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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왈츠 밀란 쿤데라 전집 4
밀란 쿤데라 지음, 권은미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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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에 쓰인 <이별의 왈츠>는 쿤데라가 체코에서 쓴 마지막 작품입니다. 마지막이 작품이라는 의미로 ‘에필로그’라는 제목을 붙인 이 작품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쏟아 넣었다고 합니다. <이별의 왈츠>에는 모두 일곱 명의 주요 등장인물이 우연한 계기에 서로 엮여들며 파국적 결말을 향해 이야기를 꾸려나갑니다. 계절적으로 조금 일찍 읽었더라면 좋았을 도입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가을이 시작되어 나무들이 노란색, 붉은색, 갈색으로 물들고 있다. 그래서 아름다운 골짜기로 둘러싸인 작은 온천 도시는 마치 화염에 휩싸인 듯하다.(11쪽)”

 

소련군의 진주로 경직되었을 것 같은 분위기를 감추는 신중함이 엿보이지만 낙태를 금지하고, 불임치료가 활발한 것으로 보아 임신과 출산을 권장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그런가 하면 남녀 사이의 관계는 자유로운 정도를 넘어서 문란한 분위기 아닌가 싶습니다. 이야기는 이 온천도시에서 열린 연주회의 뒤풀이에 우연히 참석한 루제나가 유명한 트럼펫주자 클리마와 하룻밤의 인연을 맺었는데 임신을 하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어느 가을날 월요일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금요일 루제나의 죽음으로 마무리될 때까지 5일 동안 온천도시를 무대로 일곱 명의 서로 다른 생각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클리마는 자유분방한 바람둥이지만 아내 카밀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진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무명이었던 자신을 선택해준데 대한 감사일까요?

 

상대의 본심을 잘 읽으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뉴스도 있었지만(http://blog.joins.com/yang412/13282315), 이들 커풀은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바람둥이들은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 같던데, 클리마는 적어도 죄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바람둥이는 아닌 듯합니다. “너무 짠 음식 한 입 한 입마다 그는 마치 카밀라의 눈물을 맛보는 듯 했으며, 바로 자기 자신의 죄의식을 삼켰다.(38쪽)” 클리마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온천도시로 와서 루제나를 만나 낙태시킬 것을 설득하고 그 과정에서 불임치료의사 슈크레타의 도움이 필요하게 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아마추어 드럼연주가인 슈크레타는 클리마와 공연을 제안하게 되고, 카밀라는 남편이 공연을 핑계로 바람을 피러 온천도시에 가는 것으로 짐작하고 뒤따르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은 미국 국적을 가진 사업가 베르틀레프가 클리마를 위해서 연 파티에 루제나를 부른 것이 계기가 되었던 것이고, 낙태를 종용하는 클리마와의 갈등으로 고민하는 루제나에게 사랑을 고백하여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역할도 합니다. 사실 루제나는 그녀를 쫓아다니는 연하남 프란티셰크와도 관계를 맺고 있어 임신한 아이가 클리마의 아이라는 사실이 분명한 것도 아니지만 답답한 온천도시를 탈출하기 위해서 클리마에게 기대려는 희망을 가지고 매달리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면 이야기의 커다란 축을 이루는 루제나-클리마-카밀라들은 서로를 속이려는 속셈을 감추고 있는 셈입니다.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야쿠프와 올가 역시 속이고 속는 체 하는 관계인데, 정치투쟁을 해온 야쿠프는 동지의 배신으로 투옥되었다가 풀려나 연금상태이나 자신을 배신했던 동지가 죽은 뒤에 그의 딸 올가를 돌보는 것으로 복수를 해온 것입니다. 올가는 야쿠프가 자신을 후원하는 입장에서 발전하여 여성으로 보아주기를 원하고 있지만, 연금에서 풀려난 야쿠프는 외국으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올가를 만나려 온천도시에 도착한 것입니다. 불임치료의사 슈크레타는 야쿠프의 친구이기도 해서 투옥되는 그를 위해 독약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그 독약이 결국은 꼬여든 상황을 일거에 정리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마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잘라 풀어낸 알렉산더왕처럼 말입니다. 불임의사 슈크레타 역시 불임환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자신의 정액을 사용하고 있어 윤리의식을 지키지 않는 황당한 의사인 것을 보면 등장인물 모두 거짓말에는 일가견이 있는 셈입니다. 사태의 원인을 제공하고 해결방안까지 제시하는 베르틀레프만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이 책을 옮긴 권은미교수님이 “낙태 문제와 독약사건을 중심으로 사랑과 질투, 권태와 탈출, 신념과 좌절, 죽음과 삶의 이야기가 교묘하게 엮이면서 핵심 인물들은 자기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밀란 쿤데라 읽기, 118쪽)”라고 요약한 것을 새기면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별의 왈츠>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날카로운 초승달을 가운데 품고 있는 커다란 나무의 모습입니다. 초승달의 이미지에서 아랍인들이 사용하는 검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역시 난마처럼 얽혀드는 이야기를 해결하는 방법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의 거짓말들을 치밀하게 배치해온 작가가 결말에서 비밀을 밝혀내지 않고, 루제나의 죽음으로 비밀에 묻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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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3-11-30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품을 읽기전 관련된 쿤데라읽기를 보면 좋겠군요^^

