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세계는 가없고, 가야 할 길은 끝없다. 갈림길을 만날때마다 다른 한 길을 그저 지나치는 것이 안타깝다. 지난 궤적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면, 그래도 보이지 않는 맥락과 인연들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지 싶다. 이제 한 시절을 털고 다시 나서는 길에서 어떤 숲과 오솔길을 지나 어떤 뜻하지 않은 인연과 마주하
게 될는지 궁금하다

예전의 책 읽기는 큰 소리로 리듬을 맞춰 되풀이해 읽는 성독聲讀이 기본이었다. 소리 내서 읽는 것을 ‘독서讀書‘라 했고, 그저 눈으로만 읽는 것은 ‘간서看書’로 따로 구분했다. 같은 책을 읽고 또 읽어 아예 입에 붙고 귀에 젖도록 읽었다. 어찌 보면 매우 소모적으로 보일 법한 이 같은 방법이 가장 보편적인 독서법이었다.
이 경우 독서는 의미보다 소리로 먼저 왔다. 배움을 처음 시9
작하는 아이들은 뜻도 모른 채 읽기부터 시작했다. 서당에서 배운 글을 집에서 마저 다 외우고, 아침에 서당에 가서는 책을 앞에두고 돌아앉아 외웠다. 이것이 배송背이다. 이렇게 무조건 외우다 보면 어느 순간 의미가 들어왔다. 한자는 일종의 외국어였으므로 반복해서 읽어 아예 통째로 외우는 방식은 나름대로 효과적인 측면이 있었다.

사전을 바탕으로 다른 책에 미쳐서 그 풀이와 해석을 살펴 말의 뿌리를 캐고, 그 지엽적 의미까지 모아야 한다. 여기에 더해 『통전通典』이나 『통지通志』, 『통고通考』같은 책에서 ‘조제‘의 예법을 살펴 차례대로 모아 책을 만들면 길이 남을 책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전에는 어느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네가 이날부터는 조제의 내력에 대해 완전히 능통한 사람이 되겠지. 비록 큰 학자라 하더라도 조제 한 가지 일에 관해서는너와 다투지 못하게 될 터이니 어찌 큰 즐거움이 아니겠느냐?
주자朱子의 격물 공부도 다만 이 같을 뿐이었다. 오늘 한 가지사물에 대해 궁구하고, 내일 한 가지 사물에 대해 캐는 사람도또한 이렇게 시작했다. 격格이란 말은 밑바닥까지 다 캐낸다.
는 뜻이다. 밑바닥까지 다 캐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 보탬이 없을 것이다.

책은 많은데 읽은 것은 적다. 예전 배운 것은 몸에 익지 않았고, 새로 배운 것은 성글다. 눈이 한번 책 위를 지나기만 하면게으른 마음이 생겨난다. 책이 많으면 많을수록 배움은 점점더 거칠어져서 마침내는 새것과 옛것이 모두 없어지기에 이른다. 이것은 진실로 배움을 시작하는 젊은이의 일반적인 병통이다. 한 글자마다 한 글자의 뜻을 찾아보고, 한 구절마다한 구절의 의미를 따져 본다. 한 단락을 이같이 하고, 한 권을이같이 한다. 많기를 탐내거나 적음을 부끄러워 않는다. 다만정밀함에 힘써 절로 익숙해진 뒤에는, 한 책을 쓰면 나의 소유가 되고, 두 책을 베껴도 나의 소유가 된다. 이처럼 해 나가면열 권, 백 권, 천 권, 만 권의 많음에 이르더라도 나의 소유가아님이 없게 되고, 책과 내가 하나가 된다.

붕우 간에 모여 성인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서로 살펴 돕는것은 후학이 반드시 힘쓰지 않을 수 없다. 혹 한가롭게 지내며혼자 있을 때는 논할 만한 것이 한둘이 아니고 의문 나는 것도 몹시 많다. 그러다가 갑자기 엄한 스승이나 좋은 벗과 맞닥뜨리면 마음과 입이 서로 호응하지 않아 꺽꺽하여 어느 한 가지도 궁금한 점을 펴지 못하고 만다. 이것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근심이다. 마땅히 일마다 메모를 남겨, 이해하기 힘든 곳에는 그 의문 나는 점을 적어 놓고, 나름대로 얻은 바가 있는 곳은 그 말을 기록해 두어, 혹 훗날 강학의 거리로 삼는다. 혹 서찰로 질문하여 더불어 밝게 살핀다면 깊고 잘 드러나지 않는뜻을 얻는 데 이보다 나은 방법이 없다.

