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행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가장 오래(일주일) 머물렀고, 가장 행복한 기억이 많은 브라이스 캐년에 대한 기록을 꼭 남기라고,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아이들의 성화가 빗발치기 때문이다. 요즘 쉬고 있어 할 일도 없고. 브라이스 캐년은 자이언에 이어 남편이 한 달 반 동안 근무한 곳이라서 애정이 더 각별하기도 하고...
자이언에서 넘어온 다음 날부터 우리 가족이 몰입한 일이 하나 있으니 바로 먹는 일이었다. 한국을 떠나온 지 일주일 만에 모두 미국식 기름진 햄버거류의 음식과 달착지근한 음료수에 신물이 나 있었다. 특히나 완전 한국식 입맛을 가진 아들 녀석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햄버거는 싫어욧!"을 외치면서 굶주리곤 했으니..
브라이스 캐년을 알리는 이정표.
공원 측에서 우리 가족을 위해 특별히 내준 직원용 숙소. 널찍한 방이 세 개에 운동장만한 거실이 딸린...
브라이스 캐년에서 첫날 밤을 보내고 먹는 아침. 한국에서 가져간 깻잎, 간장만 넣은 미역국, 김, 오징어젓갈, 멸치랑 고추장, 그리고 현지에서 구입한 과일들. 한국에서 같으면 정말 별것 아닌 밑반찬 몇 가지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아침이라는 걸 남편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남편은 두 달 넘게 한국 음식을 구경도 못했으니 아마 황제의 식탁이 부럽지 않았으리라.
점심으로 먹은 신라면. 남편이 미국 월마트에서 한 박스 구입해다 놓고 아껴가며 먹고 있던 귀한 라면이었음.
3일째 되던 날 남편이 근무하는 사무실의 팀장 댄 아저씨를 초대했었다. 닭가슴살 요리도 하고 파프리카도 볶아가며 손님 접대를 위해 냉장고를 몽땅 털었다.
댄 아저씨가 라스베가스에서 구입한 거라며 가져다 준 갈비 양념(카레가루처럼 물을 부어 양념을 함)을 이용해서 만든 감자안심찜. 우리 아이들과 남편은 저 봉지 속에 갈비가 통째로 들어 있는 줄 알았다가 가루만 나오니까 실망을 어찌나 하던지... 물을 부으면 갈비가 부풀어오를 거라나. 어이없게 남편까지 그렇게 생각했단 말이지... ㅋㅋ
아이다호 감자를 이용해서 만든 피망을 넣은 감자조림. 우리의 강원도 감자랑 맛이 똑같았음.
현지 마트에서 구입한 유기농 달걀로 만든 김달걀말이.
칼로스 쌀로 만든 밥에 김을 넣어 만든 주먹밥. 사실은 먹을 음식 재료가 거의 떨어져가고 쌀하고 김만 넉넉하게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
식빵에 간단하게 크림치즈를 발라서 점심으로 한 끼를 때우기도 하면서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다.
한국에서 가져간 커피믹스. 브라이스 캐년이 해발 3천 미터가 넘어서 기압이 낮다는 걸 빵빵해진 커피 봉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없는 식재료를 가지고 나름대로 궁리를 해가며 음식을 만들어 먹던 그때가 그립다. 지금도 가끔 닭가슴살 요리를 해먹는데 그때의 행복한 기분은 안 느껴지더라. (2009년 4월 브라이스 캐년 국립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