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실한 그리스도인이 있는가 하면 부실한 그리스도인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거룩해야 하겠지만 실은 정반대인 경우도 흔하다. 교회는 성속聖俗의 뒤범벅이다. 그래서 교부들은 교회를 일컬어 성녀이면서 창녀라고 했다. 그리스도인 개개인도 그렇거니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교회도 늘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비유 모두에 공통된 특성은 이 비유들에서는 시작과 결말이 대조된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굉장한 대조다. 보잘것없는 시작에 장대한 결말. 하지만 이러한대조가 실상의 전부는 아니다. 결실은 씨앗의 산물이고, 결말은 시작에 함축되어 있다. 무한히 커다란 것이 이미 극히 작은 것 안에서 작용하고 있다. 그 사건은 현재, 그리고 실로 비밀스레 이미 진행 중인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은밀성은 이 나라에 대해서 전혀아무것도 모르는 이 세계에서 신앙의 문제와 관련된다. 이 나라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신앙을 부여받은 이들은 이미 그 숨겨져 있고 보잘것없는 시작에서 다가오는 하느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분의 시작에는 그 마지막이 이미 함축되어 있다. 예수 자신의 사명과 관련한 회의라든가 조소, 믿음의 결여, 성급함 등 그 어느 것도, 하느님은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당신의 시작을 완성으로 이끌고 계시다는 그의 확신을 흔들어 놓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하느님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일체의 외면적인 현상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늘 염두에 두는 일이다. (요아킴 예레미아스, 《비유의 재발견》, 황종렬 옮김, 분도출판사

사랑스런 예쁜 꽃이빛깔만 곱고 향기가 없듯이아무리 좋고 아름다운 말도행하지 않으면 결과가 없나니, (화향품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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