처음처럼 2013-12-01 10:16   좋아요 0 | URL
번역하신 분들이 해당 작품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로지 프로젝트
그레임 심시언 지음, 송경아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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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이야 서른이 넘어도 아직 청춘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만, 제가 결혼할 무렵만 해도 아홉을 넘기면 안될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른을 넘겨 동기생 백명 가운데 끝에서 네 번째로 결혼에 성공하기는 했으니 요즘말로 치면 갑갑한 청춘이었던 셈입니다. 플로리다주립대학의 짐 맥널티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파트너에 대한 숨은 본심을 아는 커플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282315). 지금도 그리 나아진 편은 아닙니다만, 여성의 마음을 잘 읽어내지도 못했던 것이 모태솔로를 벗어나기 힘들었던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잘 나가는 유전학 교수이면서도 39살까지 모태솔로를 벗어나지 못해 포기모드에 들어갔던 한 ‘남성의 아내찾기 프로젝트’를 다룬 달달한 로맨스 소설 <로지 프로젝트>입니다. 12월이 되면 시작할 예정인 예스24 블로거들이 이어가는 책나눔 이벤트에 내놓으려고 출판사에서 협찬을 받은 책이기도 합니다. 멜버른 출신의 컴퓨터 시스템 컨설턴트 회사를 경영하는 이 책의 저자 그레임 심시언은 정신의학을 전공하는 교수이자 로맨스소설 작가인 아내의 격려에 힘입어 시나리오 수업을 수강하면서 써낸 첫 작품이 바로 <로지 프로젝트>였다고 합니다.

 

이 책의 남자 주인공은 유전학을 전공하는 39세의 돈 틸먼 교수입니다. 잘 생기고, 큰 키에, 합기도로 단련된 탄탄한 몸매에다가, 더해서 요리도 잘 하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스펙을 갖추고 있는데, 그 나이가 되도록 짝을 구하지 못한 이유는 호주에 모방송국에서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짝> 같은 중매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아스퍼거증후군으로 놀라울 정도의 기억력에 일과(日課) 스케줄을 초단위로 나누어 살고 있는 빈틈없는 사나이, 즉 사회성없는 원칙주의자라는 결정적 약점이 금새 드러나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데이트로 발전할 수 있는 관계가 이루어지지 못해온 것이 속사정이었던 것입니다.

