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돌아보면 덧없다. 제 한 몸 옳게 간수하기도 버겁다. 내가 옳다 해도 옳은 것이 아니요, 내가 그르다 해도 남들은 수긍하지 않는다. 세상일에 옳다 그르다 말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봄이 오면 자꾸 화단의 꽃 소식에 마음이 이끌린다. 오늘 막 핀 꽃이 밤사이 비바람에 꺾여 땅에 떨어지지나 않았을까 자꾸 신경이 쓰인다. 세상을 향한 관심을 조금씩 거두면서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자꾸 눈길이 간다.
달고 쓴 맛을 다 보고 나서 그저 손을 놓자, 세상맛은 밀랍을 씹는 것과 한가지고, 살고 죽는 일이 중요해도 급히 고개를 돌리니, 세월은 총알보다 빠르다.
苦備管好丟手, 世味渾如驪, 生死事大急回頭, 年光族于跳丸.
단맛 쓴맛 다 보고 나니 아무 맛도 없다. 한때는 죽고 살 것처럼 매달렸던 일도 지나고 나니 허망하다. 일희일비하던 그 마음이 머쓱하다.
밝은 노을이 어여뻐도 잠깐 사이에 문득 사라진다. 흐르는 물소리가듣기 좋아도 스쳐 지나고 나면 그뿐이다. 사람이 밝은 노을빛으로 어여쁜 여인을 볼진대 업장業障이 절로 가벼워질 것이다. 사람이 능히 흐르는 물소리로 음악과 노랫소리를 듣는다면 성령性靈에 무슨 해로움이있겠는가?

침정은 마음에 일렁임이 없이 맑게 가라앉은 상태다. 침정은 신정에서나온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 번잡한 사무를 보고 말을 많이 해도일체의 일렁임이 없다.
이덕무李德愁(1741~1793)는 〈원한原間)에서 이렇게 썼다.
넓은 거리 큰길 속에도 한가로움이 있다. 마음이 진실로 한가롭다면어찌 굳이 강호나 산림을 찾겠는가? 내 집은 시장 곁에 있다. 해가 뜨면 마을 사람이 물건을 파느라 시끄럽다. 해가 지면 마을의 개들이 무리지어 짖는다. 하지만 나는 홀로 책을 읽으며 편안하다. 이따금 문밖을 나서면 달리는 사람은 땀을 흘리고, 말 탄 사람은 내닫으며, 수레와말은 뒤섞여 얽혀 있다. 나만 홀로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일찍이 소란함으로 인해 나의 한가로움을 잃지 않으니, 내 마음이 한가롭기 때문이다.

일 없다고 빈둥거리면 정작 바빠야 할 때 할 일이 없다. 고요할 때 허튼생각 뜬 궁리나 하니 움직여야 할 때 찾는 이가 없다. 남이 안 본다고 슬쩍 속이면 대명천지 밝은 데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젊은 시절 부지런히 노력하고 애써야지 늙었을 때 나를 찾는 곳이 있다. 사람은 한가하고 고요할 때 더 열심히 살고, 남이 안 볼 때 더 노력하며, 젊을 때 더갈고닦아야 한다. 일 없을 때 일 안 하면 일 있을 때 일을 할 수가 없다.
사람의 쓸모는 평소의 온축蘊蓄에서 나온다.
평소의 몸가짐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부러진다. 지극한 사람이 부드러움을 귀히 여기는 까닭이다. 칼날은 예리해서 부러진다. 그래서 지극한 사람은 두터움을 중하게 여긴다. 신룡神龍은 보기 어렵기 때문에 상서롭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지극한 사람은 감추는 것을 귀하게 본다. 푸른 바다는 아득히 넓어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지극한 사람은 깊은 것을 소중히여긴다.

