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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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고 있는 서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쉽게 정리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양한 모습을 숨기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이미 그 안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진면목을 볼 수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 숲에 들어가면 나무는 볼 수 있으되 숲은 볼 수 없는 그런 것 말입니다. 하지만 살고 있는 곳을 떠나 다른 도시를 방문하게 되면 그 도시의 특징이 혹은 인상이 쉽게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 고전을 읽는가; http://blog.joins.com/yang412/13094688>로 친숙해진 이탈로 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도시를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도시는 기억, 욕망, 기호 등 수많은 것들의 총체이다. 도시는 경제학 서적에서 설명하듯 교환의 장소이다. 하지만 이때 교환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언어, 욕망, 추억들도 교환될 수 있다. 내 책의 이야기들은 계속 형태를 취했다가 사라지는, 불행한 도시 속에 숨어 있는 행복한 도시들의 이미지 위에서 펼쳐진다.(211쪽)”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동방견문록>을 써 유럽 사람들에게 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베네치아 출신 마르코 폴로(1254~1324)가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에게 자신이 방문했던 도시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읽다보면, ‘창문 높이에서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비행선과, 무더위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는 뚱뚱한 여자들로 만원인 지하철이 등장하거나, 공항이 등장하는 도시, 최신형 냉장고에서 아직 뚜껑을 따지 않은 캔들을 꺼내며 최신 모델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최근 소식을 듣는 도시가 등장하고 있어 읽는 이를 헷갈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칼비노가 그리고 있는 도시들은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도시가 아니라 환상적인 가상의 도시들인 것입니다. 이 도시들은 기억, 욕망, 기호, 교환, 눈, 이름, 죽은 자, 하늘 같은 명사 혹은 섬세한, 지속되는, 숨겨진 등과 같은 형용사로 수식되고, 기하학적 대칭구조를 이루면서 비연속적인 시공간 속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도시가 가진 다양한 면모를 개별적으로 서술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나무와 돌들뿐인 길을 따라 며칠을 걸어 도시에 도착한 여행자는 기호를 통하여 사물을 인식하게 되고, 남겨진 기억의 흔적을 통하여 도시의 과거를 가늠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여행자의 과거는 그가 지나온 여정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그가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행자는 어떤 도시의 광장에서 자신의 것일 수도 있었을 삶을, 혹은 그런 한순간을 살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39쪽).

 

칼비노는 폴로의 입을 빌어 도시들이 특성을 잃어가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여행을 하면서 차이가 사라져가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각 도시는 다른 모든 도시들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도시들은 형식, 질서, 차이들을 서로 교환합니다. 무형의 먼지가 대륙을 침입합니다. 폐하의 지도책은 그 차이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름의 문자들처럼 특성들이 배합되어 있습니다.(174쪽)” 또한 도시의 이중성, 삼중성을 거론하기도 하는데, 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든 도시들은 죽은 자들이 사는 다른 도시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의 다른 도시를 곁에 두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산자들의 도시가 확장될수록 그들이 죽어 묻힌 무덤이 차지하는 공간도 덩달아 늘어나게 된다는 것이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산자들의 공간은 언젠가는 소멸될 운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칼비노는 죽은자들의 라우도미아(묘지)와 산자들의 라우도미아는 마치 뒤집히지 않은 모레시계의 볼록한 유리병과 같아진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55번째 도시를 마무리하는 글에서 폴로의 입을 빌어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고,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단정하고,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며, 둘째는,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인데,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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