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샘 해리스 박사는 <자유의지는 없다>를 통하여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을주장하고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자유 의지란 ‘앞으로 일어날 일련의 행동을 상상하고, 그 행동들을 선택한 자기 나름의 논리를 심사숙고하며, 이러한 심사숙고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을 계획하고, 모순된 욕망들에 직면하여 행동을 통제하는 역량의 집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53쪽). 이와 같은 자유 의지의 관념은 “1. 우리 모두는 과거에 자신이 했던 것과 달리 행동할 수도 있었다. 2. 지금 우리가 하는 사고와 행동의 의식적 원천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13쪽)”라는 두 가지 가정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는데, 저자는 이 두 가지 가정 역시 틀렸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이유로 저자가 인용하는 과학적 데이터는 “뇌파검사(EEG)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통해 확인한 결과, 스스로 내린 결정을 인식하기도 전에 뇌의 운동피질이 활동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려고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우리의 뇌에 있는 신경세포는 이미 우리가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신호를 내보내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뇌 신경세포가 내보내는 신호를 파악하면 인간의 행동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가 우리 행동의 의식적 주인이라고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실이 잘 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자유 의지는 저자가 이 책에서 연결하여 논하고 있는 것처럼 도덕, 법률, 정치, 종교, 공공정책은 물론 사적인 관계, 죄책감 등 우리의 모든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특히 도덕적 책임의 한계를 규정하는 사법적 판단을 함에 있어 자유 의지의 개념이 분명하지 않다면 우리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저자는 인간의 폭력성을 나타내는 다섯 건의 살인사건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모두 젊은 여성인데, 네 살배기 사내아이가 장전된 아버지의 총을 가지고 놀다고 오발하는 바람에 젊은 여성이 사망한 경우, 학대를 받고 있는 열두 살짜리 사내애가 자신을 괴롭히는 젊은 여성을 총으로 쏘아 죽인 경우, 유년기에 학대를 받았던 젊은이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간 젊은 여성을 쏘아 죽인 경우, 별다른 문제없이 성장한 젊은이가 그저 재미있다는 이유로 젊은 여성을 쏘아죽인 경우, 별다른 문제없이 성장한 젊은이가 별다른 이유없이 젊은 여성을 쏘아 죽였는데, 그 청년의 뇌의 전두엽에 종양이 발견된 경우 등입니다. 개별 사례를 동일한 무게로 판단하여 죄를 물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가해자의 자유의지의 여부에 따라서 책임의 정도를 달리 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만, 자유 의지의 존재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라고 한다면 이들 모두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저자는 “자유 의지와 도덕적 책임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 중 하나는, 우리가 대개 처벌로 억제할 수 있을 만한 행동에 한해서만 사람들이 그런 특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것이다. 나는 당신이 도저히 통제하지 못할 행동에 대해 당신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73쪽)”고 적고 있는 점을 참고할 만 합니다.

 

결론부분에서 저자는 “우리가 자유 의지를 경험한다는 것은 대단한 미스터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81쪽)”라고 적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행위에 대해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면, 이른바 사회적 정의의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에, 아직도 많은 이들이 자유 의지가 없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거나, 그것이 가능하다면 니힐리즘과 절망을 불러일으킬 거라고 믿을 수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하면서 ‘자유 의지가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역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스캇 펙 박사 역시 자신의 환자가 자살한 사건을 두고 “그것은 하워드의 뇌에서 비자발적인 화학물질의 변화가 일어난 차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의식적인 선택이었다.(스캇 펙 지음, 이제 죽을 수 있게 해줘, 122쪽)”라고 적고 있습니다. 저 역시 우리가 인식하기 전에 신경세포가 활동을 하더라는 뇌신경생리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저자가 ‘자유 의지는 없다’는 결론을 도출한 것에 대하여 다소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뇌과학이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영역이 아직도 무한하다고 보기 때문에 뇌신경세포의 네트워크를 돌아서 우리가 인식하기까지의 시간은 특정 영역의 신경세포가 활성화되는 시간보다 늦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100쪽 정도의 짧은 책입니다만, 어떻든 인간의 자유 의지의 존재에 대한 좋은 가설을 바탕으로 한 철학적 접근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자의 이론을 뒷받침하거나, 이에 반대하는 주장이 나와서 좋은 토론의 장이 열리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7가지 설득력 - 대한민국 대표 멘토 7인 심층 보고서
이성민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직 총리와 장관을 임명하지 못하고 있으니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다고 할 수는 없는 묘한 상황입니다만,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을 마치고 공식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2012년은 우리나라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치러진 해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정권의 향배에 더 관심이 많았겠지만, 정치 이외의 분야에서도 국제 정세, 남북 관계 등등 다양한 이슈가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책은 보통 꾸준하게 읽힌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사회적 이슈에 따라서 책읽는 이들의 관심이 부침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년전에 광우병을 주제로 한 책을 냈지만, 관심들이 2008년 같지 않은 탓이었는지 반응이 시원치 않은 것 같습니다. 새로 준비한 원고 역시 도서시장에서 반응을 얻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한 탓인지 나서는 출판사가 없어 아무래도 책상서랍 속에 처박히게 될 것 같습니다.