"마음에는 두 가지 병이 있다. 하나는 마음이 있는 데서 오는 병(有心之病)이고, 하나는 마음이 없는 데서 오는 병(無心之病)이다. 마음이 있다는 것은 인심(人心)을 주인으로 삼는 것이고, 마음이 없다는 것은 도심(道心)이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는 다른 것 같지만 병통이 생기는 근원은 실제로 같다. 경(敬)으로써 내면을 바르게 하고, 공과 사를 구분해서 이를 살핀다면 이 같은 병통이 없어진다."

유심지병(有心之病)이 있고, 무심지병(無心之病)이 있다. 마음은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마음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고, 어떤 마음을 지니느냐가 더 문제다. "자넨 생각이 너무 많아!" 안 해도 될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다는 말이다. 유심지병이다. 그의 마음은 인심(人心), 즉 계교하고 따지느라 바쁜 마음이다. "도대체 생각이 있나 없나?"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그는 무심지병에 걸린 사람이다. 그저 몸을 따라 마음이 간다. 아무 생각이 없다.

해야 할 생각은 안 하고 쓸데없는 생각만 많다. 그러니 늘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마음에 노여움과 원망이 있고 보니 말투가 모질고 사나워진다. 일을 열심히 해도 앞뒤가 바뀌어 늘 결과가 어긋난다. 두려움은 재난 앞에 흔들리고, 위력 앞에 꼼짝 못하게 만든다. 돈 문제로 인한 걱정 근심은 사람을 무력하게 해서, 옳고 그름을 떠나 계산기를 두드리게 만든다.

허튼 마음을 닦아내고, 실다운 마음을 깃들이는 방법으로 다산은 ‘경이직내(敬以直內)‘를 꼽았다. 공적인 일인지 사적인 욕심인지를 살펴 마음의 균형을 유지할 때 두 가지 마음의 병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맹자는 "사람이 닭이나 개가 달아나면 찾을 줄 알면서, 마음은 놓치고도 찾을 줄 모른다. 공부란 별것이 아니다. 달아난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 마음이 주인 노릇을 못하면 몸은 그대로 허깨비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욕은 젊어서는 즐겨도 늙으면 식는다. 분노는 참으면 없어지 요하면 물러난다. 하지만 교만은 한번 마음에 들어오면 언제 어디서고 붙어다닌다. 몸이 늙어도 교만은 시들지 않는다.
如色慾則, 老則息, 如, 忍則去, 靜則知, 惟微一納於心志 焉, 身能老而傲不衰.

습정習靜은 고요함을 익힌다는 뜻이다.
침묵과 고요도 연습이 필요하다.
정신없이 세상에 흔들리는 사이,
정작 소중한 것들이 내 안에서 빛바래 간다.
침묵이 주는 힘, 고요함이 빚어내는 무늬를우리는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고요히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고요함에 익숙해지자 헤아려 살피는 일도 심드렁하다. 마음 밭은 인연따라 흘러가도록 놓아둔다. 작위하지 않는다. 실없는 농담과 공연한 말이 싫다. 산자락 집 사립문은 대낮에도 굳게 잠겼다. 나는 나와의 대면이 더기쁘다. 나는 더 고요해지고 편안해지겠다.
이수광도 무제無題)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온종일 말도 없이 좌망坐忘에 들었자니
이렇게 지내는 일 홀로 즐김 넉넉하다.
몸을 움직이면서도 고요함을 익히니
담백하게 어디서건 참나가 드러나네..
坐忘終日一言無 長工程足 自娛身在動時猶習靜濟然隨地見真吾좌망은 나를 잊은 경계다. 말을 잊고 욕심을 거두자, 부지런히 움직여도 마음이 고요하다. 담담하게 때 없이 참나와 만난다.
이게 나고 이래야나다.

고요 익혀 지내자니 온갖 생각 재가 되고
찾아오는 사람 보면 문득 놀라 꺼려지에
산 스님 지팡이 짚고 어디서 오는 게요
사립문 밖 길 위 이끼 망가지게 생겼네..
習靜居萬念灰 若逢人到便驚淸山僧枚錫從何處破我柴門一逻苔

찾는 사람 아예 없어 문 앞 길에 이끼가 곱게 앉았다. 스님 오신 것이야환영하오만, 지팡이 눌러 짚어 이끼 망가질까 겁이 납니다. 살살 오시지요.
정약용이 이승훈李承薰(1756~1801)에게 보낸 답장에서 말했다.

