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삶의 행복한 기억들이란 사진 한 장에 담겨진일상의 순간들이 아닐까?
가끔 세상을 떠난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가장 좋았던기억들은 의외로 대단할 것 없는 것들이다. 함께 목욕탕에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제주도로 놀러 갔던 그런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대단한 일이 아닌데도 우리의 기억들이오래도록 머릿속에 남겨두는 걸 보면 그것이 어쩌면 우리네 삶에서 진짜 대단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친구와 다시 하고픈 일들이 바로 그런 일일 정도로,

어려서부터 우리는 한 가지 얼굴을 강요받으며 살아왔다. 그것이 하나의 정체성을 만들어주기 때문이었다. 그 정체성이 흔들리는 말이나 행동을 보이면, "너 미쳤니?" "그건너답지 않아"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가진 다양한가능성‘들을 스스로 검열하며 살아왔다. 연기는 어쩌면 연기자들만의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양한 얼굴을 경험하고 그것 역시 나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더 풍요로운 삶을 살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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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결국은 다 버텨낼 수 있어. 당장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그건 언젠가 지나갈 거야. 치유될 수 없을 것 같던 깊은 상처도 결국 아물 것이고, 그건 삶의 훈장처럼훗날 우리를 즐겁게 해줄 추억담이 될 거야. 벽면 가득수많은 사람이 남겨놓은 낙서처럼?"

"인간은요, 평생을 망가질까 봐 두려워하며 살아요. 전그랬던 거 같아요. 처음엔 감독님이 망해서 정말 좋았는데, 망한 감독님이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그게 더 좋았어요. 망해도 괜찮은 거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안심이 됐어요. 이 동네도망가진 거 같고 사람들도 다 망가진 거 같은데 전혀 불행해 보이지 않아요. 절대로. 그래서 좋아요. 날 안심시켜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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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는 마법 같은 해결책자원 절약이 ‘풍요의 이야기‘를 쓰도록 부추겨온 산업계와 완전히 불화를 이루지 않는 척하는 것도 소용없고, 지난 50년 넘게 이어져온 소비의 증가가 더 많은 이익, 더 많은 수입, 더 많은 부의 추구와 관계 없는 척하는 것도 소용없는 일이다. 이런 결합이 문명을 건설하는 유일한 방법인지 주위를 둘러보고 스스로에게 질문할 때다. 그런 추측이모두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언제어디서 더 많이 소비할까 대신 어떻게 덜 소비할 수 있을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비즈니스와 산업계가 우리를 대신해 이런 질문을 던질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계속 상기시킨다. 우리는 강하고 또운도 좋다고, 지구는 너무 적은 자원을 놓고 살아남으려 애쓰는 많은 사람의 집이기도 하다. 우리가 식량과 안식처,
깨끗한 물을 누리는 집단이라는 사실은 지금껏 우리가 위태롭게 만들어온 세상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언가 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만일 당신에게, 당신 부모보다 10년 더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자원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지구상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우리는 소비의해독解毒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절대로 상황이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자신의 삶을 살펴보자. 우리가하는 일 중에 가장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 무엇인지알고 있는가? 그런 행동을 바꿀 의향이 있는가? 우리 스스로를 바꾸지 못한다면 사회제도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우리를 치유해주는 것은 폭풍이나 회오리바람도 아니고,
군주들이나 귀족들도 아니며, 민주주의도 아니다.
양심에 이야기하는 고요하고 작은 목소리와우리를 더 폭넓고 현명한 인간애로 이끄는 마음이우리의 치유가 될 것이다.
- 제임스 러셀 로웰(1884)

