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일을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좋은 일이든 힘든일이든 모두 남김없이 즐기고, 외적인 운명은 물론 내적인운명과 우연이지 않은 운명을 모두 수용하는 것이 인생에서 중요하다면, 내 인생은 그리 초라하지도 형편없지도 않았다.

외적인 운명은 누구에게 그렇듯이 나에게도 찾아온다. 이것은 피할 수 없으며 신이 내린 것이다. 하지만 내적인 운명은 온전히 나 자신의 작품이다. 그 인생의 단맛과 쓴맛은 모두나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그 인생의 책임을 오로지 나 혼자 짊어지고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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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을 미워하기 싫어 시작한 야생 채집은 내 삶을 의외의 방향으로 바꿔놓았다. 먼저 돈을 주고 음식을 사 먹을 때 비싸다는생각이 안 든다. 뭐든 먹으면 내가 살겠다는 생각에 누구에게랄것도 없이 고마운 마음만 든다. 유기농이나 고급 식재료만 숭배하고 불량식품, 가공식품, 패스트푸드, 공장제 식재료를 기피하던 마음도 없어졌다. 그런데도 나쁜 건 절대 안 먹겠다고 다짐하예전보다 이런 식품들을 먹는 일 자체가 크게 줄었다. 무언가를 미워하는 마음은 내가 그것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말해준다는것도 그렇게 알게 됐다. .

먹는 데만 돈을 덜 쓰게 되는 게 아니다. 크고 작은 물건을 사들이거나 여행비나 오락비를 쓰는 등 무엇이든 돈을 쓰는 데 게을러진다. 무언가를 사려는 마음이 대부분 나중의 필요에 대비하려는 심리였음을 알게 됐다. 그런 심리는 인류의 90퍼센트 이상이 농사를 짓고 식량을 저장해야 생존할 수 있었던 시대로부터 내려온 마음의 습관이다.

나는 오늘도 내 생존에 필요한 최적의 쾌적함과 행복의 균형점을 찾으면서 산다. 따라서 전기도 쓰고, 비닐 봉투도 쓰지만 죄책감을 느끼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는 그나마 남들보다 훨씬 조금 쓰는 거야"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환경을 지키는 사람과 파괴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공장에서 열심히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도 나의 행동의 일부일 것이다. 우리는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 우리 모두의 행동이 합쳐져서 인간의멸종을 부른다면 그것도 지구 전체에게는 더 좋은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은 원치 않으니 최선을 다해서 나의 전략대로열심히 살아남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어쩌다 보니 이런 모습이 됐다. 오늘 음식을 먹고, 그것이 내가 아닌 무언가와 연결되는일임을 가장 열심히 인식할 때, 나는 비로소 살아 있다.

….비슷한 소비를 반복한다면 나는 그 대가로몸은 덜 고생스러울지언정 옛날의 농사꾼보다도 극심한 마음의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노동해야 하고, 더 긴 시간을 저당 잡혀야한다. 직접 빵을 굽고 싶은 마음도 몸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저렴한 원자재인 유기농 밀과 값비싼 완성품인 크루아상 사이를 느긋한 빵 굽기라는 즐거움으로 채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나의 엄마는 생활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갖은 노력을 해서 저축했다. 똑같이 돈을 적게 쓰더라도 나는 저축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돈이 미래의 가치로 전환될 거라고 믿지 않으니까. 내돈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 늘어난 돈을 나의 만족을 위해 소비한다. 이 세상에 축적된 농업 기술력, 전 세계가 연결되면서 늘어난 다양성(빵이나 치즈의 맛, 멕시코 향신료 등)을 즐긴다.

옛날과 지금 중에 언제가 더 행복에 가까운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 오늘의 이 시간에는 부정할 수없는 나쁜 점과 함께 좋은 점도 따라온다. 나쁜 점은 담담하게받아들이고 좋은 점은 놓치지 않고 즐기려고 애쓴다. 그래서 돈을 벌지도 쓰지도 않지만 현재의 만족감과 즐거움을 누린다.
내 소유의 돈이 작아서 오는 공포심을 조금만 누르면 보인다.
이 풍요로운 세상이 베풀어준 교육, 넓고 다양한 세상, 넘치는 지식, 공공의 소비 시설이. 그것들은 오로지 나의 돈으로만 즐길 수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냈다고 그 가치를 내가 온전히 지불한것도 아니다. 이 세상을 좀 더 인간적이고 살기 좋게 만드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세대가 만들어 현재에 도착한 풍요를누리는 새로운 방법도 연구해야 한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격이 바뀌지 않아도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안다. 일상이 바뀌어도 나는 그대로인데, 많은 것들이 변화라는 이름 아래나를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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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바람, 돌, 여자가 많아 삼다도(三多島)라 하고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고 해서 삼무(三無)를 말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제주에는 삼보(三寶)가 따로 있다. 그것은 자연, 민속, 언어이다. 이 세 가지를 모르면제주도를 안다고 할 수 없고, 이 세 가지를 쓰지 않으면 그것은 제주도답사기일 수 없다.