요즘 고요함을 익히고 졸렬함을 기르니(習靜養世), 세간의 천만 가지즐겁고 득의한 일들이 모두 내 몸에 ‘안심하기安心下氣’ 네 글자가 있음만 못한 줄을 알겠습니다. 마음이 진실로 편안하고, 기운이 차분히 내려가자, 눈앞에 부딪히는 일들이 내 분수에 속한 일이 아님이 없더군요. 분하고 시기하며 강팍하고 흉포하던 감정도 점점 사그라듭니다. 눈은 이 때문에 밝아지고, 눈썹이 펴지며, 입술에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피가 잘 돌고 사지도 편안하지요. 이른바 여의치 않은 일이 있더라고모두 기뻐서 즐거워할 만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있지.. 난 책을 읽으며 평생을 보냈어. 그리고 내 생각에 나는…… (그는 한순간 머뭇거린다 …) 나는 그걸…… (그가다시 말을 멈춘다……) 그 인생a vie이란 걸 살지 못한 것 같아,
그 진짜 인생 말이다."

"물론이지!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전혀 모르는 채 내 앞에 그모든 시간이 펼쳐져 있다는 생각에 얼어붙어 있었지. 시간은 내앞에 있었어. 끝이 보이지 않았지. 공허의 냄새가 났어. 아니, 더고약하게도 권태의 냄새를 풍겼지. 그리고 그런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단다, 나는 지긋지긋해하며 인생의 사분의 삼을 살았으니까. 책을 사랑한다. 그래 좋아, 겉으로 보기에 멋진 일이지, 매력적이야. 하지만 책을 팔면서 평생을 살아간다, 그건 그 사랑을

책은 우리를 타자에게로 인도하는 길이란다. 그리고 나 자신보다 더 나와 가까운 타자는 없기 때문에, 나 자신과 만나기위해 책을 읽는 거야. 그러니까 책을 읽는다는 건 하나의 타자인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행위와도 같은 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동적인만찬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바베트는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니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 만찬을 준비하느라 복권 당첨금을 모두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자매는 얼굴이창백해져서 말합니다. "바베트, 이제 다시 가난하게 살아야 하잖아!" 그러자 바베트가 답합니다. "예술가는 가난하지 않아요."
그리고 덧붙입니다. "자신이 최선을 다하면 사람들을 행복하게할 수 있죠." 천사의 축복이라도 내리는 듯, 창문 너머로는 흰 눈이 소복소복 쌓입니다.
바베트는 복권 당첨금 1만 프랑 모두를 이웃을 대접하는 데썼습니다. 마치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은화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비싼 향유를 예수 발에 부어드린 것처럼 말입니다. 훗날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는 그 돈이면 가난한 사람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비난했지만, 예수는 오히려 마리아를 칭찬합니다.
.... 만찬은 잔치가 되어 진정한 관계를 회복하는 화목제가 되었으며, 거기서 닫힌 몸이 열리며 몸에 갇혔던 사랑이 완성되은 것입니다.

결심이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내 몸에는 너무 많은 관성이 들어 있습니다.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몸
구석구석에 살뜰히도 배어 있습니다. 그것과 싸워 이겨내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호락호락한 사람들입니다. 싸울 게 따로 있지왜 자신과 싸운답니까.

