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그러니?"
"어멍은 어떤 일이 닥쳐도 놀라지도 않고 근심하지도 않으니 신기해서 그러우다."
"네가 어멍을 놀리는구나?"
"놀리려는 게 아니라 신기해서 그래요. 아무래도 제 맘에는 천주가아니 계시고 어멍 맘에만 계신가 보오. 늘 이렇게 맘이 쫓기고 불안하니 말예요."

"아이 참, 할망 그만하세요. 이제 나가봐야겠어요."
"못 간다. 오늘은 날 좀 살려주고 갑서. 무슨 보물이라고 그리 비싸게굴엄시니. 나도 알려줍서. 천주가 누구고 야소가 누군지. 자네에게 천주를 배운 아이들이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새카만 얼굴에 때가 꾀죄죄해도노상 기쁘고 즐거웡햄신니, 내 그 이유를 알아야쿠다.

난주는 지네굴이란 데가 사람이 죽을 곳이라지만 하늘의 뜻에 따라죽으면 죽으리오 살면 살리라 생각하여, 두려움보다는 남은 식구들 걱정으로 마음이 더 산란하였다.
옥문을 지키는 옥졸들이 수군거리며, 삼천갑자 동방삭도 저 죽을 날은 몰랐다더니 저년이 저승 일을 아는 것처럼 떠들어도 제 죽을 날은몰랐구나 하고 웃는다.
그 소리를 듣고서 난주도 조용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끝이로구나 하시작이요 시작인가 하면 끝이니 인생이라는 것을 누가 예측하리오.
한번 맺은 악연이 세상 끝까지 쫓기도 하고, 우연한 인연 하나가 삶의모든 것이 되기도 한다. 난주는 제 주위에 왔다가 사라지거나 사라졌다가 다시 다가온 숱한 연들을 생각하고, 아침이 오는 것도 잊고 앉아 있었다.

그 밤들을 생각하니 난주는 저절로 소름이 끼치고 눈물이 흐른다.
예순여섯이 된 지금까지도 지네굴의 퀴퀴한 냄새와 용암이 흘러내린종유석의 징그럽도록 반들거리던 모습이 눈앞에 선연했다. 죽음을 목에 두었을 때, 사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외로워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뼈 마디마디 시려오는 한기와 하기로 쪼그라진 위장보다도 외로움이란 맹독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지금 난주는 설사 죽음을 눈앞에두었다 해도 의연할 수 있었다. 깊은 연을 맺어온 사람들과 자식들은물론, 올레길 한 곳 담장 한 쪽에도 숱한 시간과 기억이 난주의 곁에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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