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문학시간 - 과학고 국어수업 3년의 이야기
하고운 지음 / 롤러코스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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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떤 시는 이해가 안가요.
어떤 건 이해가 가? 팀스, 나는 하나도 이해가 안 간다.
그렇지만 지금 배워두고, 지금 알아둬라.
그럼 언제든 때가 되면 이해할 거다.
어떻게 이런 걸 이해할 수 있는지 전 모르겠어요.
시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은 거의 다저희는 겪어본 적도 없는 일들이에요.
겪게 될 거다. 팀스, 겪게 될 거야.
그때 너희들은 해독제를 이미 가지고 있는 거지.
슬픔, 행복, 심지어 죽음도.
지금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거야.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The History Boys〉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아직 건너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아직 살아보지 못한 날들이다.
그리고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말은
아직 내가 하지 못한 말이다.
- 나짐 히크메트, <파라예를 위한 저녁 9시에서 10시의 시, 1945년 9월 24일)

시 낭송이 끝난 후, 수업을 여는 시로 나짐 히크메트의 시를 고른 이유에 대해 조심스럽게 전했다. 가장 아름다운 말은아직 내가 하지 못한 말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너희와 앞으로 매일 더 아름다운 말을 나누고 싶고, 매일 더 아름다운 수업을 하고 싶다고, 혹시 그 약속이 지켜지지 못할지라도 지금내 마음만은 그러하다고, 우리 앞으로 1년간 서로 아름다운사이로 잘 지내보자고,

‘ ‘시란 무엇인가? 시와 소설은 어떻게 다른가?‘
이 질문에 대한 수많은 답변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는 폴 발레리와 최두석의 것이다. 폴 발레리는 이렇게 말했다.
"산문이 발걸음이라면, 운문은 춤이지!"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비유다. 김형수의 《삶은 언제 예술이되는가》라는 책에서 이 문장을 읽고 어찌나 기분이 좋았던지. 수업시간에 이 문장을 읊어주면 아이들은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오오오 했다. 이 비유를 알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답은 최두석의 노래와 이야기>라는 시였다.

선생님께서는 처음 보고 잘 이해가 되는 시도 좋지만, 처음엔 잘 이해되지 않아도 곱씹을수록 더 깊은 향이 나는 시가좀 더 훌륭한 시라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학창시절 읽은 시에 감명받아 국어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하는데, 좋은 시 한 편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시는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도 있고 해서 별로 재미있는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치만 시의 묘미는 시를 읽고난 후에 그 시가 전달하려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사색에 잠긴 후에 깨달음을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를 읽는 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과학을 한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안에 녹아 있었다.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독일의 수학자 카를 바이어슈트라스의 말 시인이 아닌 수학자는 진정한 수학자가 아니다"를 떠올렸다.

‘나를 키우는 시간‘은 시간의 척추입니다. 우리 몸에도 척추가있지만 시간에도, 영혼에도 척추가 필요합니다. 그런 시간이없다면 우린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질 것입니다.
- 정혜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중에서

사는 것도 어려운데 왜 가짜 삶(소설)을 겪어보겠다고 이 정성을들이냐고? 소설을 읽는 것은 다른 장르의 책을 읽는 것과는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책이 사는 일을 생각하고 고민하게한다면, 소설은 한 편에 한 번씩 - 삶을 살게 한다. 한 권의소설을 읽을 때마다 한 번 더 살아본 기분이 든다. 나 아닌 다른사람으로,
박연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중에서

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주변을 둘러보길 바랐고, 한 번 더 생각하길 바랐고, 세상과자기를 바로 보길 바랐다. 그것이 전부였다.

지식인이란?
자신과 관계없는 문제에도 상관하는 사람,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
자신의 학문적 명성을 인간의 이름으로 사회와 기존 권력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

밤을 새운 문장. 나에게 있어서 조세희의 문장은 그렇게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그런 문장에 대한 태도는 장인적인 조 탁과는 다르다. 그가 밤을 새우는 이유는 문장을 다듬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장을 찾기 위해서다. 문장을 찾는다는 것과
‘문장을 다듬는다‘는 것은 소설을 대하는 태도에서 분명하게구별된다. 문장을 다듬는다‘는 것은 이미 이야기의 정황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정황에 맞는 좀 더 정확한 문 장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장을 찾는다‘는 것은 이야기의 정황이 아직 없다는 말이다. 둘 다 이야기의 방향은 있지만정황이 있고, 없고에서 차이가 난다. 문장을 찾는다‘는 행위는 그렇게 해서 찾아진 문장이, 스스로 정황을 만들어나간다.
는 뜻이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한 명, 한 명의 알에게 관심을 갖는일이구나. 우리가 영혼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구나. 그렇게 벽과 알의 비유는 소설을 읽는 이유를 알려주었고, 우리를 깨어 있게 했다.
그 사실을 늘 잊지 않으려고 한다. 소설을 읽을 때뿐만이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집단으로 보지 않고 한 명, 한 명의 개인으로 바라보기. 사건의 명칭이나집단 혹은 시스템으로 뭉뚱그리지 말고, 그 안의 사람을 보기. 2만 명이 사망한 대지진 사건에 대해 일본의 한 영화감독은 2만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2만 번 일어난 거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가 아니라 김건우, 이영만, 한 세영... 차마 다 적을수 없어서 미안한 304명의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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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노동하는 인간은 매일 노동할 기력을 유지해줄 양식을 얻기 위해 기를 쓰며 다시 그 기력을 소모한다. 그렇게일하려고 살고, 살기 위해 일하면서 매일 서글픈 쳇바퀴를도는 것이다. 매일의 양식이 피로한 삶의 유일한 목적이고피로한 인생에서만 매일의 양식이 얻어지는 것처럼." - 대니얼 디포

