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1 - 사라진 알베르틴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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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의 감시 아래 갇혀 살던 알베르틴이 마르셀의 이별통보를 듣고서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알베르틴의 모호한 행동으로 고통을 받던 마르셀이 이별을 통보하지만, 막상 다음날 아침 알베르틴 양이 떠났어요라는 프랑수와즈의 전언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마르셀이 알베르틴에서 선언했던 이별통보가 진심이었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을 시험하지 말라는 옛말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알베르틴 역시 마르셀과 사는 동안 우리 사이에 삶이 불가능해졌다는 점을 깨달았으면서도 이 말을 마르셀에게 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알베르틴에게 이런 감정이 생기게 된 것도 결국은 자신의 모호한 행적에 의문을 품은 마르셀이 보이는 집착에 질렸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마르셀에게 의혹을 불러일으킨 것 역시 알베르틴이었던 것 아닐까요?


알베르틴과의 만남과 이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작가는 감각의 형태로 비유합니다. “내가 발베크에서 알베르틴을 바라보면서 조금씩 미각과 후각과 촉각을 더해 가기 시작한 시절은 이미 오래되었다. 그 후 거기에 보다 깊고 감미로우며 정의할 수 없는 감각이 더해졌고, 다음으로는 고통스러운 감각이 더해졌다.(45)” 그 정의할 수 없는 감각이 무엇인지, 그 다음에 찾아온 고통스러운 감각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찌되었던 알베르틴이 떠난 뒤 마르셀은 친구 생루를 알베르틴에게 보내 돌아오기를 청하는 것으로 보아 이별하기로 작정한 것은 그녀 혹은 자신의 마음을 되짚어 볼 요량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왜 내게 직접 편지를 쓰지 않았나요? 그랬다면 매우 기쁘게 돌아갔을 텐데.”라는 내용의 전보를 보낸 것을 보면, 생루를 보낸 것이 오히려 알베르틴을 불쾌하게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알베르틴 역시 본격적으로 마르셀과 밀당에 나선 것이었을까요?


결국 마르셀은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어떤 조건이라도 좋으니 돌아와 달라고 전보를 보내고 말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전보를 보낸 직후에 알베르틴과 가까운 봉탕부인으로부터 알베르틴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르셀이 진심으로 원한다면 돌아가겠다는 편지가 뒤늦게 도착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알베르틴에 대한 기억이 엷어져가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나의 회고적인 질투로 인한 회한 역시 다른 인강에게서 볼 수 있는 사후의 영광에 대한 욕망과 마찬가지로 관점의 오류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알베르틴과의 이별이라는 엄숙하고도 결정적인 인상이 한순간 그녀의 과오라는 관념으로 대체되긴 했지만, 결국 거기에 돌이킬 수 없는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그 과오를 더욱 심화하고 말았다.” 사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차에 적신 마들렌을 입에 넣는 순간 잊고 있던 옛날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지나온 삶을 복원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마르셀이 불러낸 기억이 정확한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저의 경우는 나이가 든 탓인지 어렸을 적의 기억은 인상이 강한 것을 제외하고는 가물가물한데다가 최근의 일마저도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과거의 기억들 가운데 분명치 않은 것들은 나름대로 보완하여 새로운 기억으로 저장하게 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프루스트는 지나간 각각의 날들은 마치 가장 오래된 책들이 보관된 거대한 도서관에 놓인 아무도 찾으러 오지 않는 한 권의 책처럼 우리 마음 속에 놓여 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만, 과거에 대한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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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탄생 - 알파고는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훔쳤는가?
레이 커즈와일 지음, 윤영삼 옮김, 조성배 감수 / 크레센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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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해서 미국의 전산과학자이자 발명가이며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이 쓴 <마음의 탄생>을 읽어보았습니다. ‘알파고는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훔쳤는가?’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그가 발표한 <특이점이 온다>는 많은 논란을 불렀다고 합니다. 2045년에는 기계의 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예언을 담았다고 합니다.


