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이런 이야기를 꿈꾸어왔다.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위대한 인간이 등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눈부신 이야기를 누구나 경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두 가지 주제, 바로 삶과 죽음을 ‘특별한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것은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작가는 이 어려운 작업을 아주 능청맞고도 사랑스럽게 해낸다.
삶과 죽음 사이에 들어찬 모든 문장에 좀처럼 마침표를 찍지 않음으로써,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잠시 휴식하기 위한 쉼표만을 사용하면서 죽음과 삶의 과정이 결국 하나의 끝나지않는 문장 속으로 들어오도록. 이 이야기 속에서 삶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은삶을 밀어내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무지갯빛 색실로 거대한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것처럼, 작가는 삶 속의 죽음, 죽음 속의 삶‘이라는 아름다운 벽화를 천의무봉의 손길로 직조해낸다. 이 이야기와 함께하는 순간, ‘이토록 가까운 삶‘과 ‘저토록 머나먼 죽음‘이 서로의 손을 붙잡고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왈츠를 추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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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의 위기
한병철 지음, 최지수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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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이야기다. 서사적 동물animal narrans 인 인간은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서사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이야기를 전제한다.
이와 반대로 스토리텔링은 오로지 한 가지 삶의 형식, 즉 소비주의적 삶의 형식만을 전제한다.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다른 삶의 형식을 그려낼 수 없다. 스토리텔링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소비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지각과 현실에는 눈멀게한다. 바로 여기에 스토리 중독 시대 서사의 위기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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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를 창간한 이폴리트드 빌메상Hippolyte de Villemessant은 정보의 본질을 다음의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우리 독자들은 마드리드에서 일어난 혁명보다 파리 라틴 숙소에서 일어난 지붕 화재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이를 더욱 구체화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 이상 멀리서 오는 지식이 아닌, 바로 다음에 일어날 일의 단서를 제공하는 정보만이 공감을얻는다." 신문 독자들의 관심은 코앞에 놓인 것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은 호기심거리로축소된다. 근대의 신문 독자들은 시선을 멀리 두고 머무르는 대신, 하나의 뉴스거리에서 다른 뉴스거리로관심을 이동시킬 뿐이다. 길고 느리게 머무르는 시선은

정보는 인식의 순간 이후 더는 살아 있지 못한다. "정보는 그것이 새로운 동안에만 가치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만 살아 있다. 오로지 순간의 시점에사로잡히며 정보 그자체에 대해 설명할 시간은 없다.

정보와 달리 지식은 그 순간을 넘어서 앞으로 다가올 것과도 연결되는 시간적 폭이 있다. 그래서 지식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지식 안에는 서사적 진폭이 내재해 있다.
정보는 새로운 것을 찾아 세상을 샅샅이 뒤지는리포터의 매체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그 반대의 일을 한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정보를 전달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이야기하기의 예술은 정보를 내주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설명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이미 이야기하기 예술의 절반을 완성한다." 내주지 않는 정보, 즉 빠져 있는 설명이 서사적 긴장을 고조시킨다.

이야기에는 경이롭고 의미심장한 무언가가 있다. 이들은 은밀한 것에 반대되는 정보와 결코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설명과 이야기는 상호 배타적이다.
"매일 아침이 세상 만물의 새로움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기억할 만한 이야기가부족하다. 왜일까? 설명이 들어가 있지 않은 일은 더이상 우리에게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이 이야기가 아니라 정보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이야기는 ‘모든 걸 내보이지않는다.‘ 이야기는 ‘그 힘을 내면에 모은 채 보전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다시 펼쳐낼 수 있는것‘이다. 반면 정보는 완전히 다른 시간성을 보인다.
정보는 좁은 최신성의 폭 때문에 매우 빠르게 소진된다. 정보는 오로지 찰나의 순간에만 작동한다. 영구한 발아력을 지닌 씨앗이 아닌, 티끌이나 다름없다. 정보에는 발아력이 결여되어 있다. 한번 인식되고 나면, 이미 확인을 마친 부재중 메시지처럼 무의미성 속으로 침잠한다.

