강을 따라 숲을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풍경이 내려다보인다.(180)” 죽음을 예상하는 사람은 미리 가능한 선택지를 고려하여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어떤 돌봄을 받고 싶은지 계획을 세워둘 수 있다라는 대목도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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