그렇습니다. 영화처럼, 영화의 카메라처럼, 우리 인생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인 겁니다. 다른 사람들, 남의 집을 보면 다 잘 사는 것처럼, 다들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멀리서 보니까요. 하지만 나 자신, 우리 집을 보면우울해집니다.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비극적인 부분만 돋보입니다. 가까이서 보니까요. 마찬가지로 자기 인생도 지금 당장의 가까운 시점에서 보면 비극입니다. 하지만 며칠, 몇 달, 몇 년이 지난 후 멀찌감치 돌이켜보면 별거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행복하려면 자기 자신을 약간 떨어진 자리에서, 좀 더 객관적인 시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사는데 그냥 사는 게 아닌 삶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무슨 목적이나 의도가 있어서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것보다 그냥선물하는 게 더 감동적인 것처럼 말입니다. 말이 그냥이지 그게정말 그냥이겠습니까? 대충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목표나 결과에 너무 얽매이지 말되 다른 이들에게 감사와 작은 감동을 줄 만큼
최선을 다하는 삶을 말하는 겁니다.
그냥 네가 좋아서, 그냥 당신을 사랑해서, 그냥 오는 길에 네가 생각나서, 그냥 보고 싶어서, 그냥 주고 싶어서, 이 선물을 준비했다고 말하듯, 그냥 내 마음이 움직여서 오늘 하루도 값있게사는 겁니다, 그냥! 내 마음의 행복은 그런 무목적의 합목적성에서 온다고 저는 믿습니다.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처럼 말입니다.

딸을 위한 시

마 종 하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이 이야기가 왜 중요할까요? 궁금하시다면, 박민규의 소서《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보세요. 이 소설에는 고로야구계의 만년 꼴찌 팀 삼미 슈퍼스타즈가 등장합니다. 그들이 꼴찌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드디어 밝혀집니다. 삼미는자신의 야구‘를 완성하고자 했기 때문이죠.
삼미가 지향한 자신의 야구‘란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였습니다. 그러니 전성기의 뉴욕양키스나 요미우리자이언츠도, 아니 그 어떤 프로팀도 결코 완성할 수 없었던 거죠. 그들의 목표는 한결같이 우승뿐이니까. 우승을 목표로 하는 프로팀들로서는 가장 하기 힘든 야구가 바로저 자신의 야구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삼미는 이런 식입니다. 타석에 서서 보니까 투수가정말 너무나 멋진 커브를 던진 거예요. 그럼 치지 않습니다. 치기 힘든 공이잖아요. 치려고 하기보다 그 멋진 커브를 감탄하고
경이로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겁니다. 그게 원래 우리가 처음 야구를 하려고 했을 때의 뜻 아닙니까? 치고받기보다는 즐기고,
이기기보다는 아름다움을 누리는 것이 야구의 본질이요, 매력아닐까요? 그리하여 소설 속 삼미 슈퍼스타즈는 프로 올스타즈와의 대결을 이렇게 마무리하게 됩니다.


7회 초의 공격은 끝이 나지 않았다. 오른쪽의 잡초 덤불 쪽으로 빠진 2루타성 타구를 잡으러 간 〈프로토스〉는 공을 던지지 않았고, 그이유는 공을 찾다가 발견한 노란 들꽃이 너무 아름다워서였고, 또모두가 그런 식이었다. 워낙 힘을 들이지 않기 때문에, 괴소년은 그렇게 많은 포볼을 던지고도 도무지 지치지 않았고, 또 같은 이유로아무도 데미지를 입지 않았다. 수비들은 계속 체력을 축적하고, 오히려 전력을 다해 공격하는 타자들이 지쳐만 가는 이상한 경기가계속 이어졌다. 길고 긴 7회의 공격이 언제 끝날지가 요원했던 - 아직 원아웃인가 그랬고 스코어는 20:1의 상황에서, 결국 타임을 외친 올스타즈의 주장이 웃으며 걸어 나왔다.
"그만 하죠." 승패를 떠나, 뭔가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그는 한 것 같았다. 고개를 가로젓는 조성훈에게 그는 농담처럼 "하하, 우리가 졌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했고, 돌아가다 문득 뒤를 돌아보더니 "왜 이런 식으로 야구를 하시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모자를지는 조성훈이, 끝없이 겸손한 표정으로 예를 갖춰 대답했다. "야구를 복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론論허형만

사랑이란 생각의 분량이다. 출렁이되 넘치지 않는 생각의 바다, 눈부신 생각의 산맥, 슬플 땐 한없이 깊어지는 생각의 우물, 행복할땐 꽃잎처럼 전율하는 생각의 나무, 사랑이란 비어있는 영혼을 채우는 것이다. 오늘도 저물녘 창가에 앉아 새 별을 기다리는 사람아.
새 별이 반짝이면 조용히 꿈꾸는 사람아.