"본향당이란 제주사람들, 특히 제주 여인네들 영혼의 동사무소, 요즘말로 하면 주민센터예요. 제주 여인네들은 자기 삶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본향당에 와서 신고한답니다. 아기를 낳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사고가 났다, 돈을 벌었다, 농사를 망쳤다, 육지에 갔다 왔다, 자동차를 샀다, 우리 애 이번에 수능시험 본다, 우리 남편 바람난 것 같다, 이런모든 것을 신고하고 고해바칩니다.

할망(할머니)이라고 해요. 할머니에게는 모든 것을 다 들어주는 자애로움이 있잖아요. 어머니만 해도 다소 엄격한 데가 있죠. 여성은 소문 내지 않고 자기 얘기와 고민을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심리가 있거든요. 답을 몰라서가 아니죠. 그런 하소연을 함으로써 마음의 응어리를 푸는 겁니다.

"이 흰 백지를 여기서는 소지라고 해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하얀한지죠. 본향당에서 소원을 빌 때 이 소지를 가슴에 대고 한 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빌고서 저 나뭇가지에 걸어두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그 모든사연이 소지에 찍혀 할망이 다 읽어본다고 해요."

사연이 많은 사람은 소지를 몇십 장 겹쳐서 가슴에 대고 빈다고 한다. 이런 높은 차원의 발원 형식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을까 보냐. 본래는 글모르는 할머니들을 위해 생겨난 의식이었다고 하는데 어떤 글을 써넣은것보다 진한 감동을 주지 않는가!
일본의 사찰에 가면 소원을 써서 절 마당에 걸어놓는 강까께(願)가 있고, 이스라엘 ‘통곡의 벽‘에선 소원을 적어 돌 틈에 끼워넣는다고하는데 우리 제주도에선 백지에 소원을 전사(轉寫)해서 걸어놓는 것이다. 팽나무 신목에 흰 소지가 나부끼는 와흘 본향당은 제주인의 전통과정체성을 웅변해주는 살아 있는 민속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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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수업을 하는 참목표는학생에게 모든 시대와 실존"까지는 몰라도 그중 태반을 유람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편협한 관점을벗어 버리게 하는 것이다.

동화 나라는 손닿지 않을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아련한의식을 자극하면서 아이를 동요시키며(평생 풍요롭게 해 준다),
현실 세계에 무디어지거나 눈감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현실세계에 새로운 차원의 깊이를 더해 준다. 아이가 마법의 숲이야기를 읽었다 해서 진짜 숲을 멸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서 덕분에 모든 진짜 숲에 약간의 마법이 걸린다. 이것은 특별한 동경이다.

앞서 말한 부류의 학교 소설을 읽는 아이는 성공을 갈망하지만 (책이 끝나면) 불행하다. 자기는 그 성공을 얻을 수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화를 읽는 아이는 갈망한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하다. 대개 사실주의 소설에서와는 달리, 생각이 자신에게 집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은 위대한 철학자를 직접 대면하기가 내심 두렵다.
자신이 부족해서 플라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현대 해설자보다 이 위인을 이해하기 훨씬 더 쉽다. 괜히 위대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무지한 학생도 플라톤의 말을 다는 몰라도 거의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지만, 플라톤 철학을 다룬 일부 현대 서적은 누구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내가 늘 교수로서 각별히 후학에게 신신당부하는 말이 있다. 직접 지식이 간접 지식보다. 습득 가치가 높을뿐더러 대개 습득하기도 훨씬 쉽고 즐겁다는 것이다.

시대마다 특유의 관점이 있다. 특히 잘 포착하는 진리가 있고 특히 범하기 쉬운 과오가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이 시대 특유의 과오를 바로잡아 줄 책들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고서다.

요즘 시대 책들은 그 내용이 옳은 경우에는 우리에게이미 어설프게 알던 진리를 줄 뿐이고, 틀린 경우에는 이미중병 수준인 우리의 과오를 가중시킬 뿐이다. 유일한 완화제는 우리 머릿속에 ‘역사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계속 쓰는것인데, 그러려면 고서를 읽어야만 한다.

물론 과거라고 무슨 마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도 인간은 지금만큼밖에 똑똑하지 못했고, 우리처럼 많은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지금과 똑같은 실수는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가 이미 범한 과오와 관련해 아첨하지 않으며, 그들의 과오는 이제 백일하에 드러났기에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지 못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어느 한쪽이 완전무결해서가 아니라 둘이 똑같은 길로 잘못 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쉰 살 때도 똑같이 (종종 훨씬 더)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니라면열 살 때도 아예 읽을 가치가 없다.
허구의 작품 가운데나이가 들었다고 그만 읽어야 할 책이라면애초에 읽지 않는 편이 낫다.

