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 도정일/문학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인간과 다른 동물들 사이의 불균등 가운데 가장 현저한 것의 하나가 성장속도다. 인간은 느리게 자라는 동물이다. 아기가 태어나서 걷기까지 적어도 1년, 똥오줌을 가리는 데는 2년이 걸리고 먹을 것과 먹어서는 안 될 것을 가릴 줄 알기까지는 4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다. 세 살배기들에게 “네가 알아서 먹어”라고 음식 선택을 맡기면 녀석들은 달싹한 아이스크림만 먹다가 두 달 만에 죽든가 병원으로 실려 가야 한다. 게다가, ‘철들기’에 이르면 일은 더 난감하다. 인간 동물이 좀 철이 들어 ‘사람’ 소리를 듣자면 얼마나 많은 철이 흘러야 할까? 밥 딜란의 노래 “바람 속에 불려온다네”에 나오는 표현을 빌면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사람들이/ 비로소 그를 인간이라 불러줄까” “얼마나 많이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아야/ 그가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을까”다.

신이 인간을 왜 이 모양으로 만들었는지는 하늘로 그를 방문해서 한 차례 되게 따져볼 문제다. 무엇보다도 시간 낭비와 경제적 비효율이 심각하다. 걷는 데 왜 1년씩 걸려야 하며 엎어지지 않고 뛰는 데 왜 7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가. 말을 배우고 가갸거겨 익히고 구구단 외고 책 읽는 데 왜 10년씩 걸리고 대학이란 델 들어가기까지 왜 18년이 걸려야 하는가. 모두 멋도 모르고 자라긴 했지만 돌이켜보건대 분통 터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닐 듯싶다. 그 시간에 일하고 돈 벌었다면 우리 모두 지금쯤 부자가 되었을 게 아닌가. 신이 좀 더 효율적으로 인간을 설계했더라면 우리 어릴 적 동무 곰배는 뛰다가 자빠져 팔 부러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우리 동네 말숙이는 압력밥솥 같은 학교에 가기 싫어 자살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아이들 키우고 학교 보내느라 부모들이 허리 휘게 벌어야 하는 돈은 또 얼마인가. 그럴 돈으로 아파트 사고 땅 산다면 세상에 가난뱅이가 어디 있겠는가.

두뇌 연구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생후 1년 동안 아기의 뇌가 도달하는 성숙도는 40%에 불과하다. 그 뇌가 95%의 성숙 수준에 이르는 데는 10년이 걸린다. 인간은 머리통 큰 동물로 태어나지만 그 머리통이 다 영글자면 1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다. 침팬지의 경우는 생후 1년 안에 뇌의 70%가 성숙하고 2년 안에 성장이 완성된다. 침팬지 머리통이 2년이면 끝내는 일을 인간의 뇌는 10년 넘게 하고 있어야 한다. 이건 무슨 얘기냐면, 아이들이 열 살이 되어야 뇌의 인지적 능력이 95% 선에 이르고 나머지 5%는 열 살 이후에 발달한다는 소리다. 이건 또 무슨 소리냐면, 여덟 살 혹은 10살까지는 소위 ‘지능지수’(IQ)라는 것이 결정되지 않고 말랑한 상태로 남아 환경의 영향에 민감하게 노출되어 있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생후 10년은 인간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시기다. 개체의 능력발달을 자극하고 돕기 위한 사회적 개입을 ‘교육’이랄 때, 그 교육이 최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도 생후 10년이다.

교육과 소득수준의 관계, 불평등과 빈곤의 문제 등을 열심히 연구해온 시카고대학 경제학자 제임스 헤크먼은 인간 성장에 아주 중요한 시기를 ‘15세까지’로 잡는다. 타고난 생물학적 조건을 배제했을 때, 한 인간의 지적 정서적 능력이 거의 결정되는 나이가 15세 선이라는 것이다. 그의 연구가 강조하는 것은 ‘교육의 효과’ 부분이다. 15세 이후에는 교육 등의 외적 개입이 개체의 기본적 능력 형성에 끼칠 수 있는 영향이 극히 미미하다고 그는 말한다. 15세 이후의 교육은 한 인간의 기술적 능력 계발은 돕지만 그의 근본적인 능력에는 거의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헤크먼은 2000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다. 그의 주장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15세까지의 연령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기가 ‘8세까지’라는 주장이다. 생물학적 요인 아닌 외적 요인이 아이들의 지능발달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 대개 8세까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취학 이전’의 시기가 아주 중요하다고 말한다. 취학 이전이라면 공교육이 시작되기 전의 다섯 살, 여섯 살까지의 시기다.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부모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가? 헤크먼의 권고는 뜻밖에도 “책 읽어주고 이야기 들려주라”는 것이다. 이 시기는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즐겁고 자유로운 부모-자녀 사이의 소통활동이 필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작가, 시인, 인문학자들이 오랫동안 해왔던 소리, 그러나 경영과 시장과 기술 제일주의의 시대에 사람들이 좀체 귀담아 듣고자 하지 않는 소리를 경제학자 헤크먼이 하고 있다.

