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의 기적은 우리가 어떤 약점들을 타고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피부 한 꺼풀에 불과하지만, 추함은 뼛속까지 파고든다."
─도로시 파커

피부에 관한 모든 것의 권위자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인 니나 자블론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솔기는 터지는 법이 없어요. 저절로 벌어져서 새는 일이 없지요."
피부는 진피라는 안쪽 층과 표피라는 바깥쪽 층으로 이루어진다. 표피의 가장 바깥 표면은 각질층인데, 전부 죽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를 사랑스러워 보이게 하는 것이 모두 죽은 것이라니 흥미롭다. 몸이 공기와 만나는 지점만 보면, 우리는 모두 시체이다. 이 바깥 피부세포들은 매달 교체된다. 우리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많은 피부를 떨군다. 1분에 약 2만5,000개, 즉 1시간에 100만 개가 넘는 피부 조각이 떨어져 나간다. 손가락으로 책꽂이에 내려앉은 먼지를 죽 훑으면, 대체로 예전의 자신이었던 것의 잔해들을 헤치면서 길을 내는 셈이 된다. 소리 없이 그리고 냉혹하게 우리는 먼지로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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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신앙이 부족하다는 것을 애석하게도 나 자신의 슬픈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나 자신만 바라보고 하느님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곧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과 나를 위해 열려있는 그분의 마음에 주목하지 않고 ㄱ신의 쓸모없음만을 본다. 둘째, 내가 청원하는 바를 너무도 인간적인 눈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바라보지 않고, 내가 지금 바라는 은혜는 도저히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불가능한 것이라든가, 또는 얼마나 많은 장애가 가로막고 있는가 하는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이제부터는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만을 바라보자. 우리 하나하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고난을 받으신 것은 오직 사랑 때문이었으며, 그분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는 것을 감미롭고 즐거우며 당연한 것으로 여기신다. (베풀어야 할 은혜가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기쁘게 내놓는 것이 사랑의 본성이다.)우리에게는 가장 힘들고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무한한 능력으로 하실 수 있음을 늘 바라보자.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당신께 드린 청이 들어 허락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게 이 은혜를 전구해 주시며, 제가 졸지 않게 제 위에 당신 손을 펴주십시오. 주님의 발치에 있을 때, 그리고 주님이 기도하기를 권하실 때, 주님과 단둘이 지낼 수 있도록 일부러 불러주실 때 저는 애석하게도 여러 번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모든 일은 그분이 원하고 허락하여 일어나는 것이므로 두려움이 아니라 그분께 더 큰 영광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원칙(예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ᆞ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에 의해 일어난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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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뜻에서 지혜는 ‘지식‘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잡는 기술이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치는 지식이다.
가장 본질적 의미에서 지혜란 슬기롭게 자기 몫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총체적 능력 또는 ‘최상의 지성(Whybray, 10)을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지혜로운 자‘ 혹은 ‘현인‘은 결코 어떤 특정한 신분의 인물만을가리키지 않는다. 지혜롭다는 것은 오히려 어떤 영역에서든지 "일에능통하고 정통한 사람을 가리키며(탈출 36,8, 1열왕 7,14), 많은 경우 단순히 어리석은 자에 대치되는 인물이다(폰 라트, 31). 고대 세계에서 현인은 자기 삶의 길을 잘 걸어갈 뿐만 아니라, 사회가 제 기능을 성공적으로 발휘하도록 이끌어가는 사람이었다(Chrenshaw, 215-216)

율법학자의 지혜는 여가가 얼마나 있느냐에 달려 있고사람은 하는 일이 적어야 지혜롭게 될 수 있다.
온 마음을 다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율법을 명상하는 이는이런 자들과 다르다(시라 38,24.34).

지혜의 한계성을 체험한 인간은 참된 지혜가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계획은 인간이 세우지만, 이루어지는 것은 주님의 뜻뿐"(잠언 16,9; 19,21 참조)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우치는 슬기와 기도하는마음이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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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의 불꽃 - 샤를 드 푸코의 영적 수기
샤를르 드 푸코 지음, 조안나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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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위에는 퇴폐와 무지, 오만이 판을 치고 있었으며, 그 자신과 그가 신앙으로이끈 신자들을 위해 늘 무언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으나그 어떤 경우에도 평화를 잃어서는 안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라. 샤를 형제의 평화와 힘과 지고의 선은 그가 다른 모든 것을버린 결과였다. 결정을 내려야 할 때면 그는 자기 은둔소에 들어가 팔 일이나 십일 동안 하느님 앞에 머물곤 했다.
그가 하느님과 단둘이 머무는 것을 얼마나 즐겼던가!

