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버 - 강과 아버지의 이야기
마이클 닐 지음, 박종윤 옮김 / 열림원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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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강과 아버지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더 리버>가 리뷰어 이벤트를 할 때 꼭 당첨되기를 빌었는데 안타깝게도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래프팅으로 유명한 콜로라도 강을 지나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콜로라도 강의 래프팅에 관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읽고 싶은 책이었으니 읽었습니다. 기대했던 것처럼 콜로라도 강에서의 래프팅에 관한 내용도 충분히 읽을 수 있었지만, 더욱 감동이었던 것은 불과 다섯 살 어린 소년이 눈앞에서 급류에 휩쓸려 아버지를 잃고, 강을 떠나게 되지만 결국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열정이 숨 쉬는 강으로 돌아오는 과정이었습니다.

 

사실 콜로라도 강을 따라 지나가면서 래프팅 장비를 싣고 달려가는 차들은 많이 보았습니다만, 그들이 급류와 싸우는 장면을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귀국해서는 동강으로 떠난 부서 워크숍에 끝나고 간략하게 래프팅이란 무엇인가 정도의 체험해본 것이 전부라서 저자가 소개하는 콜로라도 강의 급류와 사투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주로 평야지역에 살아왔기 때문에 강을 둘러싼 비경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더 리버>의 주인공 가브리엘 클라크가 일기에 남긴 강에 대한 구절이 인상적입니다. “강은 신비롭다. 경이와 마법으로 가득하다. (…) 강은 거칠고 자유로우며 길들여지지 않는다. (…) 강은 살아있다. 강은 시간을 모른다. 그리고 온 세상을 돌아다닌다.”

 

카약을 타다가 폭포에서 떨어진 남자를 구출하려다가 급류에 휩쓸린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가브리엘은 아버지와 헤어져 캔사스에서 살던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됩니다. 커가면서 위험한 상황을 맞으면 위축이 되거나 혼자만의 공간으로 몸을 숨기는 버릇 때문에 학교생활이 쉽지는 않지만, 지미의 관심과 나중에 담임으로 부임하는 체로키인디언 콜링스워스 선생님의 애정으로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게 됩니다. 살고 있는 농장에서는 얼 부부의 세심한 배려가 어렵게 사는 모자 가족을 감싸줍니다. 열두살이 되는 생일에 얼 할아버지는 가브리엘에게 송어를 잡을 수 있는 낚시대를 선물하고, 같이 낚시를 하러 가면서 무서워하던 물과 친해지는 계기를 찾게 됩니다.

 

스무살이 되던 해에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지미의 권유로 콜로라도 스플래시캐니언으로 캠핑을 떠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도착한 날 밤에 혼자 일어난 가브리엘은 강 한가운데의 물살이 커다란 원을 그리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다가 점차 빨라져 깊은 구멍이 만들어졌다가 잦아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을 수 없이 무서운 장면이었지만 마음이 위로받은 느낌을 얻은 가브리엘은 자신과 강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형성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다섯 살 때 지켜본 엄청난 사건은 끊임없이 가브리엘을 고통스럽게 만들어왔던 것인데, 늘 함께 하던 아버지가 없다는 슬픔은 종종 공포로 돌변하곤 했던 것입니다.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 결코 평화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 홀로 있다는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 등입니다. 그의 공포는 이어 분노로 바뀌는데, 자신에 대한 분노, 아버지가 없다는 것에 대한 분노, 그 운명의 날에 아버지를 구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한 분노, 코앞에 거대한 폭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그 멍청한 뱃놀이꾼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렇게 젊었던 아버지를 빼앗아 간 강에 대한 타오르는 분노 등입니다.

