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은 유난히 예뻤다. 붉게 물든 낙엽 몇 개를 주워 책 사이 끼워 본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가을을 느낄 여유도 없이 이 도시 저 도시 흘러다니던 내 정신에 여유가 생긴 걸까? 우수수 쏟아지는 단풍이 아까워 혼났다. 요즘 여린 나뭇가지를 하나하나 드러내며 가을이 다~ 간다.
남편이 오지 않는다. 완도에서 원주로 올 때 2년만 떨어져 살면 내려올 거라던 남편 회사는 2년이 다 된 지금도 오리무중이다. 와야 오는 거다. 혁신 도시 공공 기관 이전은 예산과 관련된 일이기에 가카의 신념이 바뀌길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그 와중에 평창 동계올림픽이 확정되었다. 다들 경사났다고 난리였지만 우리 부부는 안 되길 두손 모아 빌었다. 하지만 유치에 성공했고 우려했던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하룻밤 자고 일어날 때마다 집값이 올라가고 있었다. 서너 달 사이 수도권도 아닌 곳에서 전세가 3천~4천만원 정도 올랐다. 갑자기 몰려든 타지의 투기꾼들은 매매가도 듬뿍 올려놓았다. 집 가진 사람들은 웃었겟지만 전세 사는 나는 한숨만 나왔다. 집값이 요동치는 사이 새로 바뀐 집주인은 자기들이 들어온다며 이사 가라고 했다. 아~~~ 또 이사!!!!
어차피 이사할 거면 남편 있는 곳으로 가서 함께 살아야 하나? 어째야 하나? 여름 내내 결론 없는 고민만 하다 언젠가는 회사가 내려올 거라는 남편의 말에 힘입어 눌러앉기로 했다. 그리고 가을 내내 집을 보러 다녔다. 이사하는 게 지겨워 집을 사고 싶은데 집값이 갑자기 너무 올라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세를 구하려고 두어 달 발품을 팔았지만 마음 고생만 했다.
한 달 전부터 딸내미 학교 가까운 아파트를 찜하고 한 부동산만 열심히 드나들었더니 요즘 시세보다 좀 싸게 급매로 나온 아파트가 있다며 권해주었다. 급한 마음에 요모조모 따질 여유도 없이 그냥 사기로 했다. 대출 듬뿍 받아서.ㅜㅜ 남편이 없는 관계로 주중에 나 혼자 다니면서 일처리 다 했다. 그래서 집주인도 나고 대출 주인도 나다. 주말에 집에 온 남편이 웃으며 한마디 날렸다. "대출은 집주인이 갚는 거지?" 어쨌거나 이번에 이사하면 당분간 이사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휴~~ 삼주 후 이사 간다.
어제 서울에 다녀왔다. 대학 때부터 제일 친한 친구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다. 25일 떠난다기에 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려고 만났다. 아침부터 만나 수다 떨다가 같이 점심을 먹고 또 수다를 떨다가 지하철역에서 헤어지는데 눈물이 나와서는 끌어안고 한참 울었다. 친구 남편이 하던 사업이 잘 안 돼서 빈손으로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는 거라 서로 마음이 무거웠다. "25년지기 친구야, 가서 잘 살아라~ 자리 잡으면 꼭 보러갈게."
친구도 가고 가을도 간다. 내 생일이기도 했던 어제는 하루 종일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