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스트럭처라는 용어가 사회생활의 토대를 지칭하는 데 아주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때문에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문화적 선호나 시민 단체의 존재가 아니더라도,모든 건조 환경(인간이 건축, 조성한 물리적 환경_옮긴이)은 유대의 폭과 깊이에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가 사회적 인프라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지역사회 내의 또 집단 간의 경계를 넘어선 시민참여와 사회적 교류를 증진할 확실한 방법을 모르고 지나간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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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스트럭처라는 개념은 비교적 새롭고 완전히 현대적인 개념이다. 옥스퍼드영어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은 인프라스트럭처를 가리켜 "사업 ·하부구조 기반 등 하위 요소를 통칭하는 단어"라 정의한다. 인프라가 지탱하는 상위 활동들은 경제적·군사적·사회적 활동일수 있다. 과학과 기술을 연구했던 사회학자 수전 리 스타susan Leigh Star는 대표적인 논문 「인프라스트럭처의 민족지학적 연구The Ethnography of infrastructure에서 인프라란 "말뜻 그대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다른사업의 배경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프라는 "다른 구조물, 사회적배치, 기술 등의 내부로 파고들어가 그 내부에 자리 잡는다"고 덧붙였다. 인프라는 목표에 따라 매번 재고안하거나 새로 조립할 필요가 없으므로 사용자가 뚜렷하게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해당 목표 달성을 도우며, 또한 시공간적으로 광범위하다. 인프라는 한 번에 혹은 전체적으로가 아니라 조립식 증강을 통해 갖추어진다.
인프라를 가장 자주 사용하는 집단 구성원들은 시설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프라는 무너졌을 때 가장 명백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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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 불평등과 고립을 넘어서는 연결망의 힘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서종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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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피해가 컸던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폭염을 가장 잘 견뎌낸 지역 주민들과 같은 가치들을 중시했으며, 평상시건 유사시건 다른 이들을 도우려고 진심으로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차이점은 문화적인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혹은 공동체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가 문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보다 중요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엥글우드 같은 지역에서는 조악한 사회적 인프라가 사람들의 교류를 억제했고 상호 지지를 방해했지만, 오번그레염 등에서는 사회적 인프라가 교류와 상호 지지 등을 북돋았다는 점이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엥글우드 지역에서는 계속해서 인구가 감소한반면, 시카고에서 폭염 현상을 가장 잘 견뎌낸 지역에서는 인구 감소가 거의 없었다. 1995년 오번그레섬 주민들은 걸어서 식당 ·공원·이발소·식료품점 등을 돌아다녔다. 이들은 동네 반상회와 교회 모임에도 참여했으며, 서로서로 알고 지냈다.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그들이 사는 곳에서는 가벼운 교류가 일상적으로 자연스레 일어났다.
이 평범한 일상은 곧 폭염이 닥쳐왔을 당시, 사람들이 노인과 아픈 이웃의 문을 두드리며 서로가 괜찮은지 확인해보기 쉽게 만들었다. "날씨가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울 때면 우리는 늘 그렇게 해왔죠." 50년 가까이 오번그레셤에 거주한 베티 스완슨 Betty Swanson이 말했다. 심지어 폭염이 점점 더 빈번하고 심각하게 발생하는 상황에서, 오번그레셤처럼사회적 인프라가 잘 구축된 지역에 살면 집집마다 에어컨을 갖춘 것과 별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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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대인 네트워크를 가늠하는 데 흔히 ‘사회적자본social capital‘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지만, 사회적 인프라는 이와는 다른 개념이다.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적 자본이 발달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짓는 물리적 환경을 지칭한다. 튼튼한 사회적 인프라는 친구들이나 이웃들끼리 만나고 서로 지지하며 협력하기를 촉진하는 반면, 낙후한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 활동을 저해하고 가족이나 개개인이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다. 사회적 인프라의 역할은 가히 결정적이라 할 만큼 중요하다. 학교나 놀이터 혹은 동네 식당등에서 벌어지는, 서로 얼굴을 직접 마주하며 이루어지는 지역적 교류가 곧 그들의 공공 생활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건전한 사회적인프라를 갖춘 장소에서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 공동체 형성을 목적으로 이 같은 장소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꾸준하게 반복해서 모여들 때, 특히 즐거운 일을 하며 교류할 때 관계 또한 필연적으로 싹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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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지금은 많이 무감각해졌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나는 정직하게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진정으로 바라는 바를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많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누리는 사람은 대부분 ‘가난한’ 문명인인 데 반해, 이런 것을 누리지는 못해도 원주민은 대부분 ‘풍요로운’ 원주민인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만약 문명이라는 말이 개선된 상태의 인간 삶을 칭하는 것이라면(나는 그 말이 맞다고 보지만, 오직 현명한 사람만이 문명의 이점을 이용할 수 있다.), 문명은 비용을 더 들이지 않고도 인간에게 더욱 나은 주거 여건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용이란, 내가 삶이라 칭하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무언가를 얻는 대가로 지금 당장이든 장기적으로든 그에 해당하는 만큼의 삶을 지불해야 한다.

보유하고 있어 봐야 얻게 되는 이득이란, 개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기껏해야 자신의 장례비용 정도 치르는 용도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인간은 자신의 장례를 자기가 직접 치를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미래를 대비하는 성향은 바로 문명화된 인간과 원주민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가 문명화된 삶을 제도화해서 개개인의 삶 또한 대부분 그 제도에 흡수시킨 이유는 의심의 여지없이 인류의 삶을 보존하고 완성시켜 모두에게 이득이 되도록 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나는 현재 그 이익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면서 얻어지고 있는가를 밝히려 한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어떠한 불이익으로 고통받는 일 없이도 그 모든 이득을 얻으며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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