"신앙의 삶에 매달려야 한다."
"이것(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신앙인들에게 가는 것은 많은 영혼들을 매혹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겪을 위험이 큰 만큼그들에게 영광이 되므로…."
"건강이나 생명에 대해서는, 나무가 떨어지는 나뭇잎에 대해서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듯 염려하지 말 것."
"내 온 힘을 하느님을 위해 간직할 것."
"인간적 수단의 약함은 또 하나의 힘의 원천이다."
"예수님은 불가능의 스승이시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님께 대한 우리의 절대적인의무다."

자네의 생일인 오늘은 다른 어느 날들보다도 더 힘차게 하늘나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네. 두려울 정도로 냉담하고 미지근해져 분심에 휩싸이는 때에,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고 싶어 하는 주님이 더없이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이며, 언젠가는 우리도그분을 사랑하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얼마나 흐뭇한 일인지 모르겠네. 날들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네! 우리의 여생이 얼마나 될지 누가 알겠나? 우리의 여생이 짧든 길든 주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고, 우리 여생이 그분께 속하고, 그분을 위한 것이 되어 그분 마음을 위로해 드리기를!
1896년 8월 15일...
"사람은 사랑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늘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아니면 적어도 하염없이 그를 바라보고 싶어 하거나 기도란 바로 지극히 사랑하는 주님과의 친밀한 대화라네. 우리는 그분을바라보고 사랑한다고 말씀드리며, 그분의 발치에 머무는 것을기뻐하며, 거기서 살고 거기서 죽고 싶다고 그분께 말씀드리는것이지・・・.
1986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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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 - 단 하나의 나로 살게 하는 인생의 문장들
최진석 지음 / 열림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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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생텍쥐페리 자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서항상 자신의 우물이 어디 있는지 찾던 사람, 스스로 별이 되고자 하던 사람. 우리는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고 감탄하고 박수를 치면서, 정작 우리 안에 어떤 별이 있는지, 자신이 어떤 별인지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아요. 어린 왕자는 스스로 별이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어린왕자』에 나오듯이 어른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혹은 봐야 하는 대로 세계를 봅니다. ‘정해진‘ 대로 보는 것이지요. 반면에 어린이는 상자 속 양을 발견할 수도 있고, 보아뱀의배 안에 코끼리를 넣을 수도 있습니다.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볼수 있기 때문이지요. 정해진 마음으로만 세상을 보는 사람은 세계의 진실과 접촉할 수 없습니다.

니체입니다. 그는 인간 정신발달의 단계를 낙타, 사자, 어린이에비유했습니다. 낙타는 온갖 짐을 지고 정해진 궤도를 따라 꾸역꾸역 갑니다. 사자는 낙타에 비해 나름의 주도권과 의지를 갖고나아가지요. 어린이는 자기가 삶의 동력 그 자체입니다. 무한긍정의 상태지요. 정해진 궤도를 따라서도 넘어서도 갈 수 있는존재. 어린이는 매사에 호기심이 넘칩니다. 낙타나 사자에게 없는 것이지요. 작중에서도 어린 왕자를 묘사할 때 가장 많이 반복되는 문장이 "한번 묻기 시작하면 끝까지 묻는다"입니다. 이렇듯 어린이는 모든 일의 출발과 다름없는 무궁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지닌 존재지요.

어린이날을 만드신 소파 방정환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른이 어린이를 내리누르지 말자. 삼사십 년 뒤진 옛사람이 삼사십 년 앞사람을 잡아 끌지 말자. 낡은 사람은 새 사람을 위하고 떠받쳐서만 그들의 뒤를 따라서 밝은 데로 나아갈 수있고 새로워질 수가 있고 무덤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에어린이의 마음을 갖지 않으면 죽음을 향해 가고, 사회가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 그 사회가 무덤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어린왕자』를 보세요. 어른을 인간으로 만드는 역할을 어린이가하고 있습니다.