 

이성민교수님의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7 가지 설득력>은 독자에 따라서 평가가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2년 대한민국의 역동성에 대하여 분석하고자 하는 저자의 집필의도는 이렇습니다. “2012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각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소개하고 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정치 분야에서는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경제 분야에서는 삼성전자의 이건희회장을, 사회 분야에서는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선출된 문재인 의원을, 문화 분야에서는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회장을, 사상 분야에서는 안철수 서울대 교수를, 외교 분야에서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그리고 국제 분야에서는 재미교포인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선정하였습니다.

 

저자가 선정한 일곱 분이 꼭 해당 분야를 대표하는 인물이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독자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동의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입니다만, 읽다보면 저자 나름대로의 기준을 감지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굳이 이 책의 시의성을 따지는 독자가 있다면 아마도 지난해 치러진 대선과정에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각각 사퇴하거나 패하면서 정치적으로 한발 물러선 상황으로 세인들의 관심이 줄어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일곱 분 모두에 대한 저자의 설명에 각각의 느낌을 적기에는 리뷰가 지나치게 길어질 듯하여 몇 분만 요약해보려 합니다. 먼저 박근혜대통령님에 대한 내용입니다.(취임식을 마치셨으니 공식 직함으로 적는 것이 옳겠지요) 저자는 최초의 여성대통령 후보로서 자리매김을 하면서 우리나라 정치역사에서 족적을 남긴 여성정치인들과 세계의 여성정치인들의 행적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2004년 총선과 2012년 총선에서 박근혜대통령님이 당에 기여한 역할을 재조명하고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선거캠페인의 슬로건을 내세운 만큼 “꿈꿨으면 이뤄라!”고 조언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경제분야의 이건희 삼성회장에 대한 설명에서 1995년 4월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던 이회장의 베이징 발언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정치판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점을 돌직구로 깨우치려했다는 것입니다.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두가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성이 벤치마킹하던 일본의 마쓰시다회장의 경영관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습니다. 글로벌 전자업계에서 삼성이 선두로 나갈 수 있었던 원인은 삼성전자의 상무를 지냈던 요시카와 료조의 <삼성의 결정은 왜 세계에서 제일 빠른가;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17508>에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특히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사람은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회장이었습니다. 가수에서 연예기획사를 세워 지금의 글로벌 한류를 일궈낸 그의 행적은 분명 독특한 점이 있었습니다. 저자는 우리나라 대중음악계의 역사에서 각각 커다란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는 김정구씨와 조용필씨의 업적을 정리하고, 우리나라의 대중음악과 연결되어 있는 일본의 대중음악계의 동향도 정리하고 일본의 대중음악이 세계로 확산되어나가지 못하고 국내용이 되고 말았던 한계도 짚고 있습니다.

