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아 이것마저 없다면 !!" 그래요,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퇴근길에 희망이라고 삼소뿐인 겁니다. 이것마저 없다면 그 시절을 어떻게 버티며 살 수있겠느냐는 탄식과 원망이 들려오지 않습니까. 우리가 삶을 버티는 데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아 이것마저 없다면‘ 하는 그것 하나만 있어도 의외로버텨지는 게 삶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나를 위로해주는 가족만있어도, 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희망이 있으면 우리는 버틸 수있습니다. 비정규직이어도, 아직 취업을 못하거나 심지어 직장을 잃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힘, 그 희망이 있다면우리 삶은 견딜 만해집니다. 아 이것마저 없다면‘ 하며 지켰던, 삼겹살에 소주 한잔만으로도 단군 이래 최대 위기라던 그 환란을 이겨낸 게 우리들이지 않습니까.
이것은 일찍이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감동적으로그려진 바 있습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걸 정부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바라만 보고 있는 그때, 의사들은 목숨을 걸고 페스트와맞서 싸웁니다. 의사 리외는 랑베르 기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리외에게 랑베르 기자는 다시 묻습니다. 그 성실성이란 게 대체 뭐냐고. 의사 리외는 다시 답합니다.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알고 있습니다. 어떠신가요? 정말 현실 같은 소설이고, 소설 같은 현실 아닙니까? 소방관이나 의사만이 아니라 직업을 가진 누구나 이렇게 자기 직업과 직분의 본질을 지키며 사는 세상이 온다면, 우리는비로소 살 만한 세상, 소설에서나 꿈꾸었던 세상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모두가 영웅이어서 영웅이 필요 없는 세상일 테니 말이죠. 하지만 아직은 먼 것 같습니다. 더도 덜도 말고 그저 업의 본질을 지킨다는 일이 정말 이렇게 힘든 일일까요?
얼마전 저는 SNS에 농담조로 한 문장짜리 짧은 글을 올렸니다. "죽어라 일하는데 왜 나는 죽지도 않고 왜 일은 줄지도않는가?" 많은 이들이 ‘좋아요‘를 누르자 내친 김에 그에 대한담도 올렸습니다. 일은 하면 할수록 늘기 때문"이라고. 갓 취업해서 제대로 일할 줄 모르면 선임들이 격려해줄 때 하는 말이 그것 아닙니까. "괜찮아, 일은 하다 보면 늘어"라고, 아, 정말 일은 듭니다.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느는 게 아니라 정말 일은 늘면 늘지 줄어드는 법이 없습니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줄지 않는 것이 일입니다. 과로로 죽을판인데, 과로하지 않으면 더 죽을 판으로 일이 넘쳐 어쩔 수 없이 과로라도 해서 일을 줄이려는데, 그러면 그새 일은 또 늘어나는 악순환인 겁니다.
지금부터 무려 600여 년 전인 1516년, 토마스 모어가 .. 《유토피아》란 책에 등장하는 철학자 라파엘 히슬로디는 자시이항해하다 만난 유토피아 섬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 섬의 사라들은 하루 6시간을 일한답니다. 그것도 오전 3시간 일하고, 점심으로 2시간 휴식한 다음, 오후 3시간 일하면 끝. 모든 일은 제녁식사 전에 마칩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그 외의 시간은 다자유로운 여가시간인데, 대부분 그 시간을 학문 탐구나 음악 향유 같은 데에 바치는, ‘저녁이 있는 삶‘ 정도가 아니라 ‘문화가 있는 삶을 사는 것이죠. 라파엘 히슬로디는 말합니다. 모든 시민은 육체노동에 투여하는 시간과 정력을 가능한 한 아끼어 이 시간과 정력을 자유와 정신의 문화를 누리는 데 쓸 수 있도록 하자고, 그것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행복이라고, 워라밸이라고
언젠가 스칸디나비아 항공을 이용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조마 소금 봉지 같은 게 나왔는데 아무리 봐도 소금sall이란 말이바이질 않습니다. 거기에는 단지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TheColor of Snow, The Taste of Tears!‘ 소금이 ‘눈의 색깔, 눈물의맛이라니요. 감동이었습니다. 항공사가 달리 보였습니다. 문학과 문화를 생활화하자고 백날 말만 하면 뭐합니까. 명품은 이런디테일에 숨어 있더군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금은 눈물의 맛입니다. 그냥 눈물의 성분이 짜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소금은 눈물 없인 얻을 수 없는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장인을 샐러리맨이라고 부를 때, 그때 ‘샐sal‘의 라틴어 어원이 바로 소금입니다. 초기 로마시대에는 소금이 화폐 역할을 했다고하죠. 그래서 관리나 병사의 급료도 소금으로 지급했는데 그 급료를 살라리움‘ salarium이라고 불렀고, 소금이 화폐로 대체된 뒤에도 지금껏 그 명칭은 살아남아 봉급을 샐러리salary라 부르고있습니다. 병사를 뜻하는 영어 단어 soldier도 ‘소금을 주다‘라는 뜻의 단어 saldare에서 비롯된 것이죠
우리의 꿈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이어야 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누구나 무엇인가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 무엇은 명사겠지요. 의사, 교사, 공무원, 회사원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 가령 명사 교사는 정말 이삼십 대 안에 되든지 안 되든지가 결정이 납니다. 하지만 가령 형용사 ‘존경스러운‘ 교사는정년까지도, 아니 평생토록 이루기 힘듭니다. 생의 목표는 그런게 되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어쩌면 존경스러운‘ 사람이 되는게 내 인생의 꿈이고, 교사‘나 ‘의사‘ 따위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들일지도 모릅니다. 의사가 되었어도 환자나 주변으로부터 평생 존경을 얻지 못했다면 그 인생을 어찌 성공한 인생이라 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라면 시 같은, 아름다운, 낭만적인,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의 목표여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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