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돌아보면 덧없다. 제 한 몸 옳게 간수하기도 버겁다. 내가 옳다 해도 옳은 것이 아니요, 내가 그르다 해도 남들은 수긍하지 않는다. 세상일에 옳다 그르다 말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봄이 오면 자꾸 화단의 꽃 소식에 마음이 이끌린다. 오늘 막 핀 꽃이 밤사이 비바람에 꺾여 땅에 떨어지지나 않았을까 자꾸 신경이 쓰인다. 세상을 향한 관심을 조금씩 거두면서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자꾸 눈길이 간다. 달고 쓴 맛을 다 보고 나서 그저 손을 놓자, 세상맛은 밀랍을 씹는 것과 한가지고, 살고 죽는 일이 중요해도 급히 고개를 돌리니, 세월은 총알보다 빠르다. 苦備管好丟手, 世味渾如驪, 生死事大急回頭, 年光族于跳丸. 단맛 쓴맛 다 보고 나니 아무 맛도 없다. 한때는 죽고 살 것처럼 매달렸던 일도 지나고 나니 허망하다. 일희일비하던 그 마음이 머쓱하다. 밝은 노을이 어여뻐도 잠깐 사이에 문득 사라진다. 흐르는 물소리가듣기 좋아도 스쳐 지나고 나면 그뿐이다. 사람이 밝은 노을빛으로 어여쁜 여인을 볼진대 업장業障이 절로 가벼워질 것이다. 사람이 능히 흐르는 물소리로 음악과 노랫소리를 듣는다면 성령性靈에 무슨 해로움이있겠는가?
침정은 마음에 일렁임이 없이 맑게 가라앉은 상태다. 침정은 신정에서나온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면, 번잡한 사무를 보고 말을 많이 해도일체의 일렁임이 없다. 이덕무李德愁(1741~1793)는 〈원한原間)에서 이렇게 썼다. 넓은 거리 큰길 속에도 한가로움이 있다. 마음이 진실로 한가롭다면어찌 굳이 강호나 산림을 찾겠는가? 내 집은 시장 곁에 있다. 해가 뜨면 마을 사람이 물건을 파느라 시끄럽다. 해가 지면 마을의 개들이 무리지어 짖는다. 하지만 나는 홀로 책을 읽으며 편안하다. 이따금 문밖을 나서면 달리는 사람은 땀을 흘리고, 말 탄 사람은 내닫으며, 수레와말은 뒤섞여 얽혀 있다. 나만 홀로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일찍이 소란함으로 인해 나의 한가로움을 잃지 않으니, 내 마음이 한가롭기 때문이다.
일 없다고 빈둥거리면 정작 바빠야 할 때 할 일이 없다. 고요할 때 허튼생각 뜬 궁리나 하니 움직여야 할 때 찾는 이가 없다. 남이 안 본다고 슬쩍 속이면 대명천지 밝은 데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젊은 시절 부지런히 노력하고 애써야지 늙었을 때 나를 찾는 곳이 있다. 사람은 한가하고 고요할 때 더 열심히 살고, 남이 안 볼 때 더 노력하며, 젊을 때 더갈고닦아야 한다. 일 없을 때 일 안 하면 일 있을 때 일을 할 수가 없다. 사람의 쓸모는 평소의 온축蘊蓄에서 나온다. 평소의 몸가짐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부러진다. 지극한 사람이 부드러움을 귀히 여기는 까닭이다. 칼날은 예리해서 부러진다. 그래서 지극한 사람은 두터움을 중하게 여긴다. 신룡神龍은 보기 어렵기 때문에 상서롭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지극한 사람은 감추는 것을 귀하게 본다. 푸른 바다는 아득히 넓어 헤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지극한 사람은 깊은 것을 소중히여긴다.
"마음에는 두 가지 병이 있다. 하나는 마음이 있는 데서 오는 병(有心之病)이고, 하나는 마음이 없는 데서 오는 병(無心之病)이다. 마음이 있다는 것은 인심(人心)을 주인으로 삼는 것이고, 마음이 없다는 것은 도심(道心)이 주인이 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이 두 가지는 다른 것 같지만 병통이 생기는 근원은 실제로 같다. 경(敬)으로써 내면을 바르게 하고, 공과 사를 구분해서 이를 살핀다면 이 같은 병통이 없어진다."
유심지병(有心之病)이 있고, 무심지병(無心之病)이 있다. 마음은 있어도 문제고 없어도 문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마음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고, 어떤 마음을 지니느냐가 더 문제다. "자넨 생각이 너무 많아!" 안 해도 될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다는 말이다. 유심지병이다. 그의 마음은 인심(人心), 즉 계교하고 따지느라 바쁜 마음이다. "도대체 생각이 있나 없나?" 이런 소리를 듣는다면 그는 무심지병에 걸린 사람이다. 그저 몸을 따라 마음이 간다. 아무 생각이 없다.
해야 할 생각은 안 하고 쓸데없는 생각만 많다. 그러니 늘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마음에 노여움과 원망이 있고 보니 말투가 모질고 사나워진다. 일을 열심히 해도 앞뒤가 바뀌어 늘 결과가 어긋난다. 두려움은 재난 앞에 흔들리고, 위력 앞에 꼼짝 못하게 만든다. 돈 문제로 인한 걱정 근심은 사람을 무력하게 해서, 옳고 그름을 떠나 계산기를 두드리게 만든다.
허튼 마음을 닦아내고, 실다운 마음을 깃들이는 방법으로 다산은 ‘경이직내(敬以直內)‘를 꼽았다. 공적인 일인지 사적인 욕심인지를 살펴 마음의 균형을 유지할 때 두 가지 마음의 병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맹자는 "사람이 닭이나 개가 달아나면 찾을 줄 알면서, 마음은 놓치고도 찾을 줄 모른다. 공부란 별것이 아니다. 달아난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라고 했다. 마음이 주인 노릇을 못하면 몸은 그대로 허깨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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