모두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고 행복하지 않은 노동의 양을되도록 최소화하는 것이 오늘날 문명세계의 최우선적인 의무입니다.

누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윌리엄 모리스라고 하겠다. 그는 과연 누구였는가? 현대 디자이너의 원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인이기도 하고 화가이기도 하고 소설가이기도 하다. 또 사회주의 운동가이기도 하고 출판인이기도 하고… 말하자면 그의 전공 내지 직업은 바로 모리스로 산다는 것‘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에게 디자인은 획일화된 산업사회에서 탈인간화를 강요받는 것에 대한 ‘반란‘ 그 자체였다. 미의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노자 오슬로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현대의 삶이 살 만한 것이 되려면 두 가지 미덕이 꼭 필요합니다. 만드는 사람과 사용하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이 되는, 민중에 의해 민중을 위해 만들어지는 예술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꼭 필요한 것은 정직함과 소박한 삶입니다. 소박한 삶에 반대되는 악덕이 뭔지 이야기하면 그 의미가 분명해질 텐데, 그건 호사스러움입니다. 내가 말하는 정직함이란 다른 사람의 손해로내가 이득을 보지 않겠다는 결심, 모든 인간이 각자 마땅한 몫을 누리도록 하자는 마음가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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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다. 참으로 인간적인 것은 무엇이든 신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이 없다. 그리스도제자들의 공동체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1항)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그대의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일 따름입니다.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사용하라고 주신 것을 그대 홀로 빼앗아 썼기 때문입니다.
땅은 부유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입니다. "땅은 부유한 사람, 가난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이가 함께 사용하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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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스스로 선택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나를 부르시는 그 소리를 향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나를 부르셨다면, 내 삶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다면내 생은 남을 위한 것입니다."

경제는 영어로는 에코노믹economic인데 ‘오이코스oiko와노미아nomia‘라는 그리스어를 합성한 단어입니다. 오이코스는 집‘, 곧 우주라는 큰 생명 공동체를 말합니다. ‘노미아‘는 ‘가꾸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경제는 우리가 사는 우주라는 큰 집, 생명의 집을 가꾸는 것입니다. 집(가정)은 돈으로만 가꿀 수 없습니다. 돈만으로 한 가정을 꾸미려 할때 오히려 그 가정은 생명을 잃고 망할 수 있습니다. 경제의 한자어도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경제는 다스릴경經, 세상 세世, 건널 제濟, 백성 민民으로 구성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약자인데 세상을 다스려 백성을 고난에서 구제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하는 일, 경제제민이 경제입니다.

세상이 원상 복귀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하는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성당의 빈자리가 다시 채워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고민하는 것도 아닙니다.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이제 과거로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런 의미에서 원상 복귀는 없습니다. 새 시작이 있을 뿐입니다. 새 시작이란 삶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모이게 될 성전은 우리와 인류를 원천으로, 신앙의 원천, 복음의 원천으로 안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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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코로나 위기를 맞아, 종교의 차이를 떠나 모두가 좋은 방향으로 변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회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느님 아래에는 누가 높지도 않고, 누가 낮지도 않다. 존엄의 회복을 위해서는 경제는 이익 추구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정치는 권력을 위해 거짓과 포퓰리즘에 매몰되지않아야 한다. 경제는 사람을 생산의 도구로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정치는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에 속한 사람들을배제하고, 특정한 집단에게 민심의 진정한 해석자라는 훈장"을 달아주어서는 안 된다. 경제와 정치는 다시 "섬김을통한 사람의 표현"이 되어야 한다.

교황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경계한다.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우리를 현실로부터 떼어놓는 열등한 사음이고방식"이라며, "파렴치한 정치인들이 습관적으로 행하는 못된 짓"이라고 나무란다. 현실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갈등도 피하려는 ‘거짓된평화주의‘는 결코 해결책이 아니며,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태도이다.

코로나 이전 세계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란 답이다. 그 근거는? 적어도 나에게 설득력있게 들리는 대답이 없다. 오히려 "이번고통을 변화의 기회로 삼는다면 위기가 지나간 후에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러나 위기를 외면하고 숨어버리면, 위기가 지나간 후에 더 나빠질 것입니다" 라는교황의 결론이 훨씬 더 와닿는다. 언젠가부터 듣기 좋은말을 경계하게 됐지만 교황의 말은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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