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생태원장 최재천 교수는 2020년의 코로나 사태를 지구 온난화에 의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현상으로 설명한다. 동물은 각 종마다 다른 방식으로 바이러스에 대응한다고 한다. 사람의 경우에는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면역 체계에서 민감하게 반응해 바이러스를 죽이려는 전략을 취한다. 반대로 여러 동물과 접촉하고 수많은 개체 수가모여서 사는 박쥐의 경우에는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전략을 취한다고한다. 그러다 보니 박쥐는 몸 안에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를 품고 살아가게 된다. 이런 박쥐와 인간이 접촉하게 되면 인간은 바이러스 감염에 노출된다.

다행히 인간은 주로 사계절이 명확한 온대 지방에 도시를 만들어 살고 있고, 박쥐는 주로 기온이 높은 더운 지방에서서식하고 있어서 둘의 서식지가 겹치는 부분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열대 기후 지역에 살던 박쥐들이 기온이 오른 온대 지역(인간의 생활 공간)으로 점점 이동해 오게 되면서 인간과 박쥐가 만날 가능성이 늘어났고, 그런 가운데 박쥐에 의해서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 세계로 전파되었다는 것이 최재천 교수의설명이다. 따라서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는 한 또 다른 전염병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 지구 온난화는 시베리아 동토를 녹이고 과거에 활동했던 바이러스나 박테리아가 세상에 나올 가능성도 높인다. 시베리아 동토에 얼어서 갇혀 있던 메탄가스도 대량으로 공기 중에 분출되어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킬 거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기후 변화와 전염병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무는 기본적으로 이산화탄소를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광합성을 하면서 자란다. 이 과정에서 나무는 탄소를 자신의 몸 안에 흡수해서 저장한다. 나무는 몸 안에 탄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태워서 불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무가 불에 타거나 썩으면 다시 공기 중으로 탄소를 배출한다.
이를 방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무를 건축 재료로 사용해서 썩지않게 만드는 것이다. 나무를 키워서 건축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탄소배출을 줄이는 소극적 자세가 아닌, 문제의 원인이 되는 대기 중의 탄소를 없애는 일이다. 이만큼 적극적인 친환경 건축은 없다. 따라서 우리 도시의 고층 건물을 목구조로 만들 수 있다면 지구 온난화를 막을수 있는 혁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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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까까머리 학창 시절, 영민했던 한 친구가 이런 우스갯말로 익살부리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생각하면 생각나는생각이므로 부러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은 생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와 돌이켜 보면 생각에 대한 재치 있는 풍자다. 이처럼생각은 뱅뱅 맴돌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생각이라는 것을 할 때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한없이 제자리를 맴돈다. 하루 한때, 한 시절, 심지어 한 인생마저 송두리째 맴도는 생각에 갖다 바치기도한다.

사유의 부재가 우매를 의미하진않는다. 대단히 지성적인사람들도 사유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악한 마음이 우매에서비롯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사유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한나 아렌트

그런데 리프먼은 다름이라는 사실 자체보다 다름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다름을 적대의 눈이 아닌관용의 눈으로 볼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다름에 대한 피상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 근거로 그는 일찍이 여행과 교역을 통해 이방인이 빈번히 드나드는 가운데 문명이 발달했던 역사를 예로 들었다. 차이와 다름을 거부하고 고만고만한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만 모여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문명은 자신이 가진생각의 폭과 깊이를 재고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발전은커녕 쇠퇴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진공 상태에서는 생각을 할 수 없으며, 비슷비슷한 것으로부터는 새로운 생각을 낼 수 없다."

자신의 마음이 가는 것에 대해생각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말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대에얼마나 드문 행운인가.
타키투스