 

돈의 사회성은 이웃에 사는 동료교수 진과 그 부인 클로디아를 제외하고는 두 명의 친구만이 있었을 뿐이라는 점으로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친구는 의료과오로 숨진 누나와 치매로 요양원에서 지내는 남편을 둔 대프니인데, 돈은 대프니가 이웃사촌이 되면서 그녀에게 유전학을 가르치면서 가까워지고, 그녀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입원하고 결국 죽음을 맞을 때까지도 꾸준하게 돌보는 착한 남자이기도 합니다. 39이 된 돈이 결혼에 대한 꿈을 다시 펼치게 된 것은 대프니의 결정적 조언 때문입니다. 치매로 기억이 가물거리는 대프니의 78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식사자리에서 “돈, 당신은 누군가에게 멋진 남편이 될 거예요.(26쪽)”라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건넨 것입니다. 그녀는 ‘모든 사람에게는 짝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돈 역시 통계적으로 이 말이 틀림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아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돈의 ‘아내 프로젝트’의 핵심은 만남이 무르익어 결혼을 심각하게 고민할 무렵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문제적 요소들을 사전에 검증하기 위한 설문입니다. 설문의 내용은 약속 시간 늦는 여자, 아웃. 담배 피우는 여자, 아웃. 채식주의자, 아웃……. 무려 열여섯 장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설문을 대놓고 들이대는 뻔뻔함이 통할까요? 첫 시도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하는 돈의 ‘아내 프로젝트’를 곁에서 지켜보던 친구 진의 주선으로 새로운 지원자가 나섭니다.

 

29세의 바메이드로 등장하는 여주인공 로지 자먼은 ‘지속 가능한’ 해산물을 먹고, 식후 3초 불연이면 만년 재수없다는 전래의 말씀을 믿고, 약속 시간에 제때 나타나는 법이 없는 자유분방함을 보여 첫 만남에서 아내 후보에서 탈락시켜야만 했을 그녀와의 만남이 이어지게 된 이유는 그녀의 출생의 비밀에 있습니다. 로지가 10대 무렵 어머니가 죽자, 아버지 필은 그녀와 떨어져 살면서도 재정적 지원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생물학적 아버지가 따로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상처가 되어 아버지와의 관계가 덤덤해졌던 것입니다.

 

로지의 신세타령을 듣게 된 돈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로지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는 ‘아버지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돈의 ‘아내 프로젝트’와 로지의 ‘아버지 프로젝트’가 교묘하게 엮이면서 두 사람 사이는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면서 러브라인을 만들어갑니다. 과연 그녀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누구일까요? 마지막 순간에 의외의 인물이 등장하면서 헷갈리게 만들었지만, 로지의 아버지 후보들이 거론될 무렵 제게는 느낌처럼 다가왔던 후보가 결국은 가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좁혀지는 결말을 보고는 “예스”라고 마음 속으로 환성을 올렸습니다만, 여러분들도 나름대로 추리를 해보시는 재미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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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전집 11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민음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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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발표된 <소설의 기술>은 밀란 쿤데라가 소설에 대한 성찰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낸 첫 번째 책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소설에 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들과 대담, 그리고 연설문들을 엮은 일종의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것입니다. 먼저 에세이에서는 카프카, 플로베르, 조이스, 톨스토이, 세르반테스, 곰브로비치 등 최고의 문학가들의 작품을 인용하면서 소설쓰기, 나아가 소설을 통하여 서구의 문화적, 철학적 흐름과 전통, 그리고 인간 실존에 대해 성찰하고 탐구하는 방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문학 비평가 크리스티앙 살몽과 두 차례에 걸쳐 가졌던 대담의 내용을 정리하여 2부 ‘소설의 기술에 관한 대담’과 4부 ‘예술의 구성에 관한 대담’에 담고 있습니다. 특히 살몽과의 대담에서는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핵심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작품에서 역사를 어떻데 다루고 있느냐는 살몽의 질문에 대하여 쿤데라는 나름대로의 몇 가지 원칙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모든 역사적 정황들을 최대한 경제적으로 취급한다. 둘째, 여러 역사적 정활등 중에서 등장인물들의 실존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셋째, 역사적 연대기는 사회의 역사를 기록하지 인간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가장 광범위한 원칙은, 역사적 정황은 소설 속 인물에게 새로운 실존적 상황을 만들어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역사는 그 자체가 실존적 상황으로 이해되고 분석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개별 작품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에 대한 솔직한 답도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라고 내용에서 ‘덫’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삶의 덫이라는 것은 사람들도 항상 알고 있었죠. 사람은 원하지 않았음에도 태어났고 스스로 택하지 않은 육체에 갇혀 있다가 결국 죽지요. 그러나 세상이라는 공간은 영원한 탈출의 가능성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우리 시대에 와서 세계는 우리 주위로 갑자기 좁아져 버렸습니다. 세계가 덫으로 바뀌는 이러한 변화에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 1914년의, 이른바 세계대전이었을 거예요. (중략) 모든 재앙은 전 세계에 파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 따라서 우리는 점점 더 외부에 의해, 어느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고 또 점점 우리를 서로 닮아 가게끔 만드는 상황에 의해 결정되리라는 사실 앞에서 공포감을 한층 더 웅변적으로 표현해주죠.(44쪽)” 다시 새겨 읽어도 알쏭달쏭한 것 같습니다.