아이가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司馬遷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으로 집게 모양을 해서 살금살금 다가가, 손은 잡았는가 싶었는데 나비는 호로록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계면쩍어 씩 웃다가 장차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이것이 사마천이 책을 저술할 때입니다.

글만 읽고 글쓴이의 마음과 만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독서라 할 수 없다. 사마천의 「자객 열전」이나 「항우 본기를 읽고서그 글 속에 담긴 사마천의 정신을 읽어내지 못하고 그저 그 문장력에 찬탄만 하는 것은 부뚜막 아래서 숟가락을 주워 놓고 무슨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숟가락 주웠다!"고 소리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고는 마치 어린아이가 나비를 잡으려고 숨죽여살금살금 다가가 잡았다 싶었는데 막상 나비는 날아가 버린 순간의 분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그 마음을 읽어야만 사마천을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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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강요되지 않는다는 거죠. 덕은 자기 문제를 극복하려고 만들어낸 가치와 연관되어 있다는 겁니다. 덕은우리 삶의 조건이고, 우리 삶을 더 낫게 만들어야 하며, 강요된 덕성은 삶을 해친다는 뜻이에요. 이 문제는 요즘 우리가 여러 사회적 현상을 통해서 겪는 어려움과 유사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해요.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거나 유교적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것이 덕성이 아니라면, 본래성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원래 덕성은 선을 행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낱말은 우리를 종종 현혹해요. 선이라고 하면 흔히 ‘도덕적 선‘이 먼저 떠오를 거예요. 하지만 선을 의미하는영어 good‘은 그저 ‘좋음‘입니다. 니체는 아주 간단하게 좋은 것은선, 나쁜 것은 악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좋은 것을 실행하는 능력을 덕성(virtue)이라고 이야기해요.

세 번째 덕성은 절제(temperance) 입니다. 자기를 통제하는 능력이죠.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절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보면 대부분 환장하잖아요. 참기가 너무 힘들어요. 저는 요즘 오래된 습관을 끊으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는데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실 때 케이크를 꼭 함께 먹는 습관이에요. 케이크를 먹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방법을바꿔서 케이크를 넷으로 등분해서 먹는 것만큼은 지키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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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초인의 길동무일까요? 니체는 길동무를 함께 창조하고, 함께 수확하며, 함께 축제를 벌일 자‘라고 합니다. 똑같은 길을 간다는 뜻은 아니죠. 너는 너의 길을 창조하고 나는 나의 길을창조하며,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고 힘이 되는 친구, 함께 고난을 겪은 후에 수확하고 나눌 수 있는 친구. 그리고 함께 축제를 벌이며즐길 수 있는 친구. 이게 정말 좋은 친구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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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머튼의 단상 - 통회하는 한 방관자의 생각
토마스 머튼 지음, 김해경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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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는 세상의 가치와 추정에 관여하기를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세상을 경멸한다. 세상 경멸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왕자처럼 사느냐 은수자처럼 사느냐가 아니라, 일반 사회의 무의식적이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원리를 따라 살아가느냐 아니냐다.

머튼은 행복을 얻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이미 행복하다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자신이 잘 사는 것이 인류의 복지에 그 무엇보다도 크게 기여하는 것이다." 그러나행복에 대한 욕구를 억제하지 않으면 우리의 본질적인 복지는 흐려진다. 머튼은 종종 즐거움과 고통 양쪽을 다 포함하는 삶의 풍요로움에 전적으로 자신을 바치지만 지나칠 경우에는 억제의지를 발견하는 지혜가 있는,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의 직계直系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통찰력 있는 수도자들이 즐겨 마음에 간직하는 또 하나의 패러독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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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나 지금이나 부모님은 돈 많은 삶이 좋은 삶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다시 돈 많이 벌어서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지를 묻죠. 이렇게 자꾸 물어서 궁극적으로는 질문을 받은 이가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점에서 시장은 철학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의영혼을 유혹했다는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죽었습니다. .

