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와의 관계는 누군가를 대상화하고 관객을 두는 연극적인 무대를 설정하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자신에 대해서윤리적이고 미학적인 태도를 설정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홀로 자기 자신과 대면할 때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기연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시초적인 행동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환대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관계, 즉 삶의 내재성이 가지런히 정돈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일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돈 첼리 신부님의 대답은 내가 무슨 일을 완수했더라도, 또 그 일이 아무리 선하고 옳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뻐길 필요는 없다는 것을, 특히 자만심에 빠져 떠벌리고 다녀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돈 첼리 신부님의대답을 떠올리면 어디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이상하게도 올리버 웬들 홈스 2세의 금언이 생각나곤한다. 〈내 성공의 비밀은 젊었을 때 내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데 있다. 자신이 신이 아님을깨닫고, 자신의 행위를 항상 의심하면서 지난 삶을 충분히 잘 살지 못했음을 자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이 위대한 증인이 사라지거나 쫓겨나고 나면 뭐가 남을까? 사회의 눈, 타인의 눈이 남는다. 사람들은 남들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이사회에서 익명의 블랙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속옷만입은 채로 술집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는 얼간이 짓도마다하지 않는다. 모두 남의 눈을 의식한 행동이다. 텔레비전 출연은 저 초월적인 존재를 대신하는, 전체적으로 고마운 유일한 대용품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텔레비전이라는, 현실과 다른 피안의 세계에 들어가 있고, 그 피안에서 남들에게 자신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지상의 피안에서는 모두가 우리를 본다.

다만 어리석은 일은 이런 경우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의미를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성취나 희생, 또는 그 밖의 좋은 특성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가 텔레비전에 나온 다음날 누군가 카페에서 우리를 보고는 야, 어제 너 텔레비전에 나온 거 봤어!〉 하고 말한다면 그건 단순히 네얼굴을 알아봤다는 것이지, 너를 알아준다는 뜻은 아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글이 실렸는데, 거기서 그는 이렇게설명했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감시하는 도구 역할을 하는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는 여러 권력 기관의 통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사용자들의열정적인 기여 덕분에 우리를, 바우만의 표현에 따르면 〈고백 사회〉로 이끈다. 이 사회는 공개적인 자기표현을 구성원들의 사회적 실존을 증명하는 중요하고도쉽게 이해되는 명확한 증거의 지위로까지 승격시킨다.

하지만 다른 진실도 있다. 언젠가 누군가 모두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이 모두가 지구 주민 전체로까지 확장되는 일이 벌어진다면 이런 식의 정보 과잉은 혼란과 소음, 침묵만 불러올 뿐이다. 물론 그로 인해 불안한 건 스파이뿐이다. 반면에 비밀 탐지의 대상이 되는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비밀에 대해 친구건 이웃이

또한 인터넷이 그학생에게 제공하는 정보들은 교사가 가진 정보보다 어마어마하게 포괄적이고, 거기다 금상첨화로 정확할때도 많다. 여기서 그 학생은 한 가지 중요한 지점을놓치고 있다. 인터넷은 학생에게 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만, 그 정보를 어떤 목적에 맞게 어떻게 찾을지,
찾은 다음에는 어떻게 거르고 선별할지, 또 어떤 기준으로 수용해야 하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저장 공간만 충분하다면 누구나 새로운 정보를 제장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정보가 저장할 가치가 있고, 어떤 건 그렇지 않은지 판단하는 데에는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 기술을 장악하고 있느냐가 설사 성적이 나쁘더라도 정규 학교 수업을 들은 학생과 천재적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독학자 사이의 차이를 만든다.

