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집단과 무리에 기대려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회 전체의갈등과 분열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개인주의자가 된다면, 불안과 결핍을 잊고자 무언가에 의탁하려는 충동에서 벗어나 한 명의 개인으로서 우뚝 선다면, 사회의많은 부분이 좀 더 개선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세상은복잡하고, 어떻게 하더라도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우리가 사는이곳을 무결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우리 모두가 개인주의자가 되고자 지금보다 애쓴다면, 그러한 세상에 조금 더 근접해질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외국의 시민들은 우리와 다르게 선진적이라거나, 개인주의 부분에서 더 앞서 나간다거나 하는 주장을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낸것은 아니다. 실제로 내가 경험한 외국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도 있었지만 더욱 무례하고 인종차별적인 사람들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끌고 온 것은, 우리 모두에게 바로 위와 같은 태도가 필요하지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일정한 거리를 지키며, 간섭과참견을 하지 않는, 나와 다른 타인의 개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적당한 무관심의 사회. 그러면서도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보아 넘기지 않는, 약자와 소수자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것을 잊지 않는, 서로에게 다정한 사회,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아마도 이와 같은 ‘다정한 무관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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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을 읽는 사이 니체의《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글로 쓰인 모든 것 중에서 나는 오로지 글쓴이가 피로 쓴 것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글을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정신임을 알것이다.
타인의 피를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글을읽으며 게으름 부리는 자들을 미워한다.

안데르센 동화에 나오는 난쟁이, 올레는 덴마크의 평범한 사내아이 이름, 루코예는 ‘눈 감겨주는 사람‘이란 뜻으로, 아이들을 잠들게 하고 좋은 꿈이나 나쁜 꿈을 가져다준다. 올레 루코예는 양팔에 하나씩 우산을 갖고 다니다가, 낮에 착하게 지낸 아이에게는 안쪽에 아름다운 그림이 있는 우산을 펼쳐준다. 그러면 아이는 밤새 아름다운 꿈을 꾼다. 낮에 못된 짓을 한 아이에게는 아무 그림도 없는 우산을 펼쳐주고, 그럼 아이는 아무 꿈도 없이 밤새 깊은 잠을 잔다. 그런데 올레 루코예에게는 이름이 같은 동생이 하나 있다. 동생은 실은 죽음이다. 동생이 누군가를 찾아가 눈을 감기면 그 사람은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한다. 동생이 이미 그 눈을 삼켰기 때문이다.

삶 전체가 그냥 하나의 타는 듯한 아픈 상처로 느껴질 때, 절망을 숨 쉬고 희망 없음의 죽음을 죽을 때 우리는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 비참함으로 고독해지고 마비되어 망연히 삶을 건너다볼 때, 삶의 거칠고도 아름다운 잔인함을더는 이해하지 못하고 더는 삶을 바라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 무시무시하고 위대한 작가가 울리는 음악에 마음을 연다.
_본문 이 죽음을 죽고, 이 지옥을 밟고 나서야. 도스토옙스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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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심각한 철학을 모른다 해도본성은 더없이 성스럽구나너는 아브라함의 품 안에 안겨 일 년 내내사원의 가장 깊은 성소에서 경배하네우리가 모르더라도 그분이 너와 함께하리생각해보니 이 시를 쓴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Wordsworth 역시 이곳 케임브리지를 다녔구나. 정작 자신은 그사실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지만, 그는 철학이란 책이 아니라 나무와 새, 꽃에서 배워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이른바
‘낭만주의자‘ 였거든. 물론 철학은 모든 것에서 배울 수 있다는게 너와 나의 생각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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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누군가를 만나 나를 소개하는 일은 단 한번도 쉬웠던 적이 없다. 생년월일을 말하면 될지, 고향을 말하면 될지, 출신학교를 말하면 될지, 직업을 말하면 될지, 경력을 말하면 될지, 결혼 여부를 말하면 될지, 자녀의 유무를 말하면 될지 혹은 취미나 취향에 대해 말하면 될지…. 그렇게 나는 오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 얼음으로 변했다가, 그저 내 이름 석 자만을 말하고 끝내고 만다. 그러면 상대방은 되묻는다. "그게 다인가요?" 나는 또다시 얼음이 된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리하여 자신이 누군지 알고자 끊임없이 애쓴다. 반면 타인에 대해서는 쉽게 규정짓는다. 성별, 학벌, 출신지, 결혼 여부 등으로 뭉뚱그려서 파악한다. 자신은 너무나 복잡한 반면, 타인은 너무나 단순한 대상으로 취급하곤 한다. 각각의 정보마다 특정한 값을 설정해둔 다음, 해당 값에 인물을 가져다 맞춘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사람들은 바쁘고, 시간은 부족하니 말이다. 정보마다 특정 값을 설정하여 해당 값을 모두 더하는 것은 사람을 파악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보 값이 편견과 선입견에 근거하여 틀린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방법이 과연 옳은가 하면, 그렇게 도출해낸 결과값이 누군가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그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불안한 존재이며, 불안한 개인은 내면에서 솟아나는 에너지와 충동을 잊기 위해 몰두할 대상을 찾아 자주 헤맨다. 그리고 대상을 찾아낸 이후에는 불안과 번뇌를 잊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의탁하거나 헌신적으로 돌변한다. 외적인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불안한 자아를 잊고자 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예술이나 학업일 때는 긍정적인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지만, 종교나 정치, 어떠한 이념이 되었을 때는 종종 큰 문제가 생겨나기도 한다. 과잉된 신념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들며,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는 자주 밖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결국 자아를 잃어버리고 집단에 의탁한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는 맹목적인 충성심을, 타 집단에는 격렬한 배척과 혐오감을 갖기 쉽다.

결국 집단과 무리에 기대려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회 전체의 갈등과 분열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개인주의자가 된다면, 불안과 결핍을 잊고자 무언가에 의탁하려는 충동에서 벗어나 한 명의 개인으로서 우뚝 선다면, 사회의 많은 부분이 좀 더 개선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세상은 복잡하고, 어떻게 하더라도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우리가 사는 이곳을 무결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개인주의자가 되고자 지금보다 애쓴다면, 그러한 세상에 조금 더 근접해질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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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개인의 존재와 가치가 국가나 사회 등의 집단보다 우선이라 생각하며, 개인을 중심에 두고 모든 것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사상, 사고방식, 가치관, 신념, 태도, 기질을 말한다.* 간단히 말해 개인주의는 전체주의나 집단주의와 대립되는 사상이다.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며,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그 무엇보다 존중하는 태도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비슷하기는커녕 완전히 반대되는 개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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