전체 삶의 기록화에서 아무것도 탈락되어서는 안 된다. 이때는 아무것도 이야기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저 측정될 뿐이다.
센서와 앱은 언어적 표현과 서사적 성찰 없이 자동으로 데이터를 전송한다. 수집된 데이터는 그래픽과다이어그램으로 보기 좋게 요약된다. 그러나 이들은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 자기는 양이아닌 질이기 때문이다. ‘숫자를 통한 자기 이해‘는 신화 속 키마이라와 같다. 이야기만이 자기 인식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나 자신이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나 숫자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못한다. ‘수치적서사‘라는 표현은 모순이다. 삶은 정량화가 가능한 사건들로는 이야기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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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아가는 중입니다 -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그녀의 생생하고 진솔한 이야기
조민 지음 / 참새책방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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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레몬이 주어지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격언이 있다.
비록 지금 인생의 대부분을 부정당했지만, 이 상황을나는 제2의 자아실현 기회로 만들어보려 한다. 한 길만 바라보고 달려온 나에게 이 같은 강제 멈춤은 아마 평생에 한 번겪을까 말까 하는 트라우마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막힌상태를 기꺼이 누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멈추어 주변을살펴보기로 했다. 내가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이 좁고 긴 길이었던 데 반해 이제부터 펼쳐질 길은 꽃도 피어 있고 산도보이는 그런 길일지도 모른다. 그 길을 천천히 즐기며 걷다보면 나의 세상도 확장되어 더 큰 행복을 안겨다 줄지도 모른다.

봉사하는 사람 중에는 큰 착각에 빠진 이도 많다.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을 도우면서 보람을 찾는다고 생각하는사람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봉사하면 할수록, 봉사의 대상에게서 배울 점이 더 많이 보인다. 불쌍하기는커녕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똑같지만 다른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일 수는 있지만, 결코 불쌍한 사람들은아니다. 그 누구도 다른 이를, 어떠한 이유로든 불쌍하게 여길 수 없다. 저마다 다른 사연을 안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먼저 권하는 것이 생활 패턴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를 쓰고 내 루틴을 지키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 내려 마시기, 아침은 건너뛰기, 공복으로 운동하기, 공부하기, 일찌감치 점심을 먹고 오후에 공부하기, 친구들과 나가서 이른 저녁 맛있는 것으로 챙겨 먹기, 일주일에한 번은 나가서 친구들과 놀기 등. 여기서 내 힘으로 유지할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내 힘으로 유지하지 못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길에서, 큰바람을 맞더라도 스러지지 않고 자신의 길을 만날 수 있기를, 때론 길을 잃더라도그 길에서 더 빛나는 나를 만날 수 있다는 소망을 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날마다 매일 매 순간을 멋지게살아나가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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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험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살면서누구를 만나느냐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만나고 내안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변화하는 자신을 알고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살면서 편견이 편견인 줄도 모르고 그 편견에둘러싸여 지낸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편견은 또 어떤 게있을까? 편견이 별로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얼마나 많은 편견에 내 눈이 가려져 있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다. 이 사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양고기는 어쩌면 하나의 예일 것이다. 일상에 만연하는 편견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악재로 작용한다. 지나고 나서야 미욱했던 자신을 깨닫는다. 누군가 아무리 얘기해도 내가 직접 부딪히고 경험하며 깨닫지않으면 알 수 없다.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두려울 것도 없고 실패할일도 없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 실패할 수도 있지만 성공할수도 있다. 7년간의 헛구역질을 참고 먹은 양고기의 맛이 가히 환상적이었듯이, 앞으로도 나는 자신의 틀을 깨는 새로운 시도를 해나가면서 작고 큰 성공과 실패를 겪으면서 나아가고 싶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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