"내 별을 봐, 바로 우리 머리 위에 있어." 저는 이렇게 패러디하고 싶습니다. "내 우물을 봐, 바로 내 안에 있어." 그리고 다음에는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하지만 어쩌면 저렇게 멀까?"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듯" 시간을 들여 마침내 그것을 찾아 중요하고 유일한 것으로 만들어낸다. 그것을 이루는 순간 스스로 별이된다. 어린 왕자도 "백열한 명의 왕, 7000명의 지리학자, 90만 명의 사업가, 750만 명의 주정뱅이, 3억 1100만 명의 허영심 많은사람 등 약 20억쯤 되는 어른이 살고 있는" 지구에서 잠시 "샘을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마음을 놓쳤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없는 꽃을 가진 부자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가진 꽃은 겨우 평범한 장미꽃이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유일했던 장미꽃을 여러 장미꽃 가운데 하나로 전락시켰다. "그래서 그는 풀밭에 엎드려 울었다." 고유한 존재감으로 충만하던 사람이 자신의 유일함과 고유함이 일반성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하면어떤 누구도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가운데 한 명으로는 자기일 수 없다. 여럿 가운데 하나는특별할 수 없다. 고유하고 유일할 때만 자기일 수 있다. 하지만이런 절망을 느끼는 사람은 축복의 마지막 줄에 서 있는 셈이다.
보통은 우리 가운데 한 명으로만 존재하면서도 그런 자신이 고유하다 착각하며 존재적 희열을 포기하고 심리적 위안으로 만족해버리기 때문이다. B-612호를 떠나는 정도의 모험심을 가진 사람이라야 자기에 대한 존재적 각성이 가능하다.

지구는 20억쯤 되는 다양한 사람이 사는 곳이다. 이곳은 사랑이 충만한 곳이 아니라 스스로 사랑이 돼야 하는 곳이다. 수없이많은 별 속에서 길들여지며 나만의 별을 찾고, 그 별을 특별히 대하고 책임을 지면서, 나도 별이 되는 일이 일어나야 할 곳이다.

지금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지독한 어떤 것과 싸우는 중이다.
COVID-19다. 오래전 유럽에는 페스트가 돌았다.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페스트와 싸웠던 사람들 속에 우리가 있다. 카뮈의 말을 직접듣는다. "나는 페스트를 통해 우리 모두가 고통스럽게 겪은 그 숨 막힐 듯한 상황과 우리가 살아낸 위협받고 유배당하던 분위기를 표현하고자 한다. 동시에 나는 이 해석을 존재 전반에 대한 개념으로까지 확장하고자 한다." 그 누구도 감염시키지 않을 선량한 사람이란방심하지 않는 사람이다. 방심하지 않으려면 의지가 있어야 하고,긴장해야 한다. 제대로 존재하려면 긴장할 필요가 있다.

니다. 그럼 논픽션만 진실이 되고 픽션은 허구, 즉 거짓 이야기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논픽션이나 픽션이나 모두 진실을 견인하는 장르인데 말이에요.
두 장르 모두 진실을 드러내려는 의도는 같습니다.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논픽션은 사실을 정면으로 표현하고, 픽션은 진실을 다르게 빗대어 표현합니다. 우리는 왜 픽션을 사용할까요?

사실을 일대일 정면으로 표현할 때 드러낼 수 있는 진실은 매우협소합니다. 하지만 픽션은 은유를 통해 진실을 전혀 다른 대상에 빗대며 허구로 포장함으로써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요. 숨어있는 진실이 몰래 드러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픽션이 고도화되면 이것을 추상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피카소의 그림이 추상적 요소가 강한데, 사람들 눈에 이 추상이 거짓처럼 보일 수있습니다. 물론, 사실을 평면적으로 드러내는 쪽이 이해하기 편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접촉하는 진실은 매우 좁아요. 반면에 은유와 추상처럼 픽션의 기법으로 접촉하는 진실은 훨씬넓고 깊으며 생동감 있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요.

