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들은 관심을 바라지 않지.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에밀리 디킨슨의 글은 아름다운 것들의 태도를 대변한다. 그의 시 중에 이런 글이 있다.
여름 하늘을 보는 것은
시,
하지만 책에는 결코 실리지 않는다
진짜 시들은 달아난다
ㅡ에밀리 디킨슨, <여름 하늘을 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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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했던 모든 것이 다 틀렸어!

근사한 곳에 따로 숨겨져 있을 것 같던 곳들이

너무 어이없게, 가깝게, 별거 아니게 있어.

진짜 허무하게 아름답다.

보란 듯이 가만히 있는 파리.

누군가를 좋아하면 모든 게 쉬워진다. 그 애가 좋아하는 것이면 뭐든 따라 좋아했고, 그 덕에 피아노와 친해졌다. 졸업한 뒤로 그 애를 한 번도 다시 본 적이 없지만 그 곡만은 선연히 기억했다. 어느 곳이든 피아노가 보이면 앉아서 그 곡을 쳤다. 그게 재즈인지도 모른 채 마냥 좋아했다. 그 이후로 다시 피아노를 좋아하기로 마음먹은 건 15년 만이었다. 수업 첫날, 나는 손과 발을 덜덜 떨면서 쌤 앞에서 첫 연주를 했다. 첫사랑 앞에서는 잘 보이고 싶어 떨렸고, 그의 앞에서는 칭찬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났다.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어른이 된 나는 다시 학생이 되어 누군가에게 내 부족함을 들키는 것이 어색했다. 실수를 창피해하다가 다음 박자를 놓쳤다. 쑥스러움이 내 손가락을 집어삼켰다. 쌤은 피아노 의자에 앉으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장난스러워야 해요! 조금은 바보같이."

그는 연주로 이 말의 의미를 들려줬다. 그는 일부러 박자를 놓치기도 했다. 그의 연주는 진지하면서도 장난스러웠고, 계획된 듯하면서도 엉성했다. 또 튕겨나갈 듯하면서도 얄밉게 박자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쌤은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소년처럼 유려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연주를 이어갔다.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부끄러웠다. 피아노 앞에서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듯 보였지만, 나는 쭈뼛거리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잘못이다. 진지하지 못한 것은 더 큰 잘못이다. 비엔나에서 들었던 발레 수업을 떠올렸다. 어설픈 동작을 하면서도 웃음기 없이 진지했던, 비장함이 가득했던 사람들. 나는 그들의 비장함을 빌려와야 했다. 나는 쑥스러움을 털어내고자 노력했다.

무언가에 홀려 있는 상태가 되려면 두 가지를 지켜야 한다. 하나를 선택하는 것 그리고 나머지를 포기하는 단호함을 갖는 것. 그로 인해 몸과 마음은 깨끗해진다. 그 순간에 명확히 존재하게 된다. 눈을 질끈 감고 자기만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치열하고 얼얼하게, 그것밖에는 모르는 바보가 되는 것이다. 그런 날들을 경험하다 보면 제각기 흩어져 힘이 없던 자아가 하나로 모여 보란 듯이 할 일을 해내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작은 몰입들이 쌓이는 것이야말로 스스로를 차근차근 만나는 일이며, 찜찜함 없는 깊이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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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선 박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며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의궤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군분투한 그의 삶 덕분에 우리는 마침내 의궤들을 되찾았습니다. 그에게 의궤는 일생을 바쳐 되찾아야 할 ‘가슴 뛰는 무엇’이었습니다. 신라의 킹메이커인 김유신도 그렇습니다. 그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야 출신이라는 한계였죠. 그는 ‘약점과 한계를 넘어서는 그 무엇’을 끊임없이 고민했을 겁니다. 그리고 결국 김춘추라는 파트너를 선택해 원하던 바를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뿐일까요? 불평등과 차별을 이겨내고자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품은 동학 운동의 농민들, ‘다음 세대에게는 다른 세상을 물려주려 했던’ 3ㆍ1운동의 이름 모를 남녀노소들, 그리고 ‘민족의 힘과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를 캐물으며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고자 했던 조선어학회의 회원들까지. 우리 역사는 이렇게 삶의 화두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자신만의 질문을 던졌던 작은 용기들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만남입니다.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볼 때도 이토록 다양한 시선이 존재하는데 셀 수 없이 많은 궤적의 집합이라 할 수 있는 역사는 오죽하겠습니까. 정답이 없는 질문이라니, 머리가 혼란스러워집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나만의 시선, 바로 ‘관점’입니다. 다양한 맥락 속에서 물살에 떠밀리듯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상처투성이로 고통받지 않으려면 나만의 관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책에는 사건과 인물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수험생을 위한 강의를 하는 사람입니다. 그 강의는 시험 문제를 잘 풀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요. 하지만 저는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역사의 본질이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는 사실을 도외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본질에 충실하고자 수험서에도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담고자 애를 써왔습니다. 가끔 ‘왜 시험과 관계없는 이야기를 하느냐’는 투정 어린 댓글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늘 수험생들의 목소리에 가장 먼저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지만, 이 부분만큼은 수정하거나 양보하고 싶지 않더군요. 역사를 향한 ‘시선’은 결국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귀결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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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에 그는 탁월한 생태주의자가 되었고,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의 개념을 적극 제안한 사람들 중의 하나도 바로 소로다. 그는 ‘국립공원’이라는 자연과 인간의 행복한 공존의 모델을 주장했으며, 시민 불복종 운동을 통해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는 개인의 위대함을 역설했다. 소로는 단지 『월든』의 작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시인이자 다정한 생태주의자이자 열정적인 시민운동가였다. 그 이면에는 생계를 위해 뛰어들어야 했던 측량기사의 일, 가업으로 이어받아야 했던 연필 제조업도 있었다. 그러나 그 복잡한 캐릭터 속에 늘 숨어 있는 소로의 가장 결정적인 본성은 모든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한 한없이 따스한 사랑과 공감의 눈길이었다.