 

특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웃음과 망각의 책>, <불멸> 등의 작품 속에 숨겨진 리듬과 화성이라는 음악적 요소나 수학적 체계가 담겨져 있다고 하는데, 음악적 요소는 아무래도 음악가였던 아버지로부터 받은 전문적인 음악 수업을 소설에 접목한 것이라고 합니다. 문학과 음악과의 관계에 대하여 쿤데라는 “소설을 구성한다는 것은 음악처럼 여러 다른 정서에 공간을 배열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쿤데라의 작품에 감추어진 수학적 구조는 체코의 한 비평가가 쓴 ‘<농담>의 기하학’이라는 글에서 처음 지적된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수학적 구조에 대하여 “이러한 ‘수학적 질서’라는 것은 형식의 필요로부터 자연스럽게 오니 미리 계산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127쪽)”라고 답하는 것을 보면, 그의 문학적 천재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소설의 기술> 6부에는 ‘소설에 관한 내 미학의 열쇠어들’이라는 제목으로 쿤데라가 자신의 작품에서 좋아하는 단어를 일종의 사전형식을 빌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체코어로 쓴 <농담>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쿤데라가 가졌던 불편한 심정에 대하여 <데바>의 편집자인 피에르 노바의 권유로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단어에 대하여 쿤데라는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내 소설에서 인물들의 행위는 대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이루어지지지만 나는 내 소설에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말을 절대로 쓰지 않는다. 만들어진 단어인 이 말은 너무 젊고 역사적 뿌리가 없으며 아름답지도 않다. (중략)그래서 내 작중 인물들의 나라를 지칭하기 위해 나는 언제나 보헤미아라는 낡은 단어를 쓴다.(206쪽)” 쿤데라의 이런 설명을 인용하여 권오룡교수님은 보헤미아 문학론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고향에 정착해서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을 안고 태어난 사람들, 보헤미안들의 삶의 무대는 세계 로 흩어질 수밖에 없고 세계로 확대된 상상의 공간을 따라 펼쳐지는 것이 보헤미아 문학의 특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박성창 외 지음, 밀란 쿤데라 읽기, 158쪽)

 

막상 <소설의 기술>을 읽고보니 쿤데라의 작품을 읽기 전에 먼저 이 책을 읽고 그의 작품세계를 가늠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남습니다. 제 리뷰를 읽는 분들께서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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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 양장본
김승옥 지음 / 범우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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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방에는 대입 논술을 준비하면서 읽은 책들이 여전히 책꽂이 구석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무렵 아내는 아이와 같이 책을 읽었던 모양입니다만 저는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아이들이 무슨 책을 읽었는지 챙겨보곤 합니다.

 

