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누군가를 만나 나를 소개하는 일은 단 한번도 쉬웠던 적이 없다. 생년월일을 말하면 될지, 고향을 말하면 될지, 출신학교를 말하면 될지, 직업을 말하면 될지, 경력을 말하면 될지, 결혼 여부를 말하면 될지, 자녀의 유무를 말하면 될지 혹은 취미나 취향에 대해 말하면 될지…. 그렇게 나는 오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 얼음으로 변했다가, 그저 내 이름 석 자만을 말하고 끝내고 만다. 그러면 상대방은 되묻는다. "그게 다인가요?" 나는 또다시 얼음이 된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리하여 자신이 누군지 알고자 끊임없이 애쓴다. 반면 타인에 대해서는 쉽게 규정짓는다. 성별, 학벌, 출신지, 결혼 여부 등으로 뭉뚱그려서 파악한다. 자신은 너무나 복잡한 반면, 타인은 너무나 단순한 대상으로 취급하곤 한다. 각각의 정보마다 특정한 값을 설정해둔 다음, 해당 값에 인물을 가져다 맞춘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사람들은 바쁘고, 시간은 부족하니 말이다. 정보마다 특정 값을 설정하여 해당 값을 모두 더하는 것은 사람을 파악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일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보 값이 편견과 선입견에 근거하여 틀린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가장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방법이 과연 옳은가 하면, 그렇게 도출해낸 결과값이 누군가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그 또한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불안한 존재이며, 불안한 개인은 내면에서 솟아나는 에너지와 충동을 잊기 위해 몰두할 대상을 찾아 자주 헤맨다. 그리고 대상을 찾아낸 이후에는 불안과 번뇌를 잊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의탁하거나 헌신적으로 돌변한다. 외적인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불안한 자아를 잊고자 하는 것이다. 그 대상이 예술이나 학업일 때는 긍정적인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지만, 종교나 정치, 어떠한 이념이 되었을 때는 종종 큰 문제가 생겨나기도 한다. 과잉된 신념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들며,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는 자주 밖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이다. 결국 자아를 잃어버리고 집단에 의탁한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는 맹목적인 충성심을, 타 집단에는 격렬한 배척과 혐오감을 갖기 쉽다.
결국 집단과 무리에 기대려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회 전체의 갈등과 분열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거꾸로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개인주의자가 된다면, 불안과 결핍을 잊고자 무언가에 의탁하려는 충동에서 벗어나 한 명의 개인으로서 우뚝 선다면, 사회의 많은 부분이 좀 더 개선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세상은 복잡하고, 어떻게 하더라도 완벽한 사람은 없으며, 우리가 사는 이곳을 무결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개인주의자가 되고자 지금보다 애쓴다면, 그러한 세상에 조금 더 근접해질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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