어떻게 옥석을 가리는지 정확한 지침을 줄 수 없다면 최소한 인터넷이 제공하는 정보를 매번 비교하고 평가하는 데 정성을 쏟는 누군가를 예를 들어 줄 수는 있다. 결국 교사는 인터넷이 알파벳 순서로 제공하는 것들을 하나의 체계로 묶으려고 매일 노력해야 한다. 인터넷은 티무르와 외떡잎식물이 있다는 것은 말해 줄 수 있지만, 이 두 개념 사이에 어떤 체계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 관련은 학교에서만 가르칠 수 있다. 학교가 아직 그럴 능력이 없다면 빨리 배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인터넷internet, 정보 information, 투자investment로이어지는 세 I는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는 당나귀의 울음소리에 그치고 말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에 한번은 차라투스트라 - 니체와 함께 내 삶의 리듬을 찾는 ‘차라투스트라’ 인문학 강의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삶의 조건이 아닌 것은 삶을 해친다. 칸트가 원했던 것처럼 ‘덕‘ 개념에 대한 존경심에서만 나온덕은 해롭다.
덕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강요되지 않는다는 거죠. 덕은 자기 문제를 극복하려고 만들어낸 가치와 연관되어 있다는 겁니다. 덕은우리 삶의 조건이고, 우리 삶을 더 낫게 만들어야 하며, 강요된 덕성은 삶을 해친다는 뜻이에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 기존 세력에게는 파괴자로 보이는 거죠.
여기에서 우리가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해요. 교통법규를 잘 지킨다거나 유교적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것이 덕성이 아니라면, 본래 덕성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원래 덕성은 선을 행하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낱말은 우리를 종종 현혹해요. 선이라고 하면 흔히 ‘도덕적 선‘이 먼저 떠오를 거예요. 하지만 선을 의미하는영어 good‘은 그저 ‘좋음‘입니다. 니체는 아주 간단하게 좋은 것은선, 나쁜 것은 악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좋은 것을 실행하는력을 덕성(virtue)이라고 이야기해요..
만약 능력이 없다면 무언가를 실행하지 못하잖아요. 물리적으로는 에너지라는 개념을 쓸 수도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무언가를 일어나게 하는 내재적 힘이 에너지예요. 어떤 사람이 에너지가 넘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기운이 보이는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충실한 그리스도인이 있는가 하면 부실한 그리스도인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거룩해야 하겠지만 실은 정반대인 경우도 흔하다. 교회는 성속聖俗의 뒤범벅이다. 그래서 교부들은 교회를 일컬어 성녀이면서 창녀라고 했다. 그리스도인 개개인도 그렇거니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교회도 늘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비유 모두에 공통된 특성은 이 비유들에서는 시작과 결말이 대조된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굉장한 대조다. 보잘것없는 시작에 장대한 결말. 하지만 이러한대조가 실상의 전부는 아니다. 결실은 씨앗의 산물이고, 결말은 시작에 함축되어 있다. 무한히 커다란 것이 이미 극히 작은 것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 그 사건은 현재, 그리고 실로 비밀스레 이미 진행 중인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은밀성은 이 나라에 대해서 전혀아무것도 모르는 이 세계에서 신앙의 문제와 관련된다. 이 나라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신앙을 부여받은 이들은 이미 그 숨겨져 있고 보잘것없는 시작에서 다가오는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의 시작에는 그 마지막이 이미 함축되어 있다. 예수 자신의 사명과 관련한 회의라든가 조소, 믿음의 결여, 성급함 등 그 어느 것도, 하느님은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당신의 시작을 완성으로 이끌고 계시다는 그의 확신을 흔들어 놓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하느님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일체의 외면적인 현상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늘 염두에 두는 일이다. (요아킴 예레미아스, 《비유의 재발견》, 황종렬 옮김, 분도출판사

사랑스런 예쁜 꽃이빛깔만 곱고 향기가 없듯이아무리 좋고 아름다운 말도행하지 않으면 결과가 없나니, (화향품 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태적 전환, 슬기로운 지구 생활을 위하여 -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마지막 선택 굿모닝 굿나잇 (Good morning Good night)
최재천 지음 / 김영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부터 저는 우리인류가 ‘호모 사피엔스‘의 자만에서 깨어나 ‘호모 심비우스 Homo symbions(공생인)‘로 거듭나야 한다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자연 속에 함께 어우러져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지배하려는 우리의 오만한 사고방식, 경제성장 제일주의의 근시안적 정책, 나만 살고 보자 식의 이기주의적 도덕관 등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지구의 미래는 그야말로 불 보듯 뻔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의식의 대전환이 절실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치품들과 우리 삶을 안락하게 해준다는 것들은 꼭 필요한 것도 아니며 인류의 승격에 명백한 방해물일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