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그렇다. 인간의 본질이 과연 노동인가? 호모사피엔스(생각), 호모에렉투스(직립), 호모루덴스(놀이), (언어) 등은 들어봤지만 ‘노동하는 인간’이라는 단어는 잘 모르겠다(나만 모르나?). 그건 인간의 본성 가운데 노동이 절대 핵심은 아니라는 뜻이리라.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귀족이나 양반 같은 상류층 계급은 한결같이 ‘노동에서 벗어난’ 집단이었다. 그래서 정신 활동(‘노동’이 아니라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고귀한 삶의 척도는 육체적 노동과 물질적 생산이 아니라 정신적 깊이와 지적 확장이라는 의미다. 지금까지 그런 활동은 소수에게만 허용되었지만, 4차산업혁명과 더불어 그런 삶의 가능성이 모두에게 열린 것이다.
그게 대세라면 백수는 더 이상 열등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오히려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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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비웃음거리가 아닌 신성한 대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그 옷을 입은 사람의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진지한 눈빛과 그 눈빛을 통해 전달되는 참된 생명력이다. 어릿광대가 복통으로 이리저리 뒹군다면, 그의 의상도 그 분위기를 살리는 데 한몫을 할 테고, 병사가 포탄에 맞아 쓰러지면 넝마 같은 군복도 자주색 왕실 의상만큼이나 그에게 잘 어울려 보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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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할 일’이나 ‘되어야 할 사람’이지,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도구가 아니다. 그러니 아무리 입은 옷이 남루하고 더럽다 해도 새 옷을 구하지 않음이 좋을 듯하다. 어떤 특별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일하고 먼 길을 항해해 나감으로써 스스로 새로운 사람이 된 듯이 느낄 때, 그리하여 헌옷을 입는 것이 마치 낡은 병에 새 포도주를 담아 두는 듯한 느낌이 들 때, 그때 새 옷을 장만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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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나는 어느 개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그 개는 주인의 집 근처에 접근하는 낯선 사람에게는 무조건 짖어 댔는데, 어느 날 발가벗고 침입한 도둑에게는 얌전히 굴었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입은 옷을 다 벗어던져 버려도, 각자가 상대적인 사회적 계급을 그대로 유지해 갈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울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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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존중할 만한가를 따지기보다는, 무엇이 세상 사람의 눈에 존중할 만한 것으로 보일까에 더 신경 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보다 외투나 바지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이 우리네 실정이다.

지금 입은 옷을 벗어 허수아비에게 입혀 놓고 당신은 그 옆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라. 그러면 누구라도 허수아비를 보자마자 인사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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