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은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다국화빵 기계다 지하철 자동 개찰구다 어디 한번 그 투입구에당신을 넣어보라 당신의 와꾸를 디밀어보라 예컨대 나를 포함한 소설가 박상우나시인 함민복 같은 와꾸로는 당장은 곤란하다 넣자마자띠― 소리와 함께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그 투입구에 와꾸를 맞추고 싶으면 우선 일 년간 하루 십 킬로의로드윅과 새도 복싱 등의 피눈물 나는 하드 트레이닝으로 실버스타 스탤론이나리차드 기어 같은 샤프한 이미지를 만들 것 일단 기본 자세가 갖추어지면세 겹 주름바지와, 니트, 주윤발 코트, 장군의 아들 중절모, 목걸이 등의 의류 액세서리 등을 구비할 것 그 다음미장원과 강력 무쓰를 이용한 소방차나 맥가이버 헤어스타일로 무장할 것그걸로 끝나냐? 천만에, 스쿠프나 엑셀 GLSi의 핸들을 잡아야 그때 화룡점정이 이루어진다.

시인의 감수성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 우리는 기 드보르Guy-Ernest Debord, 1931~1994와 그의 주저 《스펙타클의 사회La Société du Spectacle》 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 드보르는 우리가 구경거리가 넘쳐나는 사회, 그래서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소중한 삶도 돌볼 여지를 빼앗아버리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이 구경거리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집어등集魚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징어잡이 배가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집어등을 환하게 밝히고 오징어를 유혹하듯이, 자본주의 체제는 각 가정의 중심부에 놓여 있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모니터의 불빛으로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세계가 단순한 이미지들로 바뀌는 곳에서는, 이 단순한 이미지들이 현실적 존재가 되고, 또한 무자각적인 행태의 효과적인 동인이 된다. 스펙타클의 임무는 더 이상 직접 지각될 수 없게 된 세계가 다양한 전문화된 매개물들에 의해 보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 스펙타클은 대화dialogue와 대립물이다.─ 《스펙타클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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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Übermensch, overman)는 현재의 나를 넘어서 어제와 다른내가 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를 극복하는 길, 짐승을 넘어 위버멘쉬로 가는 길은 험하고 쉽게 나서기 어려운 길이다. 니체는 우리에게 "몰락하는 길이 앞으로 나가는 길이며, 그런 길을 가는 사람만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몰락은 바닥으로 영원히 주저앉아 일어설 수 없는 추락이 아니다. 삶은 수많은 몰락과 극복의 연속이고,
우리는 몰락의 체험 이후 재차 몰두, 몰입하며 자기를 극복하는 방법과지혜를 배운다. 더군다나 몰락은 나를 둘러싼 허상과 허식을 걷어낸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위험한 모험을 시도하다.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하강체험을 해봐야만 과거와 다른 방법으로 높게 비상할 수 있는 방법을 얻는다. 몰락 두려운가? 그래서 지금 그 자리에 안주하려고 하는가? 그런 결정을 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습관의 벽에갇혀 다시 빠져나오기 어려운 관성대로 사는 것이다. 관성대로 사는 습관도 나태의 결과가 아닌 근면의 성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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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길 위의 사람들. 길은, 인간人間의 길이다. 인생이란끝없이 갈라지는 두 갈래 길에서 고뇌하고 결단하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하여 내가 걷는 그 길을 따라 하루하루 달라져 가는 쉬임 없는 생성의 존재가 나, 인간이다.
그럼에도 나는 탄생의 순간 이미 나다. 누구라도 이 지구별에 목숨 받고 태어난 날, 이번 생에 꼭 해야만 할 소명召命이 있어 자기 운명의 길 하나 품고 나오지 않았던가. 이 우주 역사에서 단 하나뿐이고단 한 번뿐인 내 인생의 이유와 의미를 묻고 찾아가는 것, 그것이 ‘인간의 길‘이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괴롭고 비참한 자는 길을 잃어버린 자다. 길을 잃고 나를 잃고 희망이 없는 자다. 우리가 길을 잃어버린 것은 길이 사라져 버려서가 아니다. 너무 많은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이보이지 않는 것은 어둠이 깊어져서가 아니다. 너무 현란한 빛에 눈이멀어서이다. 우리가 희망이 없다는 것은 희망을 찾지 못해서가 아니다. 너무 헛된 희망을 놓지 못해서이다. IS IS 구 SS IS그리하여 길을 잃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곳이 길이 되고 말았다.
다들 가니까 그 길로 달려가고, 다들 가는 그 길을 앞서가고자 비교경쟁하고 인정 투쟁하고, 잠깐 흘러 가버리는 유행과 팔림에 휩쓸려갈 때, 길은 나를 지나쳐 버린다. 나는 나를 지나쳐 버린다.

등 뒤의 그대가 있어

화산 폭발로 생겨난 비옥한 대지에서 자라는
인도네시아의 과일과 야채는 그 맛이 일품이다.
수확한 과일을 지고 나서는 아빠를 배웅하는 가족.
이것이 고단한 노동 속에서도 내가 사는 힘이다.
내 등 뒤에 그대가 있어 나는 나아갈 수 있으니.
나는 나 하나만의 존재가 아니다.
내 힘만으로 살아가는 생이 아니다.
내 등 뒤를 지켜주는 이들이 있어
그래도나는 살아갈 것이니.

만족滿足이란 발이 흙 속에 가득히 안기는 것.
내가 지금 불만에 찬 것은 대지에서 멀어진 두 발로
삶이 없고 우정이 없는 길로 쓸려가서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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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다. 그러나 이 한계를 인정하되긍정하지는 못하겠다.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 아마도 나는 네가 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이기적이기도 싫고 그렇다고 위선적이기도 싫지만, 자주 둘 다가되고 마는 심장의 비참, 이 비참 이야기에 진저리 치면서 나는 오늘도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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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서울 주민)
"환경문제는 인류의 보편적인 숙제인데 무작정 화장터 설립을 반대하면 안 되죠. 해당 시설들은 어디든 반드시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화장터는 필요하지만, 우리 동네에는 안 된다는 입장은 매우 이기적이죠. 설마 정부에 돈을 더 달라고 요구하고 그러는 건아니죠?"

이미혜(화장터 예정 부지 근처 주민)
"물론 환경문제는 우리 모두 함께 해결해야 하는 숙제죠. 그런데 왜인류의 보편적인 숙제를 일부 지역 사람들만 떠안아야 하죠? 서울사람들은 매립장, 소각장, 폐기물 처리장 등과 관련해 논란이 벌어지는 지역이 어디인지 알기나 할까요? 인류의 숙제를 도시보다 낙후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만 풀어야 한다니 모순이죠. 책임은 모두에게 있는데, 왜 힘없는 사람들만 피해를 입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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