"정상적인 하루란 곧 부컴의 원형대로 사는 날을 뜻한다.
(애석하게도 그런 날은 아주 드물다).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늘나는 거기서 살던 대로 살 것이다. 늘 정각 8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9시에 책상에 앉아 오후 1시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겠다. 11시쯤 좋은 차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정각 1시에는 점심이 차려져 있어야 한다. 늦어도 2시에는 산책을 나가는데, 가끔 친구와 동행할 때를 빼고는 혼자 가겠다. 산책과 대화는 각기 아주 즐거운 일이지만 둘을섞는 것은 잘못이다. 야외 세계의 소리와 정적을 말소리가.....
삼켜 버리기 때문이다. 함께 산책해도 되는 친구는 전원의 수많은 풍경을 느끼는 취향이 나와 똑같아서 눈빛을교환하거나 걸음을 멈추거나 끽해야 팔꿈치로 살짝 치는정도만으로도 서로 기쁨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실히 알 만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단어를 죽이는 가장 큰 원인은 대다수 사람이그 단어로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기보다 찬반을 표현하려는욕심이 단연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어는 점점 묘사에서 멀어져 평가에 가까워진다. 한동안은 그 평가에 왜 좋거나 나쁜지가 아직 살짝 암시되어 있지만, 결국은 순전히 평가만 남는다. "좋다"나 "나쁘다" 의 무익한 동의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여행법과 다른 독서법도 있다. 현지 음식을 먹고 그 지방에서 생산한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 외국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그곳을 관광객 눈에 비치는 타국이아니라 현지 주민의 나라로 볼 수 있다. 돌아올 때는 생각과 느낌이 이전과 달라져 있을 수 있다.

해외로 떠나는 휴가를 관광객으로서만 보내는 일은 내게는 유럽을 낭비하는것으로 보인다. 얻을 것이 그보다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지난 시대의 문학에 우리 자신의 얼굴만 비추어보고 만다면 그것은 과거를 낭비하는 것 아닐까?

아름다움이 책이나 음악 속에 있는 줄 알고 거기에 의지하면 돌아오는 것은 배반이다. 아름다움은 그 속에 있지않고 이를 통해 올 뿐이다. 결국 책이나 음악을 통해 오는것은 그리움이다.

친구가 아주 많다 해서 내가 인간의 탁월한 진가를 폭넓게 인정한다는 증거는 아니다. 내 서재에 있는 책을 다즐길 수 있다 해서 내 문학적 취향이 폭넓다는 증거가 아닌것과 같다. 두 경우 모두 답은 똑같다. "그 책들은 당신이선택했고 친구들도 당신이 선택했다. 그러니 당신에게 맞을 수밖에 없다."

폭넓은 취향의 독서란 헌책방 바깥에 내놓은 책에서도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낼 줄 아는 것이다. 마찬가지로인간에 대한 취향도 참으로 폭이 넓다면, 날마다 마주치는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낸다.

단언하는데, 모든 좋은 책은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 다시 읽어야 하네.

좋은 신발은 신고 있어도 느껴지지 않는 신발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독서는 시력이나 조명이나 인쇄 상태나 맞춤법따위를 의식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 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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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사샤 세이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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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고 나서 몇 주, 어쩌면 몇 달이 지나자 무기력감이 조금씩 사라지고 다른 생각이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은 아니고 아주 오래전에 부모님이 나에게 주입한 생각이었다.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경이롭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나는 알았지만, 그전에는 정말 절실히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나는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나 간에지구상에서의 작은 순간 하나하나가 의미 있다는 생각을나 자신에게 계속 각인했다. 그리고 만약 삶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삶이 더는 소중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가 언젠가는틀림없이 죽을 테지만 지금은 살아 있고 그게 매우 운좋은일임을 되새겼다. 서서히 이런 생각들이 가슴 떨리는 기쁨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은 걸렸지만 결국은 여행을 떠나기 전보다 더 행복한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삶이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게 아니라, 삶이유한하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낄 수가 있었다. 이게 나에게는 어른이 되었다는 징표 같았다.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아는 것과 내가 느끼는것 사이의 인지부조화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어떤 정보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고 해서 그 정보를 계속 머리에서 밀어내지 않게 되었다. 아니 적어도 덜 밀어내게 되었다. 그게나에게는 성장을 향한 큰 걸음이었다. 그러려면 환상을 버려야 했고 그래서 고통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그 덕에 더 깊은 현실감을 얻었으니 잘된 일이다. 사람은 살아남으려면반드시 나름의 방법으로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애착담요를 버리고, 세상의 무시무시한 경이를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책이란 얼마나 놀라운 물건인가. 나무로 만든 납작하고잘 휘어지는 물건인데 그 안에 검은색 선이 꼬물꼬물우스운 모양으로 찍혀 있다. 그런데 그 물건을 한번 들여다보면 어느새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 사람은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일 수도 있다. 저자가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조용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당신의 머릿속에서 말을 건다. 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일 것이다. 서로를 모르는 사람들, 멀리 떨어진시대에 사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준다. 책은 시간의굴레를 벗어난다. 책은 인간이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증거다.

