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그럴 것이 이 명작들은 각기 자신의 시대에 중요했던 사회문화적 이슈들을 그 시대에 재미있다고 여겨졌던 방식에 따라 풀어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히도 그 작품들의 줄거리가, 온갖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내러티브에 익숙해진 오늘날 한국 독자들에게 재미있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명작들은 그 재미와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내러티브로서가 아니라, 삶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글로서의 고전문학은 여전히 커다란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도구들을 손에 쥐고만 있으면 고전문학을 읽는 것도 지극히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당연히 오늘날의 흥미진진한 영화나 TV드라마,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웹소설 등이 줄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과 재미이지만...

수없이 많은 젊은 영혼들이 『데미안』에 빠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어떤 것이 가치가 있고 어떤 것이 가치가 없는지, 삶과 가치의 모든 기준이 불분명한 방황의 시기에,그 질문에 대한 답이 밖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의 내면에 존재한다는 것만큼 멋진 위로의 말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신 자신을 아끼고, 당신 자신의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이세요. 당신 안에 세계가 있으며, 그런 당신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예요.
우리는 모두가 서로 다른 위치에 서서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따르는 한, 올바른 길을 찾고자 하는 한, 결국 모두 같은 길을 가고 있어요.

『데미안』을 읽는 동안 우리는 모두 이렇게, 비록 한순간일 뿐일지라도, 우리 내면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우리가 유일무이한 소중한 존재이며, 동시에 세상의 중심임을느낀다. 바로 그것이 『데미안』을 통해 헤세가 보여준, 진정으로 인간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얼마나오해를 했든 『데미안이 우리에게 남겨준 감동과 위안은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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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죽음들은 나를 무겁게 짓눌렀고, 어떤 죽음들은 몹시 가슴 아프게 했으며, 어떤 삶은 나를 겸허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것을복기하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틈날 때마다 기록을 남겨왔다. 거기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고, 적어 놓기라도 하지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과정을복기하고 글로 남기는 과정에서 내가 모르고 있거나 잊어버렸던,
혹은 찾고 있었던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환자들은 때로는 살아서 때로는 죽어서 나를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여기에 남아서 그들이 남긴 흔적들을 되짚으며 그 의미를 되새기곤 했다. 그래서 때때로 ‘죽음‘이라 쓰고 ‘삶‘이라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삶을 잊어가는 나에게 누군가는 계속 의미를 물어왔으므로,

누군가의 어제는 우리의 오늘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오늘은또 다른 이의 내일에 영향을 미친다. 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 모두는 이어져 있다.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억이 다른 이의 삶에 작은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진 빚을 비로소 갚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태어난다. 일종의 숙제라면 숙제이고,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의 숙제를 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인생의 숙제를 풀든 풀지 않든, 어떻게 풀든 결국 죽는 순간 그 결과는 자신이 안아 드는 것일 테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기대여명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조금 달리 보면 특별한 보너스와 같을지도 모른다. 보통은 자기가 얼마나 더 살지모르는 채로 살다가 죽기 때문이다. "자, 당신의 남은 날은 OO 입니다.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 물론 이 문제를 다 풀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빈칸으로 남겨두기에는 아쉬운 일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라는 첫 문장은 옳다고. 누군가에게 가족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었지만 때때로 누군가에게는 짐이자 삶을 옥죄는 족쇄에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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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복잡하게 살지 마세요! 어디로 가든, 어디로 가라는 요청을 받든, 어떻게 해야할지아는 것만 하시고, 당신 삶을 어렵게 만들지 마세요! 당신이 잘할수 있는 것도 있고 당신이 못하는 것도 있어요. 당신이 잘하는 것을 하면 어려움에 처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녀는 좋은 상식 같은조언을 해 주었지요. 우리는 단 한 번 만났지만 수년간 서로 알고지낸 것처럼 놀라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이것은 하느님께서 약점을 가지고 계시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그분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너무나 존중해 주신다. 진정한 사랑은 진정한 자유에서 오기 때문에...... 자유는 천상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성한 선물이다!

이제 시장으로 다시 가서 이 암탉의 깃털을 다 모아 오세요!"
"그건 불가능해요. 깃털이 바람에 다 날라가 흩어져 버렸어요." 그녀의 대답이었다.
필립 신부가 대답했다. "물론 그렇겠죠. 당신은 뒷담화가 어떤결과를 가져오는지 이제야 이해했나요? 그것은 어디로나 퍼져 나갑니다. 바람 속의 깃털처럼. 뒷담화는 회복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지요."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성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침묵의 여러가지 장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영적 투쟁에서 침묵은칼과 같은 무기이다. 수다스러운 영혼은 절대로 성덕에 도달하지못한다. 침묵의 칼은 영혼에 달라 붙으려는 더러운 것들을 모두잘라 버릴 것이다. 우리는 남의 말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우리가 하는 말이 하느님의 뜻인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즉시 대꾸한다. 침묵하는 영혼은 강하다. 침묵하는 영혼은 어떤 역경도 그를 쓰러뜨리지 못한다. 침묵하는 영혼은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에도달할 수 있다.