 

한편 캠핑장에서 처음 만난 태비사는 가브리엘에게 각별한 관심을 표시하는데, 태비사의 권유로 가브리엘은 래프팅을 같이 즐기게 됩니다. 태비사는 근처에서 래프팅 캠프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강물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래프팅 코치 새뮤얼의 인도로 무사히 래프팅을 마치게 된 가브리엘은 강이 그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로서 가브리엘의 삶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결국 가브리엘은 태비사의 요청으로 여름동안 래프팅 캠프의 일을 도와주기로 합니다. 래프팅 캠프에서 만난 에즈라 영감과 태비사의 아버지 제이컵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결국 이들과 가브리엘 사이에 엮여 있는 인연의 끈은 놀라운 반전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더 이상 두려움과 슬픔과 원망의 사슬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의 자신이 아닌 미래의 자신을 붙들게 됩니다. 태비사의 도움으로, 그리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어 쓴 일기장에 남긴 강에서 사는 삶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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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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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 있는 서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쉽게 정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양한 모습을 숨기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진면목을 볼 수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숲에 들어가면 나무는 볼 수 있으되 숲은 볼 수 없는 그런 것 말입니다. 하지만 살고 있는 곳을 떠나 다른 도시를 방문하게 되면 그 도시의 특징이 혹은 인상이 쉽게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 고전을 읽는가; http://blog.joins.com/yang412/13094688>로 친숙해진 이탈로 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도시를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도시는 기억, 욕망, 기호 등 수많은 것들의 총체이다. 도시는 경제학 서적에서 설명하듯 교환의 장소이다. 하지만 이때 교환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언어, 욕망, 추억들도 교환될 수 있다. 내 책의 이야기들은 계속 형태를 취했다가 사라지는, 불행한 도시 속에 숨어 있는 행복한 도시들의 이미지 위에서 펼쳐진다.(211쪽)”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동방견문록>을 써 유럽 사람들에게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베네치아 출신 마르코 폴로(1254~1324)가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에게 자신이 방문했던 도시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읽다보면, ‘창문 높이에서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비행선과, 무더위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뚱뚱한 여자들로 만원인 지하철이 등장하거나, 공항이 등장하는 도시, 최신형 냉장고에서 아직 뚜껑을 따지 않은 캔들을 꺼내며 최신 모델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최근 소식을 듣는 도시가 등장하고 있어 읽는 이를 헷갈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칼비노가 그리고 있는 도시들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도시가 아니라 환상적인 가상의 도시들인 것입니다. 이 도시들은 기억, 욕망, 기호, 교환, 눈, 이름, 죽은 자, 하늘 같은 명사 혹은 섬세한, 지속되는, 숨겨진 등과 같은 형용사로 수식되고, 기하학적 대칭구조를 이루면서 비연속적인 시공간 속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도시가 가진 다양한 면모를 개별적으로 서술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나무와 돌들뿐인 길을 따라 며칠을 걸어 도시에 도착한 여행자는 기호를 통하여 사물을 인식하게 되고, 남겨진 기억의 흔적을 통하여 도시의 과거를 가늠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행자의 과거는 그가 지나온 여정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그가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자는 어떤 도시의 광장에서 자신의 것일 수도 있었을 삶을, 혹은 그런 한순간을 살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39쪽).

 