 

나머지 네 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줄이려 합니다. 저자는 특히 대한민국과 일본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 나갈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일본의 차이는 시민혁명을 했느냐, 하지 못했느냐이다. (…) (그 차이는) 10년, 20년이 지나면 더 극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새와 스스로 알을 깨지 못한 새는 상상할 수 없는 차이로 나타날 것이다.(293, 294쪽)”라고 적고 있어 자못 흥미롭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학 공부법 - 통찰력을 길러주는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플의 성공신화가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스티브 잡스의 부재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누구보다 앞서 새로운 시대의 디지털 혁명을 구상하고 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첫째, 그는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 서있었다는 것을 꼽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인문학적 소양을 과학기술에 비벼내어 소비자의 감성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 성공비결이었다는 것입니다(월터 아이작슨 지음, 스티브 잡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443528).

 

스티브 잡스의 전기는 마침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던 인문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거나, 인문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인문학이 잘 나가던 때가 있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인문학이 어떤 학문인지 조차도 몰랐던 저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보면 인문학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인문과학(人文科學)은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이 경험적인 접근을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사변적인 방법을 폭넓게 사용한다. 인문과학의 분야로는 철학과 문학, 역사학, 고고학, 언어학, 종교학, 여성학, 미학, 예술, 음악, 신학 등이 있으며, 크게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요약되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인문학이 다루는 영역이 광범위하다는 생각과 함께 저는 아직도 개념정리조차 못하고 있는 분야가 태반이구나 싶습니다.

 

최근 들어 인문학에 관심을 두고 책읽기를 시작했지만,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 닥치는 대로 읽고 보자는 식이었던 저가 인문학 책읽기의 방향을 정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바로 안상헌님의 <통찰력을 길러주는 인문학 공부법>입니다. 안상헌님은 대학 때부터 시작한 4,000여권의 책읽기를 통하여 세상을 살피고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연구하는 독서와 자기계발 전문가라고 합니다.

 

저자는 “제가 아주 무식하다는 건 알았지만,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지 몰랐어요. 배움을 얻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죠.(4쪽)”라는 서머싯 몸의 소설 <면도날>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책의 서문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길을 찾는 방법을 구하기보다는 무작정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방식입니다. ‘학문에는 왕도가 없다’는 경구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저처럼 말이지요. 그러다 보면 중도포기를 하기도 하지만 길을 찾는 방법을 저절로 익히게 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무작정 시작했던 책읽기를 통하여 찾아낸 인문학 공부방법을 관심있는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역시 공부에도 왕도는 있는 셈입니다.

 

사실 저는 자기계발서에는 그리 관심이 없는 편입니다. 쓰신 분의 경험이 녹아있는 자기계발서를 특성이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였을 때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있고,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를 읽다보면 오십보백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입니다. 그래도 “자기계발이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경청을 잘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인문학은 ‘마음으로 들어라’라고 말한다. 자기계발이 행동이라면 인문학은 성찰에 가깝다.(27쪽)”는 저자의 생각에 공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문학은 자신에게 필요한 문장을 스스로 찾아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직접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 찾고 발견하도록 유도한다.”라는 저자의 생각에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태도와 책 읽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점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철학, 3부에서는 문학 그리고 4부에서는 역사에 관한 대표적 저작들을 어떻게 읽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1부에서 저의 시선을 끈 대목은 “어떤 일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은 원리를 이해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원리를 알면 세상이 분명해지고 일이 수월해진다. 이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본질을 찾기 위해서 모색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접근방법이 있다.(83쪽)”라고 시작하는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정리한 부분입니다. 앞서 문학/역사/철학이 인문학을 대표하는 분야라고 말씀드린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방법, 그리고 전면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입니다.

 

첫 번째,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현상을 살펴보고 본질을 파악하는 훈련을 통하여 문제를 본질적 관점에서 해결하는 길을 쉽게 찾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본질적 접근법을 훈련하는 데는 역시 철학이 도움이 되는데, 그 이유는 철학이라는 학문이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원인이 무엇인지, 그 원인을 불러온 원인은 또 무엇인지를 추구하여 사건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사건과 문제를 발생한 순간의 상황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을 바로 잡아 시간을 거슬러 사건의 흐름을 파악함으로써 역시 사건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전면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발생한 사건 하나만을 두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과 연결될 혹은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부분을 동시에 바라보며 파악하는 것을 말하는데, 문학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주인공들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고 역시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서 현실사회의 개연성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고 합니다.