내가 아버지한테로 시간여행을 하는 방법이 한 가지 더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대기 중의 공기 입자는 아주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같은 공기로 호흡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새도 가끔 그 생각을 한다. 깊은숨을 들이마시고 이 공기 입자 중 일부가 아버지가 들이마시고 내쉬었던 공기일 수도있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공기를 들이마신다니얼마나 친밀한 행위인가.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자동으로, 불수의운동으로 숨쉬는 공기가 예수나 무함마드나 클레오파트라가 숨쉬었던 옛 공기일 뿐 아니라, 새로운 미래세대가 마실 공기인 것이다. 비단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이 지구를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는다면 지금 우리가 마시는 공기가 아직 진화하지 않아 생기지 않은생명체의 숨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존재의 숨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먼 미래이자 누군가의 오래된 과거이니까.

영어에서는 누군가 죽은 날이 해마다 돌아오는 기일‘을 뜻하는 간단한 단어가 없다. 이디시어로는 있다. 야르제이트ahrea라고 한다. 유대교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의 야르제이트가 되면 24시간 동안 타고 꺼지는 특별한 초에 불을 밝히는 의식을 한다. 바로 불어서 끄는 생일 초와 역설적인 대비를 이루는 셈이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야르제이트 초에 불을 붙여서 레이철 할머니, 틸리 할머니, 벤저민 할아버지와또 내가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서만 아는 다른 조상들을 기리는 전통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자라면서 사랑했던 사람들을 잃게 되자 나는 스스로 야르제이트 초를 밝히게 되었다. 이 전통이 특히 내 마음에 와닿는 까닭은 촛불이 오래전에 소멸한 뒤에도 빛이 남아서 반짝이는 죽은 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가 죽었을 때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그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작은 불빛을 밝히면 마치 그들이 아직 영원히 사라진 게 아닌 듯한 느낌이 든다.

별자리 때문에 피부색, 젠더, 인종, 성정체성, 종교 등에따라 차별받듯 차별을 받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유사한 면이 있다. "나는 당신에 대해 한 가지를 알므로 당신이 어떤사람인지 안다"고 말하는 것에서 여러 차별주의에 내재한게으르고 섣부른 가정을 볼 수 있다.

마지막 방에는 여러 언어로 이런 문구가 적힌 액자가 있었다. 지금 당신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이고, 지금 우리의 모습은 당신의 미래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말을 길들인 것이 아니다.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길들이다.
domesticate‘라는 단어는 집‘을 뜻하는 라틴어 도무스dom 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집에 사는 것이 누구인가? 밀은 아니다." 하라리는 ‘농업‘이라고 하는 식물과 인간의 관계가 인간에게 불리한 일이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제비뽑기에서짧은 쪽 막대를 뽑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식물에게 속아 쉴새없이 농사를 지어 식물이 온 지구에 널리 퍼지고 번성하게 돕고 있는 것이다. 그냥 수렵 채집을 하며 살았으면더 낫지 않았을까?

캐런 암스트롱은 『신화의 짧은 역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화는 과거에일어났던 일이지만 또 항상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역사를 엄밀히 시간 순서로 보기 때문에 이런 일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 신화는 역사를 넘어서는, 인간 존재에서영구한 것을 가리키며 우리가 무작위적 사건의 혼란스러운흐름 너머를 이해하고 현실의 핵심을 언뜻 볼 수 있게 하는예술의 형태다."

또한 『피의 장: 종교와 폭력의 역사』라는책에서는 "신화는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사건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사람의 일상적 실존에 내포된 영구한 진실을 표현한다. 신화는 언제나 현재에 대한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축하하는 모든 명절, 생일, 독립기념일 등은 과거에대한 것인 만큼 현재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또 동시에 가장 오래된 패턴을 지속해서 반복한다.

대니얼 데닛이 『주문을 깨다』에서 "그리움에 이끌리고혐오감에 되밀리고,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 앞에서갈등에 휩싸인다. 이 갈등이 도처에서 종교가 생겨나는 데핵심적 역할을 했음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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