칼비노는 폴로의 입을 빌어 도시들이 특성을 잃어가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차이가 사라져가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각 도시는 다른 모든 도시들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도시들은 형식, 질서, 차이들을 서로 교환합니다. 무형의 먼지가 대륙을 침입합니다. 폐하의 지도책은 그 차이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름의 문자들처럼 특성들이 배합되어 있습니다.(174쪽)” 또한 도시의 이중성, 삼중성을 거론하기도 하는데, 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든 도시들은 죽은 자들이 사는 다른 도시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다른 도시를 곁에 두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산자들의 도시가 확장될수록 그들이 죽어 묻힌 무덤이 차지하는 공간도 덩달아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산자들의 공간은 언젠가는 소멸될 운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칼비노는 죽은자들의 라우도미아(묘지)와 산자들의 라우도미아는 마치 뒤집히지 않은 모레시계의 볼록한 유리병과 같아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55번째 도시를 마무리하는 글에서 폴로의 입을 빌어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고,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단정하고,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며, 둘째는,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인데,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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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직시하면 할 일이 보인다
밥 나이트 & 밥 해멀 지음, 신예경 옮김 / 알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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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로야구가 정규리그가 끝나고 챔피언시리즈가 진행되고 있어 야구를 좋아하는 국내팬들의 뜨거운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류현진선수가 소속된 다저스가 지구 우승을 차지하고 리그챔피언결정전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카디널스와 시작한 챔피언시리즈경기에서 다저스는 커쇼와 그레인키, 원투펀치를 투입하고도 타선의 불발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3차전에서는 우리의 류현진투수가 카디널스의 에이스 웨인라이트를 꺽었지만, 4차전에서는 놀라스코가 초반에 무너지는 바람에 1승3패로 코너에 몰리고 만 것입니다. 5차전에서는 다시 다저스 에이스 그레인키가 등판해서 승리를 거두고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있어 류현진 선수가 챔피언시리즈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투펀치를 투입한 다저스는 적지라고는 하지만 에이스를 내지 않은 카디널스에게 두 경기 모두 내주고 말았을까요? 어쩌면 정규전에서 막강 파워를 보였던 두 에이스를 지나치게 믿었던 것 아닐까요? 흔히 우리는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에 심리적으로 위축하게 만들어 위기를 자초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낙관주의는 위기상황에 적절한 대응조치를 사전에 마련하지 않는 실수를 초래하여 무너질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근거없는 낙관에서 벗어나 문제를 바로 보는 용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면 할 일이 보인다>는 바로 이런 점을 강조한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바로 미국 대학농구의 전설의 승부사 밥 나이트감독입니다. 밥 나이트는 통상 통산 902승을 기록하며 역대 최다승 감독 부문 2위에 오른 그는 ‘승리란 실수를 가장 적게 하는 팀이 차지하는 법’이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어, 매 경기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하여 팀의 결점을 파악하고 패배요인을 찾아 미리 제거하는 ‘부정적인 생각의 힘(The Power of Negative Thinking’을 강조한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노먼 빈센트 필 목사의 <적극적 사고방식; 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이론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현장에서 느끼고 만들어낸 철학이라고 합니다. 그의 생각은 책에서도 인용하고 있습니다만, 탈리 샤롯교수가 <설계된 망각; http://blog.yes24.com/document/7310686>에서 인류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낙관편향을 가지도록 진화해왔다는 주장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낙관편향을 가지고 있지만 ‘부정적인 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야 말로 장기적인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자질이다.(8쪽)’라고 했습니다. 장기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농구감독으로서의 그의 삶에서 얻은 철학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의 이런 철학은 늘 상황을 어둡게 보고 실패를 예상하라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부정적 요소를 놓치지 않고 주시하는 것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전향적 사고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 열한개의 장으로 구분된 저자의 생각들 가운데 눈에 띄는 것으로는 ‘현실을 보게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 ‘승리를 견인하는 것은 철저한 준비다’, ‘현실을 직시할 때 길이 보인다’ 등이 있습니다. 자신이 치른 힘든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 농구 혹은 스포츠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농구경기의 실제 상황을 많이 인용하고 있어 농구를 배우는 선수나 농구팀을 지도하고 있는 감독들이 읽으면 선수생활 혹은 감독생활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꼭 농구선수가 아니더라도, 조직의 리더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는데, 예를 들면 리더를 위한 십계명 같은 것입니다. 1. 현재의 상황에 만족하지 마라, 2. 있느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말고, 매사에 의문을 품으라, 3. 안심하지 말고, 언제나 걱정하라, 4. 내면의 문제나 나쁜 습관을 내버려두지 마라, 5. 증거 없이 행동하지 말고, 철저하게 점검하기 전에는 어느 것도 믿지 마라, 등입니다.