인간의 성장 속도가 느린 것은 그 느린 과정에 의해서만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탁월한 능력들이 자라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조생 밀감이 아니다. 신의 설계이건 자연선택의 결과이건 간에 사람을 사람으로 키우는 과정은 느려야 하고 숨통 조이지 않는 것이어야 하며 여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는 방법은 느림, 자유, 여유와는 정반대의 것이다. 속도의 포로가 된 어른들은 동일한 속도를 아이들에게 강요한다. 시각능력이 채 안정되지도 않은 세 살짜리 꼬맹이들을 컴퓨터 앞에 앉혀 하루라도 빨리 ‘아이티 기술’을 익히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다. 초등 1년생에서 고3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은 하루 24시간 꽉 짜여진 ‘과잉조직’의 삶 속으로 내몰린다. 그들은 숨통이 막혀 있다. 무지하고 철딱서니 없는 어른들은 이런 양육법이 아이들을 망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보는 일이 없다. 그들은 가장 반교육적인 것을 교육이라 부르고 정신의 기형적 위축을 성장이라 부른다.


얼마나 많이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아야 인간은 비로소 하늘을 볼 수 있을까? 하늘에서 하늘을 발견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독특한 능력의 하나다. 그러나 그 능력을 발휘하자면 성장기의 정신의 확장이 필요하다. 딜란의 노래는 계속된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보내야/ 그는 남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걸 알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죽음들이 있어야 할까?” 이런 물음들 끝에 딜란의 노래는 후렴구로 대답한다. “친구여, 그 해답은 바람 속에 불려온다네, 바람 속에 불려온다네.” 남들의 울음소리를 듣자면 인간에게는 연민과 겸손을 확장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 능력을 키우는 비밀은 성장기의 아이들을 자유롭게 숨 쉬며 자랄 수 있게 하는 바람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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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괴물딱지야! 하하! 호호! 입체북
키스 포크너 지음, 에릭 스미스 그림, 장미란 옮김 / 미세기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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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집집마다 이런 괴물딱지 한 명쯤은 다 있게 마련이잖아요? 우리집 아들  녀석도 잭 먐치?개구쟁이랍니다. 그런데 우리 아들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하는 말이 뭐였는지 아세요? "엄마, 우리집엔 이런 아이 없죠?" 였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장에 천사가 나오니까 "이런 아이는 있어요." 하는 거 있죠.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 혼났습니다. 자기도 말썽을 많이 피우는 개구쟁이지만 사실은 그게 좋지 않다는 건 다 알고 있는 거지요. 우리 아들의 기가 막힌 또 한마디는? "진짜 이렇게 변하면 좋겠다!" 크윽, 할 말 없습니다.

잭에겐 별명이 참 많아요. 엄마 화장대에서 온갖 것을 꺼내 끌고 다닐 땐 깜찍한 원숭이가 되고, 온몸에 흙을 묻힌 채 들어와 여기저기 흔적을 남길 땐 귀여운 강아지가 됩니다. 집안이 물감 천지가 되는 날은 무시무시한 괴물딱지가 되었다가 우당탕탕 뛰어다니면 금방이라도 침을 쏠 듯한 붕붕 벌이 되지요.

잭 손에 들어간 음식이 장난감이 되면 어이없긴 하지만 어릿광대를 보는 것 같아 웃음이 터지네요. 하루 종일 말썽을 피우고 엄마랑 씨름하다 잠든 잭은 천사가 되었습니다. 잠든 얼굴이 금방이라도 눈을 뜨고 신나는 놀이거리를 찾을 것처럼 귀여워요.

아이들 말썽 피운다고  혼내지만 말고 가끔은 아이들 입장이 되어  "야, 정말 재미있겠다. 우리 같이 놀자.'"고 해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아이들이 좀더 오랫동안 신나고 행복해질 것 같은데.... 사실 그 말썽꾸러기들 덕분에 우리 어른들이 행복하잖아요.

몇 번 접어서 오려 붙였을 뿐인데 어쩜 이렇게 예쁜 입체북이 된 거죠? 엄마한테 혼나고 민망해하는 잭의 다양한 표정 뒤에 나오는 원숭이랑 강아지랑 괴물이랑  벌이랑 피에로의 표정이 살아 있는 것 같아 깜짝 놀라게 되네요. 벌로 변했을 땐 눈이 너무 크고 사실적이어서 약간 무섭기까지 합니다.

빨강, 노랑, 파랑, 보라, 초록 등 원색 느낌을 많이 써서 아이들의 시선을 확실하게 끄는 것도 이 책의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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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우산 2006-05-18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에도 이런사람이 있어요.(바로 내 동생)
 
죽은 나무가 다시 살아났어요 - 아이과학 1단계, 생물영역 아이과학
김동광 지음, 정순임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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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가 이렇게 무서울 수도 있군요. 번개 맞아 죽은 나무 두 그루가 어떻게 다시 태어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웅덩이 속에 떨어진 나무는 물속 생물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땅에 떨어져 죽은 나무에게는 숲속 곤충들 몰려옵니다.