<마음의 탄생>에서는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찾아 더 강력한 인공지능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전산과학자들은 지금까지 뇌과학이 밝혀낸 바를 토대로 하여 패턴인식 마음이론이라는 모형을 제시하였습니다. 이 이론은 음성이나 영상 등의 감각정보를 기계적으로 수행하는 인공지능을 구현해냈습니다. 앞으로는 추상적인 언어까지 처리할 수 있게 된다면 고차원적인 개념까지도 인식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저자는 이전에 쓴 <지능기계의 시대>, <21세기 호모 사피엔스> 그리고 <특이점이 온다>에 이르기까지 진화과정은 추상성의 수준이 더 높아지는 과정이며, 그 결과 진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진화의 산물이 지닌 복잡성과 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수확가속법칙을 세웠습니다. 이 이론은 생물학적 진화는 물론 기술적 진화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의 탄생>에서는 인지, 기억, 바판적 사고를 담단하는 뇌영역인 신피질의 기본적인 알고리즘을 설명하는 패턴인식 마음이론을 담았습니다. 기억이 만들어지는 생물학적 기전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우리가 오감을 통하여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을 일정한 패턴으로 인식하여 저장한다는 것입니다. 패턴을 인식하는 작업은 1957년 미국의 신경과학자 버논 마운트캐슬이 발견한 대뇌의 신피질에 있는 신경세포들이 기둥처럼 뭉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사람의 신피질의 면적은 2,200에 달하는데 약 50만개의 피질기둥(신경세포기둥)이 있다는 것이다. 높이 20.5제곱의 공간을 차지하는 피질기둥에는 대략 600개의 패턴인식기가 담겨있고, 패턴인식기에는 각각 100여개의 신경세포들이 담여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피질기둥에는 6만개의 신경세포가 담겨있고, 신피질 전체를 따졌을 때 패턴인식기는 총 3억개에 이르며 신경세포는 총 300억개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기억을 담는 기본구조에 대한 이해가 만들어졌는데 외부자극을 인식하여 기억으로 저장이 되고 저장된 기억이 어떻게 인출이 되는지 그 기전이 궁금해집니다. 이런 대목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기억을 구성하는 피턴의 리스트는 순차적이며 그 순서대로만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에 기억의 순서를 뒤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88)”


저자가 이 책에서 이야기하려는 핵심은 인간의 두뇌와 같은 기능을 하는 기계뇌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외부로부터의 정보를 수용하여 판단을 하고 행동에 이르는 과정을 기계적으로 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은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이 실용화된 것으로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단계는 인간과 같은 마음을 지닌 기계가 탄생할 것인가 하는 예측과, 기계가 인간처럼 개선된 능력을 가진 기계를 만들어내는 확장성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예측입니다. 과연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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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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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병리학을 처음 공부할 무렵에는 한 환자가 두 종류의 암을 진단받은 사례가 드물어서 사례보고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기대여명이 늘어나고 다양한 치료방법이 발전하면서 서로 다른 종류의 암을 진단받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세 종류의 암을 진단받은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아픈 몸을 살다>39세에 심실빈맥으로 심장이 멈추는 일이 있었고, 40세에는 고환암을 앓은 환자가 투병과정에서의 사유를 담았습니다. 예일대학에서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캘거리대학에서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아서 프랭크 교수입니다. 암으로 투병하던 시기에 장모님이 역시 암을 앓다고 타계하였다고 하니, 40세 무렵을 폭풍 속에서 보낸 셈입니다. 고환암을 진단받고 치료한 것이 1986년이니까 이제 36년 동안 심각한 건강문제는 없이 잘 지내고 있는 듯합니다.


<아픈 몸을 살다(2002)><몸의 의지로: 질병에 대한 숙고(1991)>의 개정판으로 짐작된다. <몸의 증언(1995)> 역시 자신이 겪은 질병에 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저자가 자신이 겪은 질병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이유를 위험한 기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질병은 기회이기 때문이라고 서문에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기회를 붙잡으려면 질병과 함께 조금 더 머물러야 하며 질병을 통과하면서 배운 것을 나누어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병이 가져오는 위험 중에 가장 명백한 위험은 경계를 넘어가 죽는 것인데, 이 위험을 피할 수 없는 날이 오고야 했습니다. 하지만 질병에 집착하는 것 역시 질병이 가져오는 위험인데 이는 피할 수 있는 위험이라고 하였습니다. 질병을 핑계로 자신이나 타인과 마주하지 않고 뒷걸음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질병에 계속 매달리지 말고 그저 회복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심장이 멎는 사건은 다행히 심장이 다시 뛰는 바람에 영구적인 손상을 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주치의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 몰랐다라고 합니다. 아마도 창졸간의 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심장마비에서 회복되는데 6개월 이상의 기간이 필요했고, 그동안 원인을 찾기 위하여 스트레스 검사, 혈관조영술 등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저자는 질병은 제약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최선의 경우라도 치료에 시간을 들여야 하고, 활동에 제한을 둬야 하며, 최악의 경우에 질병은 몸을 변형하고 손상하며 정신을 가둔다고 하였습니다.