작은 아랍인, 마리얌은 말했다. 3) "나는 천국에서 많은 죄를 봤지만 교만은 보지 못했다. 지옥에서도 많은 좋은것들을 봤지만 겸손은 보지 못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은 겸손이다. 하느님께서는 무한하신 자비로 모든 죄를 용서하신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으신다. 교만 때문에 자신이지은 죄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죄를 고집스럽게 고수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자비를 거부하고 하느님 없이 살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 마귀의 이름만 들어봐도 벌써 함정이 들어 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름 자체에 이미 악에 대한 변명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점잖고, 동정심 많은 비둘기로 위장한 독성이 강한 독을 가진 뱀과 같다. 그 마귀의 이름은? ‘모두들 그렇게 해요(Everyone Does It.).‘ 이다.
‘모두들 그렇게 해요.‘라는 말은 모든 사람들에게 악을 선이라고 믿게 만든다. 이 말은 사람들을 보이지 않게 저주로 이끌어 간다. 성경에 이렇게 쓰여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불행하여라, 좋은 것을 나쁘다 하고, 나쁜 것을 좋다고 하는 자들!"(이사야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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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였을 때는 보이는 것을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보는 것이 중요했고 들리는 소리를 확실히 그리고 분별하며 듣는 것이필수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도보고 싶어서이고 들리지 않는 소리도 듣고 싶어서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시도하지 않는 시인이라면 시인의 감성이나 상상력이라는 것이 어디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거울에 비친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관계를 가짐으로써인간이 되고 자연은 다른 자연을 만나 서로 살아 있다는 것을확인합니다. 두 손바닥이 만나서 나는 소리와 두 개나 열 개의현상이 만났을 때의 감정의 진폭이 예술이 되는 겁니다. 나는 전에 읽은 레비나스E. Levinas의 철학에서 타인의 존재, 타자성의철학을 이런 식으로 발견하고 해결합니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멀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부르는 인기가요의 가사이면서 그 나라의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답니다.
‘우문투 응구문투 응가반투‘Umuntu ngumuntu ngubantu. 그 의미는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만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 입니다. 서구 전통론에서는 나라는 존재에 의해 타자가 정의되고타자를 나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자기중심적 이론이 오래된 대세인데 그 이론에 반기를 든 레비나스라는 철학자가 타자의 철학이라는 새롭고 아름다운 철학으로 20세기의 마지막을 빛나게 했습니다.
타자가 어떤 존재이든 그 생명을 존중하고 윤리적으로 대접해야 하며 타자와의 관계에서만 ‘나‘라는 존재의 유한성이 극복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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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그러니?"
"어멍은 어떤 일이 닥쳐도 놀라지도 않고 근심하지도 않으니 신기해서 그러우다."
"네가 어멍을 놀리는구나?"
"놀리려는 게 아니라 신기해서 그래요. 아무래도 제 맘에는 천주가아니 계시고 어멍 맘에만 계신가 보오. 늘 이렇게 맘이 쫓기고 불안하니 말예요."

"아이 참, 할망 그만하세요. 이제 나가봐야겠어요."
"못 간다. 오늘은 날 좀 살려주고 갑서. 무슨 보물이라고 그리 비싸게굴엄시니. 나도 알려줍서. 천주가 누구고 야소가 누군지. 자네에게 천주를 배운 아이들이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새카만 얼굴에 때가 꾀죄죄해도노상 기쁘고 즐거웡햄신니, 내 그 이유를 알아야쿠다.

난주는 지네굴이란 데가 사람이 죽을 곳이라지만 하늘의 뜻에 따라죽으면 죽으리오 살면 살리라 생각하여, 두려움보다는 남은 식구들 걱정으로 마음이 더 산란하였다.
옥문을 지키는 옥졸들이 수군거리며, 삼천갑자 동방삭도 저 죽을 날은 몰랐다더니 저년이 저승 일을 아는 것처럼 떠들어도 제 죽을 날은몰랐구나 하고 웃는다.
그 소리를 듣고서 난주도 조용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끝이로구나 하시작이요 시작인가 하면 끝이니 인생이라는 것을 누가 예측하리오.
한번 맺은 악연이 세상 끝까지 쫓기도 하고, 우연한 인연 하나가 삶의모든 것이 되기도 한다. 난주는 제 주위에 왔다가 사라지거나 사라졌다가 다시 다가온 숱한 연들을 생각하고, 아침이 오는 것도 잊고 앉아 있었다.

그 밤들을 생각하니 난주는 저절로 소름이 끼치고 눈물이 흐른다.
예순여섯이 된 지금까지도 지네굴의 퀴퀴한 냄새와 용암이 흘러내린종유석의 징그럽도록 반들거리던 모습이 눈앞에 선연했다. 죽음을 목에 두었을 때, 사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외로워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뼈 마디마디 시려오는 한기와 하기로 쪼그라진 위장보다도 외로움이란 맹독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지금 난주는 설사 죽음을 눈앞에두었다 해도 의연할 수 있었다. 깊은 연을 맺어온 사람들과 자식들은물론, 올레길 한 곳 담장 한 쪽에도 숱한 시간과 기억이 난주의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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