 

평소 운전하면서 자동차 계기판에 표시되는 휘발유계기가 바닥으로 떨어져야 주유소에 가는 제가 꼭 기억할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자동차 계기판의 주유 경고등이 항상 정확한 건 아니야. 집데 도착할 때까지는 기름이 충분할거야(78쪽)”라는 지나친 긍정적 사고보다는 “주유소를 찾기 위해 3킬로미터가 넘는 눈길을 걸어갈 때 이 말을 상기하라”는 저자의 따끔한 충고가 더 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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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여행하다 - 공간을 통해 삶을 읽는 사람 여행 책
전연재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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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미국을 두서없이 여행하면서 남겼던 메모를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사진과 같이 읽다보면 지금은 곁에 계시지 않은 선친 그리고 아내의 외조모님과 함께 했던 그때 생각이 납니다. 당시와 상황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때의 여행지를 회상하는 글을 써보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여행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행에 관한 책을 읽게 되면 글쓴이의 관점에서 여행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효과를 통하여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집을. 여행하다>는 건축가의 눈으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을 들여다보는 독특한 여행기입니다. 어쩌면 우리네가 생각하는 집은 금전으로 환산되는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장소로서의 의미가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여행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집들은 그 외관을 주마간산 식으로 훑어보는데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유명인사들이 살던 집들을 공개하여 그들이 살던 분위기를 볼 수 있기도 한데, 역시 사람 사는 온기가 없는 단순한 구경거리에 불과하여 진한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집을. 여행하다>에서 저자의 놀라운 경험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였던 친절을 통해서 현지인의 집에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발견하게 된 것 같습니다. “현지 사람들의 집에 머무는 여행을 택하는 것은 (중략)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들이 먹고 자고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훨씬 더 흥미롭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취향과 삶에 대한 이해를 한 뼘씩 넓혔다.(265쪽)” 나아가 새로운 즐거움을 하나씩 더하게 되면서 가급적 여행지에서 묵을 수 있는 집을 늘려나가게 된 것 같습니다. “현지인의 집에 머무는 여행을 하면서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는 함께 요리하여 나누어 먹는 것이다. 새로운 요리법을 배우거나 특별한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식사를 함께 한다는 행위에 들어 있는 의미 때문이다.(270쪽)”

 

이탈리아 카타니, 시라큐사, 파나레아, 피스토이아, 포르투칼 리스본,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벨기에 브뤼셀, 네델란드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함부르크 등, 유럽 8개국의 12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모두 열 세 곳의 집에 머물면서 느낀 점을 적고 있는데, 읽으면서 놀랐던 점은 그녀와 그녀를 맞은 집주인들의 열린 마음입니다.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초대를 받은 경우도 있고, 친구의 친구집을 방문한 경우도 있으며, 방문하였을 때 친구가 여행을 떠나게 되어 친구의 남편과 같이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집주인 남성과 둘이서만 지낸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친구의 남편으로부터 작업을 거는 듯한 멘트를 듣기도 했다고 하는데 범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집은 머무는 곳이지 소유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진 것이 적으면 그만큼 삶은 자유로워진다. 언제 어디로건 마음 내킬 때 자리를 털고 길을 나설 수 있다. 영혼에는 매임이 없다.(219쪽)” 즉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점입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미치 엘봄의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http://blog.joins.com/yang412/4706383>에 나오는 “타인이란 아직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일 뿐이에요.”구절에서도 같은 의미를 읽을 수 있습니다.

 

