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1 개국 -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시작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 - 개국 ㅣ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4월

개국 편은 조선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 과정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고려가 망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주의 터줏대감인 이성계 집안이 강원 삼척을 거쳐 고려의 끝인 동북면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조선을 개국하기까지의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용비어천가에 등장하는 이성계 선대조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 100년을 보낸 과정을 보면 이성계의 조상들은 시국을 읽는 눈이 탁월했다. 몽고가 강할 땐 그쪽으로 가서 충성을 맹세한 후 원나라의 벼슬을 얻었고, 원나라가 쇠할 땐 다시 고려로 돌아와 벼슬을 얻었다. 결국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안사의 증손)의 도박은 성공해서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세울 수 있었다.

변방의 촌놈 이성계가 개경의 양반들을 물리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뛰어난 무술과 처세술, 그리고 옆에서 부추겨주는 정도전을 만난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는 억세게 운도 좋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북방의 새로운 파워짱이 되었고, 공민왕의 죽음으로 권력에 대한 꿈을 서서히 키워갈 수 있었다.

고려 말 공민왕이 죽은 후 우왕, 창왕, 공왕양의 혼란한 치세 과정과 정몽주를 비롯한 이성계의 혁명을 거부하는 고려 충신들의 이야기가 눈물겹다. 왕은 바뀌어도 왕조는 바꿀 수 없다는 정몽주파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정도전파의 대립. 이방원이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죽일 때 이미 권력에 대한 욕심을 품어 아버지 이성계와 갈등을 내포하고 있었던 점도 흥미로웠다. 

475년이나 이어온 왕씨 왕조를 무너뜨리는 과정도 현대의 쿠데타처럼 무지막지하지 않았다. 민심을 잃기 싫었던 이성계는 피를 보지 않고 아름답게 왕으로 추대를 받고 싶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권력이란 게 어디 그렇게 쉽게 주고 받을 수 있는 거라야 말이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은 눈치없게도 내놓으라고 할 때까지 버티고 있었다. 그래도 이성계는 희생을 최소화하려 했고, 고려 충신들을 공신으로 추대해 함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점도 요즘 정치인이 본받을 만한 일이지 싶다.

고려 말 충신 중 한 분이었던 원천석(고려의 멸망 과정에서 원주 치악산에 내려와 살면서 원주 원씨의 시조가 되었음)의 묘가 원주에 있고, 공양왕도 원주로 유배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하니 그동안 알고도 무심히 지나쳤던 고려 유적을 찾아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