Step 3: 가치 체계에 합당하게 행동할 수 있을까?
실행할 수 있는 변화를 하나만 골라보자. 자동차를 조금 덜 탈 수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여행을 조금 줄일 수는 없을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어떨까? 식료품(특히나 사놓았다가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것)을 40퍼센트 덜 구입하면?
설탕이 든 음식을 피하는 방법은? 매주 육류 섭취를 줄여볼 수 없을까? 플라스틱 제품을 두 번 이상 재사용하는 방법은 없을까? 아니, 세 번 이상 사용은 가능할까? 겨울에는난방 온도를 조금 내리고 여름에는 냉방 온도를 조금 높인다면 어떨까? 지역에서 만드는 제품을 사용한다면? 조금 덜 사들인다면? 편리함을 조금 더 많이 포기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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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 사회가 코로나19 이전의 ‘정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가고 난 후,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음식물을 많이 낭비하며 환경에 큰 해를 가하게 될지 종종 질문을 받는다. 코로나바이러스 봉쇄령을 통해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직장과 가족, 그리고 내 삶을 위해 꼭 필요했던 일들,이를테면 우리가 수년간 해왔던 운전하고 사람 만나고 물건을 사고 비행기를 타고 쇼핑하고 여행하는 일 등의 대다수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일이었다. 좋든 싫든, 훨씬 더 좋든 더 나쁘든, 우리는 지난 50년 동안 계속해서 익숙해져 있었던 소비의 습관 없이 몇 달을 지내왔고,
대부분은 잘 이겨냈다.

헨리 조지 시대 이후 인구가 두 배로 증가하는 동안곡물 생산량과 어획량은 세 배 증가했고 육류 생산량은 네배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전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 땅에태어났지만 식량 생산 또한 필요한 양을 훨씬 넘어설 만큼많아졌으니, 헨리 조지가 믿었던 그대로였다.
오늘날 우리가 확인하는 이 세상의 결핍과 고통은 필요한 만큼 만들어내지 못하는 지구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나눌 줄 모르는 인간의 무능함 때문이라는 헨리 조지의말은 맞았고, 이와 관련해서는 책 뒷부분에서 다시 살펴볼것이다. 많은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는 바람에 더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더 복잡한 문제는 인류의 10퍼센트에 의해 이루어지는 엄청난 식량과 연료 소비로 인해 나머지 90퍼센트의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만들어내는 지구의 능력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 세대에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대부분의 정치적 논의는 이런 현실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기반으로 삼곤 한다.
진실을 말하자면, 현실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는 오직 네 가지 자원만 주어져있다. 땅과 바다, 하늘 그리고 우리 서로다.

OECD 36개국이 함께 육류 소비량을 절반으로 줄인다면만일 (북미와 유럽, 이스라엘, 호주, 뉴질랜드, 일본을 포함하는)세계의 식량용 곡물 생산량은 40퍼센트 가까이 늘어날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도 생각해보자. OECD 국가들이 매주하루만 고기 없는 날‘을 정해 지킨다면, 올 한 해 배꿇는사람들을 모두 먹일 수 있는 1억 2,000만 톤의 식량용 곡물이 여분으로 생기게 된다.
우리는 영양실조로 시달리는 8억 명 이상의 인류와이 지구를 나누어 쓰고 있다. 이들은 ‘일상 활동 유지에 필요한 식이 에너지가 최소 수준 이하‘에 해당하는, 다른 말로 굶주리고 있는 아이이고, 여성이고, 남성이다. 누군가는아무 이유 없이 이런 상황에서 살아야 하고 또 이런 상황에서 죽어야 한다. 굶주림은 지구의 공급 능력 때문이 아니라, 생산한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하는 우리의 실패로 등장한 문제다. 육류를 생산하느라 지구상의 먹을 수 있는 곡물3분의 1이 사라지는 것을 빼고도 우리는 여전히 75억 인구가 매일 2,900칼로리씩 섭취할 수 있는 정도의 음식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USDA가 제시한 건강한 삶을 위해 필요한 1인당 에너지 필요량을 공급하고도 남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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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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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아렌트가 강조한 것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이히만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와 다름이 없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는 ‘악의 평범성banality에 대한 보고서’라는 부제가 달린 것이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유대인 학살이라는 전대미문의 범죄 혹은 악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발생했던 것일까요? 아렌트는 바로 이 점에 관해 숙고에 숙고를 거듭했던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아이히만이 저지른 범죄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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