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들은 나를 무겁게 짓눌렀고, 어떤 죽음들은 몹시 가슴 아프게 했으며, 어떤 삶은 나를 겸허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것을복기하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틈날 때마다 기록을 남겨왔다. 거기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었고, 적어 놓기라도 하지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순간도 있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과정을복기하고 글로 남기는 과정에서 내가 모르고 있거나 잊어버렸던, 혹은 찾고 있었던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환자들은 때로는 살아서 때로는 죽어서 나를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여기에 남아서 그들이 남긴 흔적들을 되짚으며 그 의미를 되새기곤 했다. 그래서 때때로 ‘죽음‘이라 쓰고 ‘삶‘이라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삶을 잊어가는 나에게 누군가는 계속 의미를 물어왔으므로,
누군가의 어제는 우리의 오늘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오늘은또 다른 이의 내일에 영향을 미친다. 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 모두는 이어져 있다.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억이 다른 이의 삶에 작은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진 빚을 비로소 갚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태어난다. 일종의 숙제라면 숙제이고,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의 숙제를 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인생의 숙제를 풀든 풀지 않든, 어떻게 풀든 결국 죽는 순간 그 결과는 자신이 안아 드는 것일 테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기대여명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조금 달리 보면 특별한 보너스와 같을지도 모른다. 보통은 자기가 얼마나 더 살지모르는 채로 살다가 죽기 때문이다. "자, 당신의 남은 날은 OO 입니다.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 물론 이 문제를 다 풀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빈칸으로 남겨두기에는 아쉬운 일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라는 첫 문장은 옳다고. 누군가에게 가족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었지만 때때로 누군가에게는 짐이자 삶을 옥죄는 족쇄에 지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