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철학의 목적이 혼을 돌봄(그리스어로 에피멜레이아)에 있다고 말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자기 배려 내지 자기 돌봄‘이 지닌 본래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진정한 돌봄과 배려는 혼을 돌보는 데서 드러나고 완성됩니다. 이제 중요한 일은 혼을 돌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에게 혼을 돌보는 것이 뜻하는 내용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에 대한 윤리·철학적 해석을 통해 드러납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자기 인식을 향한 권고입니다. 여기서 자기 인식은 오늘날 학문의 세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론적인 자아의 탐구나 심리적인 의식 현상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과 가치에 대한 실천적 성찰입니다. 소크라테스 철학에서는 인간의 사람됨과 행위 등과 구분되는 ‘순수 자아에 대한 관심사는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아와 의식에 대한 날카로운 철학적 반성이나 인지과학적인 연구는 근대 이후의 심리철학과 인지심리학의 주제입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자기인식은 공동체 안에서 전인적 인간으로서 욕망과 감정과 도덕심을가지고 때로는 갈등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 인간의인생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죽음의 연습‘이라고 즐겨 말했습니다. 이는 생의 소중함을 부정하는 염세적인 태도가 아니라, 죽음마저도자기 삶의 한 부분으로 통합하며 좋은 삶, 훌륭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애쓴 것은 죽은 후에도 가치를 잃지 않는다는 희망을 간직한사람의 모습입니다. 자기 배려의 삶을 잘 영위했는지는 죽음을 대하는 관점과 실제로 죽음을 대면했을 때의 태도에서 가장 선명하게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소크라테스의 죽음‘에서 보게 됩니다.

인생을 자기 자신의 이야기로 보는 것은 어쩌면 자신에게만 향하는 폐쇄적이고 주관적인 일인칭의 관점 .
에 갇히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도스토옙스키의 《지하에서 쓴 수기》나사르트르의 《구토》의 주인공들은 자기 안에 갇힌 이야기로 인생을 바라보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극단적 예이기도 합니다.

사실 내 인생은 나의 이야기이기만 한것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에서타인의 인생 이야기에 속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대로 다른 이들의 인생 이야기에 내가 영항을 받기에 그들의 인생 이야기는 나의이야기 안에 자리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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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결국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비로소 자신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변화를겪는 성장 과정에서는 정체성 확립보다 타인과 협력하고, 타인 또는 자연과의 일체감을 몸으로 배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
고 생각해요. 머리로 생각만 해서는 절대 타인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으니까요.

자본주의 사회는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이익을 얻을지를 생각하는 데 머리를 쓰라고 강요하지요. 먹거리를 다루는업계를 예로 들면, 항상 같은 맛을 내기 위해 화학조미료를 사용하거나 이스트처럼 대량 생산이 가능한 균을 순수 배양하기도 합니다. 그런 방식은 사람들의 물질적 욕망을 채울 수는 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마음을 채우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또다시 다음 욕망으로 이어지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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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must people kneel down to pray? If I really wantedtoprayI‘ll tellyouwhat I‘d do. I‘dgoout into a great big fieldall alone or into the deep, deep, woods, and I‘d lookupintothe sky - up-up-up-into that lovely blue sky that looks asif there was no end to its blueness. And then I‘d just FEEL aprayer."
"왜 무릎 꿇고 기도해야 해요? 저라면 정말로 기도하고 싶을 때이렇게 하겠어요. 혼자서 드넓은 들판 아니면 깊고 깊은 숲속으로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높이 아주 높이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보죠. 끝도 없이 펼쳐진 그 아름다운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거예요.그러고 나서 그냥 기도를 느낄래요."

"When the Lord puts us in certain circumstances He doesn‘tmean for us to imagine them away."
"하느님이 우리를 어떤 상황에 처하게 했다면 그 상황을 상상으로 망각하라는 뜻이 아니실 거야."

Marilla was every day of fifty before the sting had gone outof that memory.
마릴라는 기억에서 그 가시가 빠지는 데에 꼬박 50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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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너무도 단순하고 친숙해서 우리의눈길을 끌지 못한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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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아온 방식에 따라 자기 자신이 지옥을만들거나 천국을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조선조를 지배하던 사회 문화는 완전히 유교식으로 형성되어 불교적인 영향이나 색채를발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설명해줄 수있는 사회적인 현상은 대단히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만일 고려에 이어 조선의 국교가 불교였다면지금과 같은 제사 문화는 결코 있을 수 없다. 불교 국가였던고려에서는 제사가 집이 아니라 절이나 무당집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고려인들은 승려나 무당과 같은 종교적인 중재자를 통해 조상 제사를 봉행했기 때문에 조선조처럼 집에

... 가장이 연성(軟性) 수준의 사제가 되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조선조에서처럼 제사가 집에서 종손 혹은 장남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것은 전형적으로 유교적인 가부장제에따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장묘 문화도 조선조 때에는 매장만을 선호했지만 만일 조선의 국교가 불교였다면당연히 화장 위주의 장묘 문화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을 것이다.

다만 유교의 가장 특징적인 교리라 할 수 있는 효와 효의 하위 개념인 제(悌)가 각각 가부장적인 집단주의 문화‘와 서열을 중시하는 권위주의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설명으로 충분할 것 같다. 이 두 문화적 요소는 조선조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의 사회 문화를 형성하는데에 두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인들의가치관과 사회 문화가 유교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한국인들이 견지하는 죽음관 역시 유교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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