 

문학/역사/철학의 세 가지 영역 어느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는 점을 깨닫고 있지만 본격적인 책읽기가 늦었던 탓인지 역시 철학이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자는 철학자들을 공부할 때는 주요 개념과 핵심문장을 먼저 파악해두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철학사전 같은 책을 곁에 두고 새로운 개념이 나올 때마다 즉시 찾아보면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철학자 한 사람에 대하여 제대로 배우려면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그를 먼저 공부한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마침 저자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중심으로 하여 니체를 설명하는데 두 개의 장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최근 저도 우연히 니체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어 자연스럽게 <비극의 탄생/즐거운 지식/반그리스도교;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23753>를 읽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니체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는 고명섭기자님의 <니체극장;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70004>에서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저자는 니체가 철학자이자 문학가이고, 문학가이면서 또한 혁명가이기도 하다면서 철학과 문학의 경계는 없다고 적었습니다. 철학은 문학일 수 있고 문학은 철학일 수 있으며 역사 또한 그 자체로 문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니체의 저술들은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것처럼 물 흐르듯 읽힌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의 가장 권위있는 기호학자이면서 뛰어난 철학자로 꼽히고 있는 움베르토 에코 역시 이론서를 통하여 철학적 사유를 발표하기도 하지만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와 같은 장편소설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장미의 이름;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91200>의 경우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논리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경험주의 철학과 자신의 기호학 이론을 유감없이 설파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저자의 인문학 책읽기 안내에서 제가 놓치고 있던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모든 공부의 시작과 마무리는 자기성찰과 수양이다.(154쪽)”라는 요약입니다. 즉 공부의 시작이 자기성찰이라면 마무리는 수양인 것인데 배운 것을 반복해서 갈고 닦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면 그 공부는 죽은 공부가 된다고 콕 짚었습니다. 그리고 <논어>와 <맹자>가 바로 그런 공부에 가장 적합한 책이라고 추천하고 있습니다.

 

문학부문에 대한 저자의 안내에서도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저 역시 소설을 읽을 때 스토리 위주로 읽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단계를 넘어서려면 주인공의 변화과정을 느끼면서 읽는 것이라고 합니다. “문학을 읽을 때는 사람들이 변화되는 순간이나 갈등에 봉착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판단을 하는지를 잘 살피는 것이 좋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빨리 넘어가기보다는 갈등의 순간에 더 머무르면서 문장을 천천히 읽어야 한다. 그래야 문학을 느낄 수 있다. 문학의 목적은 느끼는 것이다. 느껴야 감동할 수 있다.(184쪽)”고 적었습니다.

 

최근에 저는 고전문학작품을 새롭게 읽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글에 끌려 읽는 경우도 있고, 그동안 마음속에 새겨두었던 독서목록이 떠올라 읽기도 합니다. 지난해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34300>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90738>을 완독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주요 일간지의 문예면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3037226).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사교모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아 헷갈렸던 기억 때문에 민음사에서 새로 나온 번역본에서 등장인물을 따로 정리해준 친절에 감사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이런 대작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관계도에 적어 넣으면 책읽기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내용만 파악하는 소설읽기는 국어시험공부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소설에서 인생을 배우지 못하면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201쪽)”는 저자의 일갈에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는 고백을 드리면서 저자가 정리하는 소설을 읽는 다섯 가지 이유를 소개합니다. 첫째, 인간군상을 만나는 재미, 둘째, 소설 속 인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 셋째, 역경을 이겨내며 자기 삶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통해 용기를 얻는 재미, 넷째, 스토리가 주는 재미와 감동, 다섯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점 등입니다. 그리고 이유에 따라서 읽는 방법도 달라져야 하는데 단순히 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과정에서 목적을 달성할 방법들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소설을 읽고 얻은 삶의 교훈을 자신의 문장으로 정리해보는 것이 좋은데, 그 이유는 소설은 메시지를 문장으로 정리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국 책읽기는 서평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서평을 쓰려면 줄거리 뿐 아니라 그 의미를 파악하여 소설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인생에 대하여 배울 기회로 삼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역사의 바닥에 흐르는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감을 잡는 것이므로, 역사책을 읽을 때는 늘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그 원인이 되는 사실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복답다단한 역사를 다각도로 살펴 사물을 꿰뚫는 통찰을 얻고 현상의 이면을 제대로 바라보자”고 인문학으로서의 역사를 자리매김하고 있는 김동욱기자의 주장이 새삼 떠오릅니다.[김동욱 지음, 독사(讀史);  http://blog.joinsmsn.com/yang412/12061426]

