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아온 방식에 따라 자기 자신이 지옥을만들거나 천국을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조선조를 지배하던 사회 문화는 완전히 유교식으로 형성되어 불교적인 영향이나 색채를발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설명해줄 수있는 사회적인 현상은 대단히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만일 고려에 이어 조선의 국교가 불교였다면지금과 같은 제사 문화는 결코 있을 수 없다. 불교 국가였던고려에서는 제사가 집이 아니라 절이나 무당집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고려인들은 승려나 무당과 같은 종교적인 중재자를 통해 조상 제사를 봉행했기 때문에 조선조처럼 집에
... 가장이 연성(軟性) 수준의 사제가 되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조선조에서처럼 제사가 집에서 종손 혹은 장남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것은 전형적으로 유교적인 가부장제에따른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장묘 문화도 조선조 때에는 매장만을 선호했지만 만일 조선의 국교가 불교였다면당연히 화장 위주의 장묘 문화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을 것이다.
다만 유교의 가장 특징적인 교리라 할 수 있는 효와 효의 하위 개념인 제(悌)가 각각 가부장적인 집단주의 문화‘와 서열을 중시하는 권위주의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설명으로 충분할 것 같다. 이 두 문화적 요소는 조선조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의 사회 문화를 형성하는데에 두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인들의가치관과 사회 문화가 유교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한국인들이 견지하는 죽음관 역시 유교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판단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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