진정 중요한 것들은 험악한 환경에서도 그 모습을 바꾸지 않는다. 소로는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를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소로에게는 희망을 가질 이유보다 절망할 이유가 더 많았다. 그는 평생 가난했으며, 그의 재능을 진정으로 인정해 주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소로는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힘없고 소외받는 모든 존재들을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바로 그 멈추지 않는 희망과 사랑이야말로 팬데믹 시대 우리가 소로에게서 배워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닐까.

모두가 월든처럼 숲속에 오두막을 짓고 살 수는 없지만, 월든처럼 ‘복닥이는 삶과의 결별’을 추구할 수는 있다. 우리는 치열하게 경쟁하는 삶, 매일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가슴 찢어지는 감정노동을 반복하는 삶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

뼈에 가까운 삶이 가장 달콤하다
"자기계발을 하겠다며 온갖 것들에 기웃거리지 말라. 다 쓸모없는 짓이다.
뼈에 가까운 삶이 가장 달콤하다. 영혼의 필수품을 사는 데는 돈이 필요 없다."

월든을 일상 속으로 초대하는 법
"우리는 기계의 도움 없이 이른 새벽에 새로운 하루에 대한 무한한 기대로 깨어나서,
하루 종일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가장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도, 새벽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는다.
하루하루의 일상 자체를 최고로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하루하루 완전히 깨어 있는 삶. 자신의 가장 빛나는 천성을 저버리지 않는 삶. 자기 안의 최고의 빛을 매일 이끌어내는 삶. 그 어떤 안락함이나 쾌락에도 중독되지 않는 삶을 찾아야 한다. 새벽에 대한 무한한 설렘으로부터 깨어나, 그 깨어 있음을 하루 종일 유지하는 기술은 삶 그 자체를 아름답게 만든다. 삶 자체를 예술로 만드는 삶에는 그 어떤 방해물도 끼어들지 못한다.

더 오래, 더 깊이 바라보기
"잠시만 우리가 서로의 눈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커다란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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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무관심 - 함께 살기 위한 개인주의 연습
한승혜 지음 / 사우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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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여성성을 상징하는지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성별 고정관념에 대한 집착과 그것을 의도치 않게 강화하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여성주의에서 탈코르셋을 응원하고 권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여성들에게 다양한 선택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여성은 무조건 어때야 한다’는 획일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여성이 진정한 자신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일부 극단적 여성운동을 하는 이들이 ‘탈코르셋’을 하지 않은 이들을 비난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탈코르셋’은 어디까지나 여성 개개인이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해방감을 맛보는 데 의의가 있을 뿐, ‘여성적인’ 것으로 상징되는 기표를 전면 부정하고 없애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획일화를 거부하고자 시작된 운동이 또 다른 획일화의 강요로 이어지는 것은 곤란하다. ‘긴 생머리’에 대한 강요에 저항하기 위해 거꾸로 ‘짧은 머리’를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해답이 될 수 없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딸이 공주 이야기를 들려달라거나 공주 의상을 입고 싶다고 할 때 고민하다가 결국 보여주거나 입혀주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기도 한다. 흔히 우리가 보고 들어왔던 공주 이야기 속 공주들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로 그려졌는지에 대해서. 이 세상에 더 재미있고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 그러한 말들이 향후 딸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아이가 다양한 선택지를 앞에 두고 자신의 취향을 갖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 타인의 취향도 존중할 줄 아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별에 지배받지 않는, 한 명의 개인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가 여성으로 구성된 여대에서는 타인을 판단하는 잣대 중 성별이라는 기준이 아예 사라져버린다. 살면서 무수히 경험하고 들었던 "여자가 어떻게", "여자라서" 혹은 "여자니까"의 이유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 여성들은 자연스레 스스로의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자유로운 사고를 하게 된다. 마치 《어둠의 왼손》에 등장하는 게센인들과도 같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같은 선상에서 여대는 여성들 스스로가 가진 다양한 층위를 깨닫게 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흔히 성차가 사라지면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는 ‘여성’이라는 장막을 한꺼풀 걷어낸 뒤에도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여전히 다양한 차별이 남는다. 그러므로 이런 세계를 경험한 여성들은 개인의 정체성이 매우 복합적인 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자신이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는 있으나 언제나 그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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