우리말 역사에서 ‘사랑하다‘와 ‘생각하다가 원래 한 뜻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사랑‘이란 우리말의 어원은 확정된바가 없는데, 생각하여 헤아리다‘라는 뜻의 ‘사량思量‘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으니, 아마도 이 시인은 내친 김에 ‘사량思量‘을
‘생각의 분량으로 풀어본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런 걸모르더라도 "사랑이란 생각의 분량이다" 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전혀 지장은 없을 겁니다. 말 그대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만큼 그를 생각한다는 것일 테니까요.
많이 사랑한다는 건 많이 생각한다는 것이고 많이 생각난다는건 그만큼 그를 사랑한다는 증거가 될 테지요.

"마음을 비웠다" 라는 말을 저는 잘 안 믿는 편입니다. 마음이 잘 비워지질 않더라고요. 마음은, 영혼은, 채우는 겁니다. 채우는데 뭘로 채울까가 중요한 겁니다. 얼마나 선한 것, 얼마나귀한 것, 얼마나 사랑스러운 것으로 채울까. 그런 것들로 채워진 삶은, 행복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얘기합니다. 사랑이란 비어 있는 영혼을 그대 생각으로, 그대와 함께한생각의 바다와 산맥과 우물과 나무로 채우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저물녘 창가에 앉아 반짝이는 새별을 보며 조용히 꿈꾸는 그대 생각으로 내 비어 있는 영혼을 채우노니...

신형철 평론가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해요.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훌륭한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바로 그런 기분이 된다." 훌륭한 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처럼,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는군요.

거짓을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 ‘리플리‘와 ‘방탄소년단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전자는 타인이 기준이 되는 것, 후자는 자신이 기준이 된다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타인을 모방하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오히려 자유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준이 되는 것, 그것이 진짜 ‘인싸‘의 삶 아닐까요.

내가 만난 시인들은 하나같이 다른 시인을 의식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그려나가고 있는 좌표에 충실할 뿐 다른 이들의 동선을 염탐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당연히 누구와 비교되는 것도 마뜩찮아 했다. 그것은 부단히 자기 부정과 자기 갱신을 감행해본 자들이 가닿은 자유로움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 김도언, 세속 도시의 시인들 (위즈덤하우스, 2016) 중에서