페스트는 병입니다. 전염병. 하지만 우리는 제사를 통해 카뮈가 페스트로 쥐벼룩이 옮기는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한 문제에관해 말하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카뮈가 제2차 세계대전을 지나며 겪은 고통과 고뇌가 없었다면 페스트』가 나오지 않았을겁니다. 페스트로 비유된 이 전쟁은 결별, 감옥, 엉뚱한 부조리에 갇힌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일, 예상하지 못한일,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망,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곤혹, 이런 것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상태요. 이것들이 바로 페스트입니다. 소설 속에 "인생 자체가 페스트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우리 인생에 빗대면 페스트는 특정 관념에 지배당하는 것, 정해진 마음에 갇히는 것을 말합니다. 이 모든 게 다른 세계와 만나지 못하는 결별이며,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드는 학대지요. 제게 "페스트가 무엇이냐?" 물어보신다면 카뮈가 말했듯이 "인생자체다", 더 구체적으로는 "너의 정해진마음이요, 묶인 발이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정해진 마음, 미래에 대한 곤혹, 고통,번민, 나를 잡아먹고 세계와 결별시키는 부조리에서 벗어나 어떻게 더 나은 단계로 건너갈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주제입니다.

모든 사람은 페스트에 걸릴 수 있습니다. 나를 감옥에 가두는병균에 감염되는 것입니다. 저는 정해진 마음에 기대어서 습관처럼 사는 것이 페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젊은 시절확고한 이념을 가졌던 사람이 평생 그 이념에 기대 살아간다면그는 이념의 감옥에 갇혀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감옥을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치 소설 속 미셀 같은인물이 페스트의 등장을 부정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걸린 페스트도, 자신이 갇힌 감옥도 모르는 체하지요. 평생을 부정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살게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페스트가 있을 때 우린 뭘 해야 할까요? 긴장하고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내 안에 페스트가 발견되어도 그것을 이겨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겁한 사람입니다. 자기를가두는 정해진 마음으로 세계를 보는 사람은 페스트에 진 게으른 사람입니다. 이 소설은 계속 의지를 가지고 긴장을 유지하며페스트를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내 안의 페스트를 어떻게 극복해 자유를 얻고 해방될 것인가?‘라는 주제의 질문에 오랑 시의 페스트 발견부터 해방까지의 이야기에 빗대어 문학작품으로 대답한 것이지요.

정해진 마음에 갇혀 있는 사람은 소유적 태도로 이 세상을 자기뜻대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반면 이와는 다른 존재적 태도‘가있습니다. 정해진 마음 없이 세계를 자세히 보는 태도를 말합니다. 미셸은 이미 페스트에 감염되었지만 자기가 감염되었다는것도 모릅니다. 세계를 유심히 살피지 않고 그저 습관에 따라의식하지 않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카뮈는 미셸을 제일 먼저죽입니다. 미셀에게는 인생에서 승리하려는 의지와 투지는커녕 자기반성조차 없었으니까요. 반면에 리유는 어떤가요? 내레이터의 역할까지 하면서 죽지 않고 소설을 끌고 나갑니다. 삶의주도권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페스트나 전쟁은 제일 먼저 단절을 불러옵니다. 소설에서 페스트가 극복되고 오랑 시가 해방될 때 사람들이 포옹하잖아요.
연결되는 모습이지요. 감옥에 갇힌 것은 벽에 의해 타자와 단절됨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벽을 허무는 가장 큰 힘이 바로 ‘공감‘이지요. 공감하지 못한다는 건 인간으로서의 성실성을 갖고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성실성을 실현해나가면서타인과 공감하게 되고, 타자를 내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여 경계 자체를 허물어버릴수도 있지요

많은 사람이 관념에 갇혀 사는 것 같습니다.
의지와 긴장이 없기 때문에 그 감옥을 부수지 않고 스스로 갇힌 것입니다. 페스트에 감염된 것이지요. 예를 들어, ‘사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사랑은 무엇이다‘ 하는 보편적 정의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정해진 사랑, 감옥에 갇힌 사랑을 교도관처럼 집행하려고 하지요. 그러면 사랑의 모양이 다 비슷해집니다. 하지만 사랑이 관념이 아니라 삶 자체가 된다면 이 세상에단 하나밖에 없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의지도 없고 긴장하지 않으면 정해진 사랑의 관념을 집행하는 사람으로 남기 쉬워요. 하지만 의지를 갖고 긴장을 유지하면 이 우주에서 하나뿐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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