그로부터 2500년이 지났습니다. 오늘날에는 시장을 무시하려야무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 삶을 지배하는 곳이 시장이니까요. 대학에서 교육을 받는 이유도 좋은 직업을 구해서 연봉을 많이 받기 위해서잖습니까. 요즘은 심지어 종교도 시장처럼 생각합니다. 어느 교회를 다닐지 쇼핑을 해요. 우리 영혼에 지침이 되는 가치조차 쇼핑의 대상이 된 거죠. 차라투스트라의 시장은 아무런 가치도 생각하지 않고 가치에 의미를 두지 않는 군중이 모이는 곳입니다. 여기에는 천민이나 군중, 폭민 같은 사람만 있는 거죠.

유튜브가 가진 강력한 힘 가운데 하나는 시청각을 활용해서 우리가 순간적으로 판단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문자로 구성된 책은우리가 상상하고 사유하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제공하는데 비해, 유튜브는 휙휙 바뀌는 이미지를 통해 순간을 지배하는 거예요. 영상으로 어떤 상황이나 자료 화면을 보면서 우리는 이미 감정적으로 판단하고 들어가는 거죠. 이러한 순간의 지배자 세 가지는 모두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달아나라, 나의 벗이여,
그대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거친 바람이 사납게 불어오는곳으로! ‘고독이 없으면 21세기에도 절대 초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주권적 개인으로서 자신만의 가치를 가지고살아가려면 때로는 치열하게 고독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독할 줄모르는 사람은 그냥 휩쓸려서 살아갑니다. 남이 생각하는 대로각하고, 남이 사는 방식대로 살아요. 그것은 니체가 마지막 인간이라고 일컫는 시장의 군중인 거죠. 니체는 군중이 되지 말자고, 휩쓸려가는 삶을 살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셀럽은 어떤 방식으로 쇼를 하고, 무엇을 보여줄까요?
니체가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뒤집어엎기. 그것이 그에게는 증명이라 불린다. 열광시킴. 그것이 그에게는설득이라 불린다.뒤집어엎기와 열광시키기 두 가지 방법이 있다는 거죠. 먼저 뒤집어엎기. 기존의 것을 확 뒤집으면 된다는 거예요.
증명이 하나도 안 되더라도 아주 과격한 방식으로 뒤집어엎죠. 그러면 그것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거 아니겠습니까. 열광시키기.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듣지 않는 상품은 팔리지 않습니다. 21세기에는 누구나 주목해서 듣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죠.

《리바이어던》에는 홉스의 국가론을 한마디로 압축한 명제가 있습니다. "Auctoritas, non veritas facit legem."라는 라틴어로,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법을 만든다.‘라는 문장입니다. 국가를 유지하는 데는권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요. 국가가 발전할수록 개개인이 가지고 있던 수많은 권한과 권리를 국가에 양도해버립니다. 그런데 국가가 강해질수록 개인들이 위축됩니다.

과연 어떤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요?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직업을 가졌든 간에 사회 구성원들에게 스스로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존재라는 느낌을 주는 사회일 겁니다. 반면 나쁜 사회는 많은 사람에게 삶의 의미, 자신의 쓸모에 대해 회의를 갖게 만드는 사회겠죠.
니체는 잉여 인간의 유형을 세 가지로 나눕니다. 지식을 얻지만현명해지지 않는 교양 속물, 새로운 것을 전하지만 언제나 낡은 언론인, 부를 끌어 모으지만 점점 가난해지는 졸부인데요. 그러면서 "국가가 끝나는 곳, 그곳에서 비로소 쓸모없지 않은 인간들의 삶이시작된다 "라고 이야기해요.

어떤 사람은 자신을 찾으려고 이웃에게로 가고,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을 잃고 싶어서 이웃에게로 간다. 그대들 자신에 대한 그대들의그릇된 사랑은 고독을 감옥으로 만든다.23외로움을 극복하려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 달려가는 사람은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너무 분리되어자신의 내면 세계로 침전하며 성처럼 살아가는 사람 역시 진정한의미의 고독을 향유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차라투스트라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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