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수업을 하는 참목표는학생에게 모든 시대와 실존"까지는 몰라도 그중 태반을 유람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편협한 관점을벗어 버리게 하는 것이다.
동화 나라는 손닿지 않을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아련한의식을 자극하면서 아이를 동요시키며(평생 풍요롭게 해 준다), 현실 세계에 무디어지거나 눈감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현실세계에 새로운 차원의 깊이를 더해 준다. 아이가 마법의 숲이야기를 읽었다 해서 진짜 숲을 멸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서 덕분에 모든 진짜 숲에 약간의 마법이 걸린다. 이것은 특별한 동경이다.
앞서 말한 부류의 학교 소설을 읽는 아이는 성공을 갈망하지만 (책이 끝나면) 불행하다. 자기는 그 성공을 얻을 수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화를 읽는 아이는 갈망한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하다. 대개 사실주의 소설에서와는 달리, 생각이 자신에게 집중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은 위대한 철학자를 직접 대면하기가 내심 두렵다. 자신이 부족해서 플라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현대 해설자보다 이 위인을 이해하기 훨씬 더 쉽다. 괜히 위대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무지한 학생도 플라톤의 말을 다는 몰라도 거의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지만, 플라톤 철학을 다룬 일부 현대 서적은 누구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내가 늘 교수로서 각별히 후학에게 신신당부하는 말이 있다. 직접 지식이 간접 지식보다. 습득 가치가 높을뿐더러 대개 습득하기도 훨씬 쉽고 즐겁다는 것이다.
시대마다 특유의 관점이 있다. 특히 잘 포착하는 진리가 있고 특히 범하기 쉬운 과오가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이 시대 특유의 과오를 바로잡아 줄 책들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고서다.
요즘 시대 책들은 그 내용이 옳은 경우에는 우리에게이미 어설프게 알던 진리를 줄 뿐이고, 틀린 경우에는 이미중병 수준인 우리의 과오를 가중시킬 뿐이다. 유일한 완화제는 우리 머릿속에 ‘역사의 시원한 바닷바람‘을 계속 쓰는것인데, 그러려면 고서를 읽어야만 한다.
물론 과거라고 무슨 마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도 인간은 지금만큼밖에 똑똑하지 못했고, 우리처럼 많은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지금과 똑같은 실수는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가 이미 범한 과오와 관련해 아첨하지 않으며, 그들의 과오는 이제 백일하에 드러났기에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지 못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어느 한쪽이 완전무결해서가 아니라 둘이 똑같은 길로 잘못 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쉰 살 때도 똑같이 (종종 훨씬 더)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 아니라면열 살 때도 아예 읽을 가치가 없다. 허구의 작품 가운데나이가 들었다고 그만 읽어야 할 책이라면애초에 읽지 않는 편이 낫다.
"정상적인 하루란 곧 부컴의 원형대로 사는 날을 뜻한다. (애석하게도 그런 날은 아주 드물다).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늘나는 거기서 살던 대로 살 것이다. 늘 정각 8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9시에 책상에 앉아 오후 1시까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겠다. 11시쯤 좋은 차나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정각 1시에는 점심이 차려져 있어야 한다. 늦어도 2시에는 산책을 나가는데, 가끔 친구와 동행할 때를 빼고는 혼자 가겠다. 산책과 대화는 각기 아주 즐거운 일이지만 둘을섞는 것은 잘못이다. 야외 세계의 소리와 정적을 말소리가..... 삼켜 버리기 때문이다. 함께 산책해도 되는 친구는 전원의 수많은 풍경을 느끼는 취향이 나와 똑같아서 눈빛을교환하거나 걸음을 멈추거나 끽해야 팔꿈치로 살짝 치는정도만으로도 서로 기쁨을 공유하고 있음을 확실히 알 만한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단어를 죽이는 가장 큰 원인은 대다수 사람이그 단어로 단순히 대상을 묘사하기보다 찬반을 표현하려는욕심이 단연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어는 점점 묘사에서 멀어져 평가에 가까워진다. 한동안은 그 평가에 왜 좋거나 나쁜지가 아직 살짝 암시되어 있지만, 결국은 순전히 평가만 남는다. "좋다"나 "나쁘다" 의 무익한 동의어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여행법과 다른 독서법도 있다. 현지 음식을 먹고 그 지방에서 생산한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 외국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그곳을 관광객 눈에 비치는 타국이아니라 현지 주민의 나라로 볼 수 있다. 돌아올 때는 생각과 느낌이 이전과 달라져 있을 수 있다.
해외로 떠나는 휴가를 관광객으로서만 보내는 일은 내게는 유럽을 낭비하는것으로 보인다. 얻을 것이 그보다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지난 시대의 문학에 우리 자신의 얼굴만 비추어보고 만다면 그것은 과거를 낭비하는 것 아닐까?
아름다움이 책이나 음악 속에 있는 줄 알고 거기에 의지하면 돌아오는 것은 배반이다. 아름다움은 그 속에 있지않고 이를 통해 올 뿐이다. 결국 책이나 음악을 통해 오는것은 그리움이다.
친구가 아주 많다 해서 내가 인간의 탁월한 진가를 폭넓게 인정한다는 증거는 아니다. 내 서재에 있는 책을 다즐길 수 있다 해서 내 문학적 취향이 폭넓다는 증거가 아닌것과 같다. 두 경우 모두 답은 똑같다. "그 책들은 당신이선택했고 친구들도 당신이 선택했다. 그러니 당신에게 맞을 수밖에 없다."
폭넓은 취향의 독서란 헌책방 바깥에 내놓은 책에서도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낼 줄 아는 것이다. 마찬가지로인간에 대한 취향도 참으로 폭이 넓다면, 날마다 마주치는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낸다.
단언하는데, 모든 좋은 책은 적어도 10년에 한 번씩 다시 읽어야 하네.
좋은 신발은 신고 있어도 느껴지지 않는 신발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독서는 시력이나 조명이나 인쇄 상태나 맞춤법따위를 의식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없을 때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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