김승옥님의 <무진기행>에 눈길이 갔던 것은 최근에 짙은 안개 때문에 일어났다는 헬기사고 때문이었을까요? 그렇게 읽기 시작한 김승옥님의 단편집 <무진기행>에는 ‘야행’, ‘서울․1964년 겨울’, ‘역사’ 그리고 ‘무진기행’이 실려있습니다. 오래된 판본이라서 책갈피가 조금 변한 느낌에 묵은 듯한 종이냄새가 이야기 속 분위기에 제대로 쏠려들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대체적으로 이야기는 서울에 둥지를 틀었던 70년대 초반보다도 10년 가까이 전의 시점입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세월이 요새보다는 느리게 흘렀던 것 같은 느낌이라서 작가가 묘사하는 서울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서울․1964년 겨울’의 이야기가 풀리기 시작하는 포장마차 분위기는 요즘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종일 병동실습으로 이곳저곳을 쫓아다니느라고 파김치가 된 몸으로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눈앞의 포장마차를 지나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대합을 하나 굽고 소주를 반병 시켜 한 잔을 마시면 온몸에 따듯한 열기가 퍼지면서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는 느낌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손님이라도 있으면 눈인사가 오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인사 끝에 그날 뉴스거리라도 화제에 오를라치면 판이 커지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포장마차에서 이루어진 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을 다룬 이야기가 바로 ‘서울․1964년 겨울’입니다. 나이가 든 탓인지 일과가 끝나면 바로 집에 들어갑니다만, 젊었을 적에는 공연히 명동이나 종로를 쏘다니곤 했습니다. 대학원에 다닌다는 안이라는 젊은이이가 사관학교 입시에서 미역국을 먹고 백수생활을 하는 김이라는 젊은이에게 “밤거리에 나오면 뭔가 좀 풍부해지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46쪽)”라고 묻는 것처럼 주체하지 못하는 젊음의 열기를 쏟아내기 위해서였을까요? 이런 젊은이들의 생생한 분위기와는 달리 뇌막염으로 죽은 아내를 해부실습용으로 팔았다는 사내는 나이가 얼마나 되었을까 궁금합니다. 월부 책장사를 한다는 사내 나이가 중년에 이르렀다면, 아내의 죽음으로 바닥이 난 삶의 희망을 되살려보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이제 버릴 세상의 마지막 모습을 젊은이들과 같이 지켜보고 싶다는 안타까운 심정이었을 것 같아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서울에 올라와서 처음에는 친척집에 얹혀살기도 하고, 하숙집을 전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역사’라는 단편이 그리고 있는 다양한 하숙집 분위기에 관심이 가면서도 생경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하숙집이 있는 동네에 따라서 하숙생의 성분이 다른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다닌 대학은 경운궁 앞에 있어 대학생들보다는 회사원들, 혹은 재수생들이 뒤섞여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응답하라 1994>처럼 대학가 하숙집처럼 하숙생들 사이에 공감대가 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쩌다 하던 하숙생 송별파티에서 계란껍질을 술잔삼아 소주를 나누어마시던 기억은 잊어버리지도 않습니다.

 

이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무진기행’ 이야기로 넘어가면, 일단 ‘무진’이라는 곳이 어딜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무진기행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같은 생각을 해보았을 것 같습니다. “광주에서 기차를 내려서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 무진은 바닷가에 가까운 동네지만, 정작 바다는 수심이 얕아서 항구가 들어설 수 없는 곳입니다. 무진이라는 곳이 무안, 광양 혹은 순천이라고들 하는데, 그 가운데는 작가가 성장한 순천이 가장 가깝다고들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광양이나 순천을 전라선으로 갈 수 있고, 무안은 목포로 가는 편이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김승옥님이 언젠가 인터뷰를 통하여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오는 가치파괴와 전통질서가 무너진 가운데 새로운 질서가 생기지 않아서 안개가 끼어 있는 곳이 바로 무진이다.”라고 설명한 것처럼 굳이 어디라고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의 설명은 소설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103쪽)”

 

