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였을 때는 보이는 것을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보는 것이 중요했고 들리는 소리를 확실히 그리고 분별하며 듣는 것이필수였습니다. 그런데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것도보고 싶어서이고 들리지 않는 소리도 듣고 싶어서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시도하지 않는 시인이라면 시인의 감성이나 상상력이라는 것이 어디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거울에 비친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것입니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관계를 가짐으로써인간이 되고 자연은 다른 자연을 만나 서로 살아 있다는 것을확인합니다. 두 손바닥이 만나서 나는 소리와 두 개나 열 개의현상이 만났을 때의 감정의 진폭이 예술이 되는 겁니다. 나는 전에 읽은 레비나스E. Levinas의 철학에서 타인의 존재, 타자성의철학을 이런 식으로 발견하고 해결합니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멀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부르는 인기가요의 가사이면서 그 나라의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답니다.
‘우문투 응구문투 응가반투‘Umuntu ngumuntu ngubantu. 그 의미는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만 한 사람으로 존재한다‘ 입니다. 서구 전통론에서는 나라는 존재에 의해 타자가 정의되고타자를 나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자기중심적 이론이 오래된 대세인데 그 이론에 반기를 든 레비나스라는 철학자가 타자의 철학이라는 새롭고 아름다운 철학으로 20세기의 마지막을 빛나게 했습니다.
타자가 어떤 존재이든 그 생명을 존중하고 윤리적으로 대접해야 하며 타자와의 관계에서만 ‘나‘라는 존재의 유한성이 극복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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