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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여행하다 - 공간을 통해 삶을 읽는 사람 여행 책
전연재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오래 전 미국을 두서없이 여행하면서 남겼던 메모를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사진과 같이 읽다보면 지금은 곁에 계시지 않은 선친 그리고 아내의 외조모님과 함께 했던 그때 생각이 납니다. 당시와 상황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그때의 여행지를 회상하는 글을 써보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여행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행에 관한 책을 읽게 되면 글쓴이의 관점에서 여행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효과를 통하여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집을. 여행하다>는 건축가의 눈으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을 들여다보는 독특한 여행기입니다. 어쩌면 우리네가 생각하는 집은 금전으로 환산되는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집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장소로서의 의미가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여행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집들은 그 외관을 주마간산 식으로 훑어보는데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유명인사들이 살던 집들을 공개하여 그들이 살던 분위기를 볼 수 있기도 한데, 역시 사람 사는 온기가 없는 단순한 구경거리에 불과하여 진한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집을. 여행하다>에서 저자의 놀라운 경험을 읽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였던 친절을 통해서 현지인의 집에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발견하게 된 것 같습니다. “현지 사람들의 집에 머무는 여행을 택하는 것은 (중략)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들이 먹고 자고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훨씬 더 흥미롭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취향과 삶에 대한 이해를 한 뼘씩 넓혔다.(265쪽)” 나아가 새로운 즐거움을 하나씩 더하게 되면서 가급적 여행지에서 묵을 수 있는 집을 늘려나가게 된 것 같습니다. “현지인의 집에 머무는 여행을 하면서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는 함께 요리하여 나누어 먹는 것이다. 새로운 요리법을 배우거나 특별한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식사를 함께 한다는 행위에 들어 있는 의미 때문이다.(270쪽)”
이탈리아 카타니, 시라큐사, 파나레아, 피스토이아, 포르투칼 리스본,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빈, 벨기에 브뤼셀, 네델란드 로테르담, 암스테르담, 덴마크 코펜하겐, 독일 함부르크 등, 유럽 8개국의 12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모두 열 세 곳의 집에 머물면서 느낀 점을 적고 있는데, 읽으면서 놀랐던 점은 그녀와 그녀를 맞은 집주인들의 열린 마음입니다.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초대를 받은 경우도 있고, 친구의 친구집을 방문한 경우도 있으며, 방문하였을 때 친구가 여행을 떠나게 되어 친구의 남편과 같이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집주인 남성과 둘이서만 지낸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친구의 남편으로부터 작업을 거는 듯한 멘트를 듣기도 했다고 하는데 범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집은 머무는 곳이지 소유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진 것이 적으면 그만큼 삶은 자유로워진다. 언제 어디로건 마음 내킬 때 자리를 털고 길을 나설 수 있다. 영혼에는 매임이 없다.(219쪽)” 즉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점입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미치 엘봄의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http://blog.joins.com/yang412/4706383>에 나오는 “타인이란 아직 미처 만나지 못한 가족일 뿐이에요.”구절에서도 같은 의미를 읽을 수 있습니다.
건축을 전공하는 분답게 밖에서 보는 집을 담은 사진은 물론 집안의 분위기를 잘 살리는 사진들을 다수 곁들이고 있어 마치 저자와 함께 그 집에 머무는 듯한 느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열 세 곳의 이야기를 함축하는 책 속의 구절들을 인용하고 있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앞서 말씀드린 저자를 유혹하던 남편을 둔 친구의 집을 방문한 이야기에서는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오스먼드는 변한 것이 없었다. 그가 구혼을 할 무렵에도 그녀처럼 본심을 간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사벨은 그의 본성의 반쪽만 보았으며, 그것은 마치 지구의 그늘 때문에 일부가 가려진 달의 표면을 본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만월(滿月), 즉 인간 전체를 보게 된 것이다.” 지금 받아둔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친지의 집에 머물면서 조금은 불편한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만, 그런 경험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