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여성성을 상징하는지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성별 고정관념에 대한 집착과 그것을 의도치 않게 강화하는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 여성주의에서 탈코르셋을 응원하고 권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여성들에게 다양한 선택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여성은 무조건 어때야 한다’는 획일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여성이 진정한 자신의 취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일부 극단적 여성운동을 하는 이들이 ‘탈코르셋’을 하지 않은 이들을 비난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탈코르셋’은 어디까지나 여성 개개인이 사회적 압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해방감을 맛보는 데 의의가 있을 뿐, ‘여성적인’ 것으로 상징되는 기표를 전면 부정하고 없애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획일화를 거부하고자 시작된 운동이 또 다른 획일화의 강요로 이어지는 것은 곤란하다. ‘긴 생머리’에 대한 강요에 저항하기 위해 거꾸로 ‘짧은 머리’를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해답이 될 수 없다.
다시 나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딸이 공주 이야기를 들려달라거나 공주 의상을 입고 싶다고 할 때 고민하다가 결국 보여주거나 입혀주는 경우가 많다. 아이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기도 한다. 흔히 우리가 보고 들어왔던 공주 이야기 속 공주들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로 그려졌는지에 대해서. 이 세상에 더 재미있고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에 대해서. 그러한 말들이 향후 딸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아이가 다양한 선택지를 앞에 두고 자신의 취향을 갖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서 타인의 취향도 존중할 줄 아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별에 지배받지 않는, 한 명의 개인으로 자라나는 것이다.
이처럼 모두가 여성으로 구성된 여대에서는 타인을 판단하는 잣대 중 성별이라는 기준이 아예 사라져버린다. 살면서 무수히 경험하고 들었던 "여자가 어떻게", "여자라서" 혹은 "여자니까"의 이유가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 여성들은 자연스레 스스로의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보다 자유로운 사고를 하게 된다. 마치 《어둠의 왼손》에 등장하는 게센인들과도 같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같은 선상에서 여대는 여성들 스스로가 가진 다양한 층위를 깨닫게 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흔히 성차가 사라지면 사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실제로는 ‘여성’이라는 장막을 한꺼풀 걷어낸 뒤에도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여전히 다양한 차별이 남는다. 그러므로 이런 세계를 경험한 여성들은 개인의 정체성이 매우 복합적인 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자신이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는 있으나 언제나 그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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