 

“인문학 공부를 통해 진실함을 배울 수 있다면 제대로 공부한 것이라 믿는다(327쪽)”는 저자의 마무리는 인문학 책읽기의 최종 목표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 인가에까지 생각이 이르게 하는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것은 물이다 - 어느 뜻깊은 행사에서 전한 깨어 있는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생각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재희 옮김 / 나무생각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잘 있었지, 예들아? 물이 괜찮아?”하는 질문을 받으면 무어라 답하시겠습니까? 장소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젊은이라면 멋있는 젊은이들이 많으냐는 질문으로 생각하고 대답을 준비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이든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어린 물고기들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면요? 당연히 “도대체 물이란 게 뭐야?”라고 중얼거렸을 것입니다. 물고기들끼리 주고받은 이 이야기를 사람에게 통역을 한다면 “잘 있었지, 예들아? 공기가 괜찮아?”라고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공기를 마시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기가 맑다 커니 혹은 탁하다 커니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를까요?

 

이 이야기는 ‘20세기 100대 영문소설’에 뽑힌 <한없는 웃음거리>를 쓰고 20세기 후반 가장 영향력 있고 창조적인 작가 중 하나라는 찬사를 받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2005년 5월 케니언대학의 졸업식에서 한 주제강연문을 시작한 에피소드입니다. 월리스는 물고기 이야기를 “지극히 당연하고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중요한 현실이 사실은 가장 힘들고 논하기 어렵다는 점(14쪽)”을 전하기 위하여 인용한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 대학에서 인문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에게 인문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새겨보라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즉 인문교육이란 학생의 머리를 지식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라기보다는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는 점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연자 역시 젊어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말이 진정으로 뜻하는 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해 선택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말을 전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조금 더 설명해서 “성인으로서의 삶을 그저 편안하고 순조롭게, 그럴싸한 모습으로 죽은 사람같이 살지 않는 방법, 무의식적인 일상의 계속이 아닌 삶을 사는 방법, 또한 자기 머리의 노예, 허구한 날 독불장국처럼 유일무이하며 완벽하게 홀로 고고히 존재하는 태생적 디폴트세팅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삶을 살아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66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면 저의 전공을 고려하여 보았을 때 저의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출근하여 책상 위에 올려진 슬라이드를 판독하여 진단을 결정하는 일이 매일 반복되는 것이었을 겁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일탈이라고 해보았자 새로 나온 사례를 책을 통하거나 다른 의사들의 경험을 공유하여 공부하거나, 임상의사들과 사례검토회의를 통하여 저의 진단을 확인하고 실수를 줄여나가려 노력하는 정도였을 것 입니가. 그런데 그런 생활을 십여년 지나오다가 어느 날 울타리를 넘어 세상 밖으로 나선 것이 결국은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다른 세상을 만날 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배우고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최선의 선택을 해온 것인데, 시간이 지나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곤 했던 것이니 이날 까지 도전이 반복되는 삶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리게 될 개인적 자유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자유가 있겠지만, “진실로 중요한 자유는 집중하고 자각하고 있는 상태, 자제심과 노력, 그리고 타인에 대하여 진심으로 걱정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능력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일매일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사고하고 하찮은 대단치 않은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128쪽)”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를 선택하는 것 또한 생각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의 몫일 것이므로, 진정한 교육의 진가는 우리 주위에 환히 보이는 곳에 있지만 그래서 오히려 잘 보이지 않는 숨어있는 현실, 매일 끊임없이 그 존재를 스스로 깨우쳐주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하는 그런 현실, 그런 현실을 알고 살아가는 법을 깨우치기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담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물입니다.”라는 함축적인 메시지로 담아낸 것이라 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 - 쓰레기마을 톤도에서 발견한 희망의 교육
이지성.김종원 지음, 유별남 사진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필리핀 톤도의 파롤라 마을은 세계 3대 빈민 도시의 하나로 꼽히는 곳이라고 합니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의 거대한 쓰레기산이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어 ‘쓰레기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지금은 올림픽 평화공원으로 변신한 난지도의 옛날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난지도에서 사시는 분들을 위하여 진료봉사를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쓰레기더미를 멀리 보면서 지나다닐 때는 몰랐지만 살기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인데도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아직 어렵게 살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은 형편임에도 <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을 쓰신 이지성, 김종원님과 사진작가 유별남님이 톤도를 찾은 것은 이곳에서 12년이 넘게 톤도 아이들을 보살피며 봉사하고 있는 한국인 김숙향 선교사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김숙향 선교사는 가난한 이들에게 빵만 주어서는 안 되고, 인간적인 삶과 미래에 대한 꿈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사업을 병행하는 것이 진정한 빈민구호 활동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2000년부터 톤도에 건물을 짓고, 가난과 무지 속에 방치된 톤도 아이들을 모아 교육하는 일을 해왔다고 합니다. 이런 김선교사님의 톤도교육센터가 재정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세 분이 도와드릴 방법을 찾기 위하여 방문했던 것인데, 정작 이곳에서 자신과 세상을 참되게 바꾸는 교육을 보고 감동을 받게 되었다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톤도 교육센터는 세 가지 특별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첫째, 배움의 기회에서 차별을 주지 않는다, 둘째, 우등생이 아니라, 인간을 만든다, 셋째, 동반성장 학습을 교육 철학으로 삼는다, 라고 합니다.

