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은 티미옌과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한국에 온 지 2년이 넘었지만 식당다운 식당에서 외식 한번 못해 본 그녀를 데리고 일식집에 갔다. 처음 먹어본다던 회를 아주 맛있게 먹던 그녀를 난 엄마처럼 언니처럼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이젠 선생님 안 온다는 말에 아이를 안고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티미옌. 헤어지기 전 그녀가 내민 편지 한 장 때문에 나도 또 눈물이 쑥~ 빠졌다.
달력 종이를 오려 직접 그림을 그려 만든 편지지.
내가 일 년 동안 만난 다문화 가족 외국인은 1, 2학기 포함해서 모두 7명. 이번 주로 올해 교육이 모두 끝났다. 올해 초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설레임으로 일을 시작하고 그녀들을 만나게 되었다. 일주일에 4일 하루 네 시간만 교육하면 된다는 생각에 가볍게 시작했는데 가볍지가 않았다. 초보 실력으로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고, 낯선 사람 만나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성격도 나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한 학기만 해보자며 시작한 일이 1년을 채웠다.
나를 일 년 동안 버티게 한 힘은 그녀들에게 있었다. 가난한 고향에서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꿈을 품고 결혼 이민자의 신분으로 온 그녀들에게 한국은 희망의 땅이었다. 하지만 물설고 낯설고 음식 설고 말까지 통하지 않는 한국에서의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희망보다 절망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았다.
대부분 한국에 오고 일 년 동안 그녀들은 두문불출하면서 보낸다고 했다. 밖에 나가는 것이 무섭기도 하지만 남편 등 시부모들이 밖에 나가서 외부인과 접촉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란다. 내가 그녀들의 집에 드나들면서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의 경우 한국에 적응하는 데 천지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간혹 결혼이민자들에 대해 부정적인 사례들이 언론에 나오기도 하는데 가족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한국인 며느리도 처음 시집오면 외국인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는데 그녀들은 진짜 외국인이다. 그리고 그녀들의 나이 이제 겨우 열여덟에서 스물을 갓 넘겼다. 내 딸이라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안쓰러운가! 어린 나이에 한국에 와서 살아주는 것만도 고마워해야 할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시어머니들은 며느리이길 원하고 나이 많은 남편은 아내이길, 그리고 빨리 한국인처럼 되길 원하고...
한국어를 빨리 배우라고 재촉은 해도 아내 나라의 말을 배우려드는 남편은 단 한 명도 없는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말이 좋아 다문화가족이지 사실은 지독하게 이기적으로 한국 문화만을 강요한다.
그녀들이 며느리나 아내라는 생각 이전에 진짜 외국인이라는 생각으로 도와주고 이해해주어야 할 것 같다. 그녀들의 미래는 물론 우리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2년이 되어도 가족이나 자주 가는 슈퍼 아줌마 외엔 한국인과 말 한마디 해본적이 없다는 그녀들이다. 이웃에서 그녀들을 만나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말 잘하네요." 그 정도면 충분하다. 친절하고 좋은 한국 이웃을 만날수록 그녀들의 한국 생활이 덜 고달프고 행복해지고 싶은 그녀들의 삶에 희망도 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그녀들과 일 년 동안 함께 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나는 한국어 몇 마디를 가르쳐주고 이야기를 들어준 것뿐이지만 그녀들은 내게 크고 깊은 사랑을 가르쳐주었고, 동남아 어느 구석진 곳에 있거니 했던 그녀들 나라에 대한 존재감도 내 의식 속에 심어주었다.
누구에게나 더 나은 미래를 살고 싶은 꿈이 있다. 보다 나은 미래을 꿈꾸는 다문화 가족 그녀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동안 함께 했던 노은 킴리(캄보디아), 마오 루윈(중국), 나지나린(필리핀), 티미옌(베트남), 당티미안(베트남), 누엔티항(베트남), 레티김탄(베트남), 모두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