건축을 전공하는 분답게 밖에서 보는 집을 담은 사진은 물론 집안의 분위기를 잘 살리는 사진들을 다수 곁들이고 있어 마치 저자와 함께 그 집에 머무는 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열 세 곳의 이야기를 함축하는 책 속의 구절들을 인용하고 있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앞서 말씀드린 저자를 유혹하던 남편을 둔 친구의 집을 방문한 이야기에서는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오스먼드는 변한 것이 없었다. 그가 구혼을 할 무렵에도 그녀처럼 본심을 간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사벨은 그의 본성의 반쪽만 보았으며, 그것은 마치 지구의 그늘 때문에 일부가 가려진 달의 표면을 본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만월(滿月), 즉 인간 전체를 보게 된 것이다.” 지금 받아둔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친지의 집에 머물면서 조금은 불편한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만, 그런 경험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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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교육 1 펭귄클래식 8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윤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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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 읽은 책입니다. 유예진교수님은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 http://blog.joins.com/yang412/13111784>에서 프루스트가 평생 동안 플로베르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하면서 어머니에게 쓴 프루스트의 편지에서도 플로베르의 <감성교육>의 주인공에 자신을 비유하는 구절을 인용하였습니다. “엄마의 어린 프레데릭은(사실은 엄마의 하나뿐인 마르셀이에요. 엄마가 저와 프레데릭을 혼동하지만 말이지요.) 기침을 심하게 하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답니다.(120쪽)” 더 나아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감정교육>과 닮은 점이 많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감정교육>은 프루스트의 소설보다 반세기 전인 1840년부터 1867년까지 30여년 동안 프레데릭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파리의 사교계를 무대로 활동한다는 점, 주인공이 여러 여인들을 거쳐서 사랑이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 등입니다. 다만 각각의 주인공이 도달하는 결론에서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감정교육>의 주인공 프레데릭은 젊어서 가졌던 야망은 결국 실현할 수 없는 환상에 불과했다는 점을 깨닫고 단순히 추억거리로 간직하는 다소 비관적이면서도 염세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반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마르셀은 역시 사교계에, 그리고 사랑에 실망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산화하는 것으로 끝나는 개인의 기억을 모아 예술로 승화시키는 창조적 활동을 보인다는 점이 중요한 차이라고 하였습니다.

 

플뢰베르는 외과의사인 아버지와 내과의사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1821년 태어났는데, 법학을 공부하다가 문학으로 길을 글쓰기로 바꾸었지만, 그의 초기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호평을 받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1857년에 출간한 소설 <마담 보바리; http://blog.joins.com/yang412/13224230>는 풍기문란죄로 기소되었고, 이국적 소설 <살람보>는 고고학적인 사항의 외형적 묘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1869년에 나온 <감정교육>은 “내가 읽어본 유일한 역사 소설(에밀 졸라)”, “이 책에 전적으로 굴복한다(프란츠 카프카)”, “슬프고 희미하고 신비로우며, 인생 그 자체와 같다.(테오도르 방빌)” 등과 같은 문학계의 찬사를 받았지만, “왜 이 책은 괴테, 바이런, 샤토브리앙과 같은 작가에 의해 주도된 화려한 낭만주의적 전통을 따르지 않는가”라는 비판도 많았다고 합니다. 1864년 시작한 글쓰기 과정에서 “나는 파리에서 벌어지는 현대적인 삶에 관한 소설에 매달렸다. 난 내 세대 사람들의 도덕적 역사를 쓰고 싶다. 정확하게는 ‘감정적인’ 역사라 함이 옳을 듯…….”이라고 플로베르가 토로한 것처럼 <감정교육>에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랑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적는데 그치지 않고 당시의 정치적 견해의 충돌과 1848년의 혁명과 같은 극적인 사건들이 전개되는 과정에 등장인물들의 행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이 플로베르 사후에서야 인정받아 <감정교육>은 플로베르를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소설로서 평가를 받고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을 할 수는 있지만, 주인공 프레데릭의 사랑이 지나치게 변화무쌍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점을 꼭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법학공부를 하기 위하여 파리로 올라와서는 학업보다는 사교계를 기웃거리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고, 게다가 상대는 고향으로 가는 배안에서 우연히 만난 아르누 부인으로 오랜 기간 가슴앓이를 하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갑작스럽게 진전된다거나, 갑작스럽게 개입하는 사교계 여성 로자네트와의 동거, 그리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재계와 사교계를 주름잡는 당브뢰즈 부인과의 결혼설, 그런가 하면 고향마을의 이웃 소녀 루이즈 등등, 얽힌 여성들 사이에서 위태롭게 곡예를 하는 프레데릭의 애정행각을 뒤쫓아 가기도 숨 가쁘기만 합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결국은 이 여자, 저 여자 집적거리다가 종국에는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식으로 품에 남은 여인은 없더라는 식의 허무한 결말에 속았다는 느낌이 진하게 남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정치적 격변기에 등장인물들의 정치적 색깔이 감정 혹은 도덕적 행적과 잘 녹아들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당시의 도덕적 역사를 기록한다는 처음 생각에 집중하였더라면 읽기가 더 쉽지 않았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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