심장마비를 겪고 15개월이 지날 무렵에는 다시 건강을 되찾았을 수 있었습니다. 이 무렵 자가검사에서 왼쪽 음낭에서 뾰루지 같은 것이 솟아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진료한 의사는 클라미디아 감염증으로 진단하고 항생제를 처방하였지만 증상이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비뇨의학과 의사도 암을 의심하지 못했지만 그가 소개해준 운동의학 전문의가 암을 의심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정세포 암이라는 고환암으로 진단되었습니다.


하지만 초음파검사를 한 의사는 환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의사가 지금 내게 거대한 종양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환자는 미래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제 경우는 암을 의심한 비뇨의학과 과장님이 조직검사를 시행하였고, 그 조직검사를 제가 직접 하였는데, 검체를 현미경에 올려놓는 순간 암을 발견하였고, ‘올 것이 오고 말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환암으로 진단되어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저자는 다양한 생각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질병은 싸워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 질병을 부정하는 사람과 인정하는 사람의 차이, 또 환자를 위로하는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듣기 등입니다. 앞으로 오랜 시간 이런 상황을 겪게 될 제가 참고할 사항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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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은 의사, 거짓말쟁이 할머니
바티스트 보리유 지음, 이승재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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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려고 결심한 의사가 있습니다. 그를 설득해서 자살을 막으려는 할머니가 만났습니다. 할머니는 그를 설득해서 1주일의 말미를 얻게 됩니다. 그녀의 설득이 통하면 그는 자살을 하지 않기로 합니다. 우선 젊은 의사가 왜 죽으려는지부터, 할머니는 젊은 의사가 죽으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부터 궁금해졌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면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득해야 하는지 답이 보일 듯합니다.


두 사람의 만남부터가 의문입니다. 먼저 택시를 잡은 손님을 거절하고 기다리던 택시 기사는 야회복을 입은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가 아내와 같은 향수를 뿌린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외과의사인 젊은이는 병원으로 가달라고 하지만 사라라는 이름의 할머니는 맛이 기막힌 튀김 빵을 먹으로 가자고 유혹합니다. “의사들은 말이야, 의술로 환자들 수명을 늘려주지. 그러는 동시에 대기실에서 죽치고 기다리게 하면서 수명을 깎아먹는다니까. 환자하고 약속 있어?(18)”라는 엉뚱한 질문을 퍼붓습니다. 이어서 당신에게서 관냄새가 풍긴다고 말합니다.


사실 젊은 의사는 아내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에 대하여 본인의 잘못이라고 자책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내 사후에 외롭다는 생각에 자살을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젊은 의사의 아내는 자신의 사후에 남편이 괴로워할 것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내가 떠나면, 그러니까 내가 당신 곁에 없을 때, 절망에 빠져 살지 않겠다고 맹세해줘. () 누군가 손을 내밀거든,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붙잡는다고. 꼭 약속해줘. 약속 안 지키면 죽기 전에 먼저 미쳐버릴 거야.(154)”라고 다짐을 받기도 합니다.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나야.’라고 말했을 때 목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자살을 분명 탁월한 선택이라는 것(27)”이 그가 세운 이론이었습니다. 평소 가깝던 가깝지 않던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 응대를 잘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라는 젊은 의사에게 30일 동안 말미를 주면 자살을 포기하도록 설득하겠다고 제안을 합니다. 밀고당기다가 결국 7일의 말미를 갖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묘 터를 미리 보여준다거나, 관을 미리 주문한다거나, 어린이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등 말고도 심지어는 살고 있는 집에 있는 집기를 미리 처분하는 등 죽음에 관한 사항을 미리 보여주지만 젊은 의사의 생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젊은 의사의 생각은 바뀌지 않은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제가 죽고 나면 정말 보고 싶을 거예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꽃을 사들고 아내의 무덤에 가서 헌화를 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전화가 걸려옵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사라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라면서 집으로 와주기를 청합니다.


