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민한 부족민들이여, 문명국에 갔더니 보이지도 않는 시간이라는 요상한 것이 있더구나. 사람들은 시간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조그만 기계를 팔목에 차고 다니더구나. 그들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고는 그것을 1초의 시간이라고불렀다. 그리고 그런 것을 60개 모아놓고 1분의 시간이라고 했지. 그 1분을 또 60개 모아놓고 1시간이라고 했고 다시 그런 1시간을 24개 모아놓고 하루라고 말하더라. 우리같이 아침에 눈뜨면 하루가 시작되고 그러면 각자 맡은 일을 하고 저녁에 해가 지면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하고 잠자리에 들고,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고 눈을 뜨면 새날이 되는 것인데, 그게 바로 문명인들이 말하는 하루라고 말할수 있겠구나.
문명인들은 그런 하루를 산산이 쪼개놓고 시간이라고 부르면서 시간이 없다‘느니 시간을 놓쳤다‘느니 시간에 쫓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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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필리프 J. 뒤부아 외 지음, 맹슬기 옮김 / 다른 / 201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몽골인과 철새와는 달리 대부분의 인간은 방향 감각을 완전히 잊은 채 살아간다. 우리는 변화하는 자연, 밤하늘의 별, 사방에 펼쳐진 풍경을 읽을 줄 모른다. 이 모든 건 우리를 둘러싼 침묵하는 배경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마치 앞이 보이는 시각장애인처럼, GPS에서 나오는 기계음에 따라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한다. 당연히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을 다른 이에게(또는 기계에) 맡겨버렸다. 만약 갑자기 어딘가 드넓은 자연 한가운데 놓인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곳이 집에서 겨우 50킬로미터 떨어진 숲이고,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수단도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 길을 헤매게 될까? 어쩌면 우리 인간은 여행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은 건지 모른다. 가야 할 곳의 방향과 올바른 길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핵심적인 능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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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살자꾸나. 하늘에 가거들랑 살아 있는 순교도 있었노라
자랑이나 하자꾸나.
흔들리는 마음에 빗장을 채우며 난주는 살아 있다는 죄스러움을 씻었다.

애썼다, 애썼어. 죽기보다 사는 것이힘든 것이다. 죽은 사람은 죽은 대로 산 사람은 산 대로 사는 것이 인생이니, 나중에 하늘에 가서 천주님과 아범을 만나거든 살아 있는 순교도있었노라고 자랑이나 하자꾸나."

쇤네가 세상의 이치를 어찌 다 알겠어요? 제가 아는 건, 천한 것 안에도 귀한 것이 머물 수 있다는 것뿐예요. 사랑하는 마음만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하늘의 뜻도 같을 테니까요. 이것은 퍼주고 퍼주어도 닳지 않는 세상의 유일한 화수분이랍니다. 그리고 아씨, 명심하세요. 살다보면 온갖 일이 다 있답니다. 그렇지만 어떤 일도 그저 좋고 그저 나쁜일은 없다오. 설사 비단길 같은 길만 펼쳐진다 하더라도 그걸 잊지 마세요."

하늘이 멀다 하나 어디서나 흰빛은 내리고
그 땅이 멀다 하나 마음까지 멀겠느냐.
너는 어디서나 반듯하게 이름을 지키고 몸을 세우며
함부로 울지도 엎드리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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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들어와 우리 머릿속에 주입된 것은 자신에 대해 무지하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진리가 바로 존재하는 것의 조건이라는 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서도 아무런 문제 없이 성립하는 사회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무의미해요.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는가라는 기예art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누구인가를 정해줍니다.(…) 자신의 존재를 예술 작품(기예의 대상)으로삼는 것,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일입니다.‘
프랑스어에는 ‘처세술‘, ‘생활의 기술‘을 의미하는 art devivre라는 표현이 있는데, 슈뢰더와 푸코에게 이 표현은 ‘살아가는 일이라는 기예‘, ‘기예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을 가리킬 것이다. - 히로세 준, 『봉기와 함께 사랑이 시작된다.

■ 두 눈을 뜨고 보게. 내가 그리던 고향 마을아 (…) 두 팔을벌려 또한 그대의 아들 돈 끼호떼를 맞이하게나. 남의 팔뚝에 져서 패배하긴 했지만 자기 자신을 이기고 돌아온 아들일세. 그분 말에 따르면 자신을 이기는 게 인간에게 바랄 수있는 가장 큰 승리라는 걸세. - 세르반떼스, 『돈 끼호떼』.
■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지. 내가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왔는지? - 파블로 네루다, 『질문의 책』.

가장 나쁜 것은알면서, 모르면서
자기 안에 감옥을 품고 사는 것이다.
사람들 대부분 이렇게 살고 있다.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착한 사람들이.
- 「파라예를 위한 저녁 9시에서 10시의 시 ; 1945년 9월 26일, 나짐 히크멧, 이난아 옮김.

그런데 생각의 틀이 뭘까? 우린 우리가 어떻게 해도 세상은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물들어있어. 그렇다면 ‘세상이 변했다‘가 아니라 ‘세상이 바뀌었다‘라고 말해본다면? 이 표현에대해서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구나. 아마 너는 나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어떻게 바뀌었어?" 그래, 바깥 세상은 똑같았지만 난 바뀌었다고 대답했어. 세상이 바뀐다는 것은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과도 같아. 그렇기 때문에 그날은 평범한 날이었지만 나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대답했어. 일단은 잠을 충분히 잤기 때문에, 밥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그리고 좋은 시 한 편을 읽고 잤기 때문에, 내가 아이처럼 단순해졌기 때문에, 뭔가 좋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세상이 바뀌었다고 느꼈던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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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만든 건 내가 아니다. 그럴 지성이나 감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름다움은 나와 세상이 만나야 비로소 발생하는 현상인 탓이다. 만남에 대해서 가장 깊이 사유했던 프루스트(그는 과자 한조각을 홍차에 적셔 먹고 나서 그 만남에서 시작해 이십 년 동안 오천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썼다)는 아름다움이 "우리가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는 어떤 최상의 유형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해볼 수 없는 어떤 새로

"내가 나를 찾는 곳에서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우연한 기회에 내가 더 잘 발견된다."
몽테뉴, 『수상록』

"사람마다 기억을 거슬러 가다보면, 아 이게 내 인생의 첫 기억이구나, 하는 순간을 만나게 되는데요. … 그런 첫 기억은 무엇인가요? 기억이 희미하거나 꿈인 것 같거나, 남 이야기를 듣고 상상한것 같아도 상관없어요."
첫 꿈에서 (이것이 기억인지, 꿈인지, 환상인지 나는 여전히 구분하지 못한다) 드러나는 불안의 형태들을 여전히 내 안에서 만난다. 집으로돌아가고 싶지만 새로운 탐험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멀리 떠나지도 못한, 내 삶을 농축한 너무도 적절한 은유가 이미 첫 기억에 있다. 나는 첫 기억에 휘둘리고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휘둘리는 것들을 첫 기억이라는 형태로꿈꾸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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