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친정에서 농사를 짓기 때문에 농촌 체험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풀무 생협의 채소와 과일을 주문해 먹으면서도 그곳에 대해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내 고향 어느 한 자락과 비슷하려니 생각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던 일요일 오후 고속 도로를 달려 도착한 홍성의 저녁은 너무나 고즈넉했다. 마을 정보 센터에서 만난 사람들만 아니었다면 어느 산사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농사 짓는  집의 딸로 자랐지만 성인이 된 후 논은 스쳐 지나가는 또 하나의 풍경일 뿐이었다.  그리고 매일 밥상에 오르는 밥에 대해서도 부모님이 애써 농사 지은 결과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 논생물 조사 프로젝트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미 다 아는 건데' 라는 생각을 했다. 이틀째 되는 날 아이들과 함께 논두렁을 걷기 전까지는 말이다. 스쳐  지나쳤던, 다 안다고 생각했던 자연,  그 속에는 내가 모르는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 숨쉬며 한 포기의 벼를 키우고, 우리 환경을 지켜가고 있었다.

논둑에 들어서자마자 모두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짙은 초록색 벼에 매달려 있는 붉은 빛의 왕우렁이 알. 어찌나 빨갛던지 그 속에서 검은색의 우렁이가 나온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해 자꾸만 들여다보았다. 벌레 잡으러 간다는 말에 얼굴 먼저 찡그리던 딸아이도 쭈그리고 앉아 만지는 걸 보니 그 붉은 빛에 마음을 빼앗긴 게 틀림없었다. 딸과는 반대로 벌레들을 너무 좋아해 온집안을 곤충 사육장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아들의 얼굴은 어딘가에 있을 곤충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참개구리나 청개구리, 두꺼비도 실물을 만나 본 건 어린 시절 이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개구리를 손으로 덥석덥석 잡는 아들을 보며 '징그럽지도 않은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 나는 일곱 살 아들만도 못한 엄마였다. 하지만 물자라, 물장군, 장구애비, 송장헤엄치개, 물방개 등 늘 그림책에서 보아왔던 곤충들을 직접 확인하며 아이들은 물론 엄마인 나도 신이 났다. 알을 지고 다니는 물자라 수컷은 산란기가 지나면 볼 수 없다는데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았다. 

채집통 안에는 왕귀뚜라미 애벌레, 알집을 달고 다니는 거미, 여치, 사마귀, 노린재, 지렁이 들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서 보니 거미가 사마귀를 잡아먹고 있었다. 결국 힘센 놈이 약한 놈들을 다 잡아먹고 말았다. 좀전에 내 손으로 잡은 살아 있는 곤충을 먹어치우는 장면은 사실 좀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거미가 밉다고 툴툴대는 딸아이에게 '자연 속에서 늘 일어나는 일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해주었다.

농약과 비료를 치며 다수확만을 목표로 하는 논이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생물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싶다. 일 년 내내 식탁에 올라 특별하게 주목받지 못하는 음식 중에 하나가 밥이다. 그 밥이 되는 벼를 키워내는 논 또한 천 년 넘게 우리 곁에 있으면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왔다. 사람이 키우는 줄만 알았던 벼를 사실은 논 속의 수많은 생물과 자연이 키워낸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번 여행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들,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아이들 또한 백로가 느릿느릿 걸어가는 논둑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생물들을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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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7-26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에는 많은 곤충들이 있군요
아 왕귀뚜라미애벌레
생각만해도 끔직(사실 저 귀뚜라미가 가장 무섭고 싫거든요)

소나무집 2006-07-27 0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끔찍해하지 마세요. 왕귀뚜라미 애벌레는 꿈틀꿈틀하는 애벌레가 아니라 귀뚜라미 작은 놈처럼 생겼습니다.

씩씩하니 2006-07-31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자꾸만 그런 자연들에 관심이 커가는 것 같애요.,,밥상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도 최근인것 같구요...
아이들에게 더 없이 좋은 추억만들기 해주신것 같애요,,,
느림의 미학,,,,,,,,,,,,그걸 알면서 울 애들도 자라주었음,,,소망해봅니다...

소나무집 2006-08-0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은 어른을 따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안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