실로 얼마나 왜소한 생각이한 사람의 온 삶을 채우는지!
비트겐슈타인

김수영의 시 가운데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로 시작하는 시가 있다. 밥값을 비싸게 받으면서 형편없는 밥상을 올리는 식당 여주인과 푼돈을 걷으러 귀찮게 자꾸 찾아오는 야경꾼은 사정없이 욕하고 증오하면서 언론 자유를 탄압하고 잘못된 정책을 펴는 것에는 아무 소리도 못 하는 자신을 힐책하는 내용의시다. 그 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 정말 얼마큼 적으냐.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감옥에 갇힌 죄수 신세인데, 그 감옥이란 자신만의 감각과 사고방식이라는 울타리가둘러쳐진 감옥이다. 그 감옥 안에서 자신만의 감각과 사고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누가 바꿔 줄 수도 없다. 갇힌 울타리 안의사고방식이란 더 넓어지거나 더 깊어지거나 혹은 더 새로워질 여지가 거의 없는 것이다. 기존의 것을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다 끝내 시들어 말라비틀어진 찌꺼기만 남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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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철학의 목적이 혼을 돌봄(그리스어로 에피멜레이아)에 있다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자기 배려 내지 자기 돌봄‘이 지닌 본래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진정한 돌봄과 배려는 혼을 돌보는 데서 드러나고 완성됩니다. 이제 중요한 일은 혼을 돌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에게 혼을 돌보는 것이 뜻하는 내용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에 대한 윤리·철학적 해석을 통해 드러납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자기 인식을 향한 권고입니다. 여기서 자기 인식은 오늘날 학문의 세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론적인 자아의 탐구나 심리적인 의식 현상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과 가치에 대한 실천적 성찰입니다. 소크라테스 철학에서는 인간의 사람됨과 행위 등과 구분되는 ‘순수 자아에 대한 관심사는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아와 의식에 대한 날카로운 철학적 반성이나 인지과학적인 연구는 근대 이후의 심리철학과 인지심리학의 주제입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자기인식은 공동체 안에서 전인적 인간으로서 욕망과 감정과 도덕심을가지고 때로는 갈등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 인간의인생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죽음의 연습‘이라고 즐겨 말했습니다. 이는 생의 소중함을 부정하는 염세적인 태도가 아니라, 죽음마저도자기 삶의 한 부분으로 통합하며 좋은 삶, 훌륭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애쓴 것은 죽은 후에도 가치를 잃지 않는다는 희망을 간직한사람의 모습입니다. 자기 배려의 삶을 잘 영위했는지는 죽음을 대하는 관점과 실제로 죽음을 대면했을 때의 태도에서 가장 선명하게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보게 됩니다.

인생을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보는 것은 어쩌면 자신에게만 향하는 폐쇄적이고 주관적인 일인칭의 관점 .
에 갇히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에서 쓴 수기》나사르트르의 《구토》의 주인공들은 자기 안에 갇힌 이야기로 인생을 바라보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극단적 예이기도 합니다.

사실 내 인생은 나의 이야기이기만 한것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에서타인의 인생 이야기에 속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다른 이들의 인생 이야기에 내가 영항을 받기에 그들의 인생 이야기는 나의이야기 안에 자리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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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결국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비로소 자신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변화를겪는 성장 과정에서는 정체성 확립보다 타인과 협력하고, 타인 또는 자연과의 일체감을 몸으로 배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
고 생각해요. 머리로 생각만 해서는 절대 타인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요.

자본주의 사회는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이익을 얻을지를 생각하는 데 머리를 쓰라고 강요하지요. 먹거리를 다루는업계를 예로 들면, 항상 같은 맛을 내기 위해 화학조미료를 사용하거나 이스트처럼 대량 생산이 가능한 균을 순수 배양하기도 합니다. 그런 방식은 사람들의 물질적 욕망을 채울 수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마음을 채우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다음 욕망으로 이어지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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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must people kneel down to pray? If I really wantedtoprayI‘ll tellyouwhat I‘d do. I‘dgoout into a great big fieldall alone or into the deep, deep, woods, and I‘d lookupintothe sky - up-up-up-into that lovely blue sky that looks asif there was no end to its blueness. And then I‘d just FEEL aprayer."
"왜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해요? 저라면 정말로 기도하고 싶을 때이렇게 하겠어요. 혼자서 드넓은 들판 아니면 깊고 깊은 숲속으로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높이 아주 높이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보죠. 끝도 없이 펼쳐진 그 아름다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거예요.그러고 나서 그냥 기도를 느낄래요."

"When the Lord puts us in certain circumstances He doesn‘tmean for us to imagine them away."
"하느님이 우리를 어떤 상황에 처하게 했다면 그 상황을 상상으로 망각하라는 뜻이 아니실 거야."

Marilla was every day of fifty before the sting had gone outof that memory.
마릴라는 기억에서 그 가시가 빠지는 데에 꼬박 50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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