 

흔히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입사해 높은 연봉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 한국의 학생들과느느 달리 이곳의 학생들의 꿈은 소박하고 열정적인 것 같습니다. 특히 하버드대학으로 유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고 좋은 직장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던 톤도교육센터 출신 살로나 우바스는 자신이 공부한 톤도교육센터로 돌아와 적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후배들 교육에 헌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선교사는 살로나와 같은 28명의 리더를 길러냈다고 하는데, 그와 같은 일이 가능하게 된 데는 “리더십은 바이러스처럼 쉽게 퍼져나가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너희들이 리더가 되어 톤도를 바꿔나가기 시작하면, 너희들의 리더십을 지켜본 아이들 역시 엄청난 리더가 되어 세상을 바꿀 인재가 될 거야. 결국 너희들은 자기 자신을 바꾸는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거야(123쪽)”라고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의 필요성을 설파한 김선교사의 평소 지론이 이들에게 심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자들은 톤도에서 학생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치관교육이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그것은 바로 조선시대의 자녀교육법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교육기관인 서당에서는 천자문을 떼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 교훈적 내용이 담긴 계몽편을 가르쳤는데, 계몽편을 통하여 올바른 생활습관을 몸에 익히게 된 어린이들이 성장하여 세상을 바꾸는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물론 “필리핀 톤도의 많은 소녀들은 열세 살이 되기 전 가출을 한 후, 마음에 드는 이성과 동거를 하곤, 원치 않는 출산을 경험한다. (…) 톤도의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잃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133쪽)”라고 이곳의 실태를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톤도마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톤도교육센터의 영향이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 듯합니다. 그리고 톤도교육센터에서 좋은 결실을 맺고 있는 교육방법들을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에는 사회적 여건 등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분명 있다는 점을 적고 있는데, 저자들의 종교적 배경에서 나온 제안도 한계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발전에 엄청난 역할을 했던 주일학교가 1990년대0 들어서부터 쇠락하고 있다. 모두가 부모들의 욕심에서 비롯되었다.(272쪽)”는 주장은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점은 분명하지만 지나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는 느낌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가 지적하는 식탁에서 신문에 빠진 아버지, 핸드폰문자에 빠진 아이들, 드라마에 빠진 어머니라고 일반화시켜 우리네 가정의 문제를 진단하고 있는 것도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행 교육제도나 입시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우리의 전통교육에서 길을 찾을 수 있겠다는 저자의 생각도 고려할 가치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