물방개, 사슴벌레, 좀벌레 들이 지나간 자리에 개미와 또다른 곤충들이 와서 온갖 구멍을 뚫어 습니다.그러면서 나무들이 부서지고 이끼들이 자라고 버섯도 나타납니다. 드기나 달팽이도 먹이를 찾아 기웃기웃. 이들은 서로서로 도와가며 더불어 살아갑니다.

많은 동물들이 먹이로 보금자리로 삼았던 죽은 나무는 어느새 흔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나무들은 다시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나무는 흙이 되어 또다른 나무를 키우고 식물을 키웁니다. 오히려 죽어서 더 많은 것으로 태어난 거지요.

나무 한 그루의 일생이 참 아름답군요. 자연은 모두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자신을 아끼지 않고 모두에게 돌려주니까요. 사람보다 훨씬 지혜롭고 영리하게 살아가는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책입니다. 글이 짧아 유아에서 1,2학년까지 두루 볼 수 있습니다.

 마루벌에서 나온 <선인장 호텔>을 같이 읽으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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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속 - 한국 연작 시화 선집
문삼석 / 아동문예사(세계문예)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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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학교에 가니 동시를 접할 일이 많아지더군요. 교과서에도 짧은 동시들이 여러 편 나오고 직접 동시를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동시 쓰기를 너무 어려워했어요. 책에 나온 동시들은 정말 재미 있고 쉽고 짧은 동시들인데, 그래서 동시집들을 모으기 시작했죠.

그 중 <우산속>을 보고 깜작 놀랐네요. 초등 1,2학년 교과서에 실린 동시들이 여러 편 들어 있더라구요. 아이도 교과서에 나오는 동시들이 있다니까 흥미를 갖고 보더니 깔깔거리고 웃기 시작했어요. 자신의 생각보다 동시들이 너무 쉬웠나 봐요. 그리고는 자기도 바로 동시를 흉내내어 지어 보던데요.

아이에게 최고로 인기였던 동시가 '그냥'이라는 작품입니다.

엄만 / 내가 왜 좋아? / -그냥....../ 넌 왜 / 엄마가 좋아? / -그냥......

이게 작품의 전문입니다. 그러니 얘가 금방 외워서 동생한테 써먹기도 하고 신나하더군요. 동시를 어려워하는 유치원생이나 초등 1,2학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동시집을 읽다 보면 스스로 동시를 짓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쉬운 동시 한두 편 냉장고에 붙여두고 아이와 함께 낭송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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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는 도시 꾸리찌바 - 페달을 밟아라 7
안순혜 지음, 박혜선 그림, 박용남 감수 / 파란자전거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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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환경 도시가 좋다고, 그래서 우리들이 노력을 해야 한다고 아무리 얘기해 봐야 잘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사실 엄마들도 환경 도시가 좋은 줄은 알지만 모델이 없기 때문에 선뜻 설명하기 어렵지요. 그럴 때 딱 좋은 책이 여기 있네요.

동화 속으로 들어가 환이와 함께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브라질의 꾸리찌바 시를 다녀오면 갑자기 그 도시가 어디에 있는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웬만한 지도에는 잘 나오지도 않는 작은 도시가 한 사람의 시장님에 의해 전세계가 주목하는 생태 도시가 되었으니까요.

보행자들을 최우선으로 하는 꽃의 거리와 폐전차를 이용해 만든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이 있어 공원에 나간 부모들이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도 있습니다. 조금 낡았다 싶으면 새로 지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나라에 비해 그들은 오래된 건물을 아름답고 쓸모 있게 예술 작품으로 되살리려고 애씁니다.  

이 도시의 나무들은 정말 행복할 것 같군요. 나무 보호 정책이 있어 나무를 시청에 등록해놓고 관리를 해준다네요. 정말 나무들의 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쓰레기 재활용도 이들은 남다르군요. 재활용 쓰레기와 식료품 혹은 학용품과 바꿀 수도 있답니다. 우리 동네에선 신문지를 묶어 내놓으면 재생 휴지를 주고 가는데 이것도 그곳에서 배워온 건 아닐까 싶군요.

서울의 색깔 버스 정책도 이 도시에서 배워 왔대요.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부러웠던 것은 3층짜리 미니 도서관이 초등 학교와 연결되어 있어 아이들이 언제든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3층짜리가 미니라니 그 나라의 보통 도서관 크기가 궁금하네요. 학교 가까이에 도서관이 있다면 이런 시도를 해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우리 딸아이가 책을 읽고 그림으로 그렸던 게 바로 학교와 연결된 도서관이었습니다. 많이 부러웠나 봐요.

동화가 쉽고 삽화가 예뻐서 2,3학년도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아이들은 환경 도시가 왜 중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환경을 위해 좋은지 알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도시를 본받아 조금씩 숨쉬는 도시를 꿈꾸는 도시들이 생겨나고 있어 정말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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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우산 2006-03-16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렇게 좋은 도시에서 살고 싶어요. ^ _^~!

노란우산 2006-05-18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도시에서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