내서 무진을 떠나 서울에서 얻은 것들은 무진에 남아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것들일까요? 그들 가운데 특히 인숙과의 요즘말로 치면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것은 단지 그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까요? 그런 그녀에게 자신이 살아온 길로 안내하겠다는 결정은 자신이 살아온 삶이 옳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인숙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보다는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준 아내에게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의문은 여전히 남는 것 같습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요즈음이라면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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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 삶이 때로 쓸쓸하더라도
이애경 글.사진 / 허밍버드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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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애경작가님의 전작이 <그냥 눈물이 나; http://blog.joins.com/yang412/12506027>였음을 생각해보면 제목이 참 절묘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전작에 이어 쓴 속편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보면 전작에 붙였던 프롤로그도 없이 바로 본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저의 짐작이 터무니없어 보이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냥 눈물이 나>에 ‘아직 삶의 지향점을 찾아 헤매는 그녀들을 위한 감성에세이’라는 부제를 붙였던 것은 어쩌면 방황하는 젊음을 어쩔 수 없어 지켜보며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이는 느낌이 들었다면,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은 이제 삶의 지향점을 정하기 위하여 방황을 멈추기를 조언하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언제 적 이야기였던지 기억도 가물거리지만, 서른 언저리는 아무래도 사랑이 중요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요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연인’이라는 코너에서도 보면 친구처럼 지내는 남녀가 서로를 이성으로 느끼는 순간을 애써 부정하는 장면을 코믹하게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랑은 미쳐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시나브로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작가는 ‘어디서부터 사랑일까’고민해볼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가 상정하고 있는 여러 가지 경우들 가운데, 저는 “너에게 시선도 못 주고 네 옆을 재빨리 지나갈 때부터 사랑(17쪽)”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헤어질 때 마음 아플 것을 생각한다면, 역시 “바래다 주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녀의 생각들을 읽어가다가 깜짝 놀란 대목이 있습니다. ‘기억의 속도’에 관한 글입니다. “기억 속에 있는 누군가를 끄집어내는 것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너를 만난 순간, 내 대뇌피질에 언제나 네가 붙어 있었던 것처럼 너를 기억해 내는 데 0.1초도 걸리지 않았고, 네가 한 말들과 약속들을 네 앞에 꺼내 놓는 데 단 1분도 지체되지 않았다.(68쪽)” 기억 속의 누군가를 끄집어내기 위하여 머리를 쥐어짜야 하는 저로서는 놀랍고도 부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젊어서 일까요? 아니면 타고난 기억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동생처럼 지내던 사람이 멀리 떠나던 날 공항까지 배웅을 나갔던 그녀는 그날의 느낌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물이 났다. 그건 슬픔이 오는 길을 돌아가느라 수고한 내가 흘린 땀방울이었을 것이다.(79쪽)”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슬픔을 애꿎은 땀방울을 핑계 삼는 것 같습니다만, 어쩌면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을 설명하기 위한 준비작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미있게도 그녀는 읽는 이로 하여금 골라보는 재미를 즐겨보라는 듯이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두루 꼽아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더 많은 경우를 생각해냈겠지만 아마도 지면관계상 일부만 소개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떻든 그녀가 내놓은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가운데 “온몸의 수분이 말라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가 마음에 듭니다. 생리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ㅋㅋ

 

요즈음 제가 자료를 모으고 있는 여행에 관한 그녀의 재미있는 생각은 완전 생각지도 못하고 덤으로 받은 선물 같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입니다. “전 세계 70억 명의 사람 중에 우리가 한 번이라도 인사를 나누게 되는 사람은 3천 명 정도이고 그중 150명 정도와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 그런 면에서 여행은 내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69억 명의 인생을 관람하거나 그들의 삶에 입장할 수 있는 낯설고도 붙임성 좋은 티켓이다. 중요한 건, 함께 롤러코스터를 타든 관람차를 타든 내가 그 티켓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121쪽)” 저자가 어디에서 들은 이야기인지 밝히고 있지 않아서 근거가 분명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믿거나 말거나 재미있지 않습니까?

 

책을 읽다보면 가끔 작가의 생각에 딴죽을 걸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클래식에 눈물 흘리다’에서 저의 못된 버릇이 튀어나옵니다. 클래식이나 구성진 판소리에 귀가 꽂히기 시작하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라고 적었는데, 제 생각에는 이미자씨의 노래가 귀에 착 감기는 나이가 돼야 진정 나이가 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초등학교 때부터 이미자씨의 팬이었던 저는 애늙은이였던 모양입니다.

 

재미있고 느낌 나는 사진들에 넉넉한 여백으로 마음에 여유까지 생기는 편집이 눈을 끄는 이애경작가님의 마음까지 끄는 생각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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