다만 확실한 것은, 그래도 그 곡선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남한산성 고개를 넘지 못했을 거라는 겁니다. 물리학의 진실은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남한산성 고개를 넘겠노라고 자동차가직진으로 질주했더라면 최대등판각도를 이기지 못해서 중도에전복되고 말았을 거라고요. 직진으로 흘러가는 강은 급기야 폭포라는 절벽을 뛰어내려야 하지만,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강물 은 끝까지 바다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그것이 바로 부드러운곡선의 힘 아닐까요.
가끔은 보통의 삶에서 밀려나는 듯 느껴지고, 잘 살아오던
삶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 불안해하지만, 인생이 먼 곳을우회하는 것 같을 때, 어쩌면 우리는 직진해오는 바람에 만나지
못했던 가치들을 발견하고 깨닫고 배워가며 성장해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미니죽음에 관해 생각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삶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냥 정신없이 살 때는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삶을 사는 거지. 그런데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비로소 산다는게 뭔지를 생각하는 것이죠. 이렇게 사는 게 과연 의미 있는 건가? 그런가 하면 타인의 죽음을 보면서 자신의 죽음도 깨닫게되죠. 죽음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사랑하는사람도 언젠간 죽을 것입니다. 이 절대적인 사실을 통해 ‘아, 나도 죽는구나‘ 하는 삶의 본질을 깨닫습니다.
인생이란, 요약하면, 살다가 죽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인생에 대한 설명이 단순해져버리는 순간 오히려 삶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역설도 만들어집니다. 스티브 잡스의유명한 스탠퍼드 대학 졸업 축사의 일부입니다.
죽을 날이 그리 멀지 않음을 기억하는 것은 인생의 중대한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도구들 중 가장 중요한 겁니다. 왜냐하면거의 모든 것들, 모든 외부로부터의 기대, 자존심, 당혹감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이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며,
정말 중요한 것만 가려내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죽을 것이라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여러분이 무언가를 잃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함정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미 가진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슴으로 느끼는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더딘 슬픔, 그것이 상실에 대한 올바른 애도입니다. 끝내 허무하게 사라질지라도, 생명의 불 꺼지면 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은 연기로 남아, 무중력처럼,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렇게 잠시 그대와 함께한 추억들을 되새기며, 그대 떠나 텅 비어버린 이 세상의 공백을 채우는 것, 그것이 애도 아니겠습니까.
우리네 짧은 인생에도 그런 정도의 여운과 여백은 허락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 때
자기마음을 한번 잘 들여다보세요.
그 허전함을 무언가로 채우려 하는
마음이 보일 것입니다.

사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어려운 일에 처했을 때
서로 돕고 위로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마음이 허전할 때는
내가 뭔가 바라는 마음으로 헤매고 있음을 알고
그 바라는 마음을 놓아버리면,
허전함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무의식적인 감정의 습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해탈입니다.
더는 고뇌가 생기지 않는 것,
그것이 열반입니다.
사물을 보는 관점을 바꾸고
탁 알아차려서 습관에 끌려가지 않는 삶,
행복해지는 연습,
그것이 수행입니다.

집착과 외면

어떤 것을 갖고 싶고, 유지하고 싶고,
꼭 자기 뜻대로 하려는 것을 집착이라고 합니다.
낚시를 하다 아무리 큰 물고기가 걸렸더라도
물에 빠져 죽을 정도가 되면 낚싯대를 놓아야 하는데,
아까운 마음에 끝까지 낚싯대를 잡고 있는 게 집착입니다.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면서 살려 달라 아우성을 칩니다.
빨리 놓으라고 하면 죽어도 못 놓겠다,
이런 기회가 어디 있냐고 합니다.
집착에 이끌려 고통에 빠지는 겁니다.

내 뜻대로 하고 싶은데 안되면
집어치워버리는 것을 외면이라 합니다.

그런데 하나하나 따져보면모든 것은 다 내 안에서 일어납니다.
똑같은 비가 와도 어떤 씨앗을 심었느냐에 따라
제각기 다른 싹이 트듯이
자기 내면에 그런 씨앗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시각을 밖으로 돌리지 말고
안으로 돌려 내면을 깊이 관찰해야 합니다.

장님 몇이 코끼리의 생김새를 알고 싶어 손으로 코끼리를 만집니다.
이때 한 사람은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고 코끼리가 기둥같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코끼리의 꼬리를 만지고는 밧줄같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사람은 코끼리의 등을 만져보고는 언덕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런 것을 편견 또는 단견짧은 생각이라고 합니다.
한쪽 면만 보고 전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볼 때 이쪽뿐 아니라 저쪽도 보고, 앞면만이 아니라 뒷면, 아랫면만 아니라 윗면도 같이 살피며 전체를
보는 것을 통찰력 혹은 지혜라고 합니다.

행복으로 가는 길은
마음이 바뀌지 않는 게 아니라
마음이 바뀌는 줄 알고
그 변화에 구애받지 않는 것입니다.
좋다 하더라도 너무 들뜨지 말고
싫다하더라도 너무 사로잡히지 않도록
꾸준히 연습해 보세요.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스스로 알아차리고 지켜본다면,
마음의 끊임없는 출렁거림 속에서도
참으로 한결같은 삶이 찾아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