사라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젊은 의사와 사라가 약속했던 성탄절에 두 사람 사이에 맺었던 협약이 거꾸로 진행된 것입니다. 사라는 젊은 의사의 아내와 암투병의 고통을 나눈 사이었습니다. 아내는 사라에게 남편을 부탁했던 것이고, 사라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여정이 필요했던 것인데 젊은 의사를 그 여정의 동반자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 어느 종합병원의 수련의가 쓴 이야기입니다. 프랑스의 의료문화와 우리나라의 그것이 다른 점이 있기 때문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죽고 싶은 사람과 단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사람이 만났을 때 오고갈 것 같은 이야기라는 생각과 함께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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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선고 모리스 블랑쇼 선집 1
모리스 블랑쇼 지음, 고재정 옮김 / 그린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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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병리의사입니다. 사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필자가 내리는 병리학적 진단은 진료의사를 통하여 환자에게 통보될 때는 죽음을 선고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생각이 이 책을 읽어보도록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모리스 브랑쇼가 쓴 <L’arrêt de mort>죽음의 선고인 동시에 죽음의 중지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합니다.


옮긴이는 죽음의 선고는 이상한 이야기일 뿐 아니라, 모든 것 속에서 이상함을 깨워내는 이야기이다(106)”라고 하였습니다. 옮긴이의 말대로 책을 읽고 나서는 물론 읽어가는 중에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상한 이야기를 읽었다는 느낌이 겨우 남았을 뿐입니다.


옮긴이에 따르면 1부와 2부로 나뉜 이 책의 1부에서는 J라는 여인이 죽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병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병과 이상한 죽음이 중첩된다는 것입니다. 2부에서는 자신이 만나고 바라보는 모든 것에 죽음의 기호를 덧씌웠다고 했습니다. 현실세계와 중첩되어 죽음의 공간이 생성되며, 그는 그 열린 무덤에 거주한다고도 하였습니다.


그나마 1부에서는 질병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피상적으로 이해되는 대목들이 있기는 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녀는 지나치게 병과 싸웠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어야 했다. 그런 그녀는 아직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마치 병이 건드릴 수 없는 사람처럼 변함없이 살고, 사랑하고, 웃고 시내를 돌아다녔다.(16)”라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주치의가 작가에게도 한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이미 이 년 전에 죽었어야 할 사람이므로 앞으로 남은 수명은 모두 덤으로 사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육 개월 시한부를 선언했는데 칠 년을 넘게 살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사실 중증환자가 얼마나 살 수 있는지는 담당의사의 개인적 경험이나 교과서에 나오는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산정하고는 있지만 딱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환자측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목도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병이 깊어 가면서 공포는 낮을 밤으로 바꿔 놓았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죽는 것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더 심각한 그 무엇에 대한 것이다.(19)” J가 의사에게 하는 이런 말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당신이 나를 죽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나를 죽이는 겁니다.(28)” 카프카가 그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2부의 경우는 이야기의 전개가 모호하고 상식 밖의 행동을 하기도 해서 혼란스러웠습니다. 작가가 거주하는 파리의 호텔방은 죽음의 공간이자 가장 큰 삶이 거주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화자는 낮에는 삶을 지속하지만 밤이 되면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입니다. 그런 대목입니다. “나는 들어가서 문을 닫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칠흑 같은 공간이 내 앞에 펼쳐졌다. 나는 그 어둠의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에 있었다. 이 어둠이 무서운 것임을 나는 인정한다. 그것 안에는 인간을 경멸하고 인간이 정신을 잃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무엇이 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87)”


블랑쇼가 말하는 죽음은 종말이나 소멸이 아니며, 언제나 죽음으로의 접근이다. 종말이나 소멸을 선언하지 않는 죽음이 어째서 공포를 가져다주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종말이 아니라 불가능성(세계의 불가능성, 존재의 불가능성)으로 인한 영원한 고통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아가 쥘 수 있는 확실성을 무너뜨리고 박탈당하는 기이함의 경험 때문인 것이다.’라는 대목도 새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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