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13년에 건립을 시작한 이 행궁은 정조가 13차례 아버지의 묘를 참배할 때마다 머물렀고, 사도세자와 동갑이었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 잔치를 열어 드린 곳이다. 효성이 지극했던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 가까이 있는 화성 행궁에서 아버지 회갑연을 겸한 어머니의 회갑연을 열어 드린 것.
정조의 화성행차도. 행궁 위에 서장대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지금은 숲이 우거져서 서장대 지붕만 살짝 보였다. <아하! 그땐 이런 문화재가 있었군요 - 주니어김영사>에서.
서장대에서 줌~으로 찍은 모습인데 그림 속의 행궁보다 훨씬 규모가 작아 보인다. 건립 당시에는 600여 칸으로 정궁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고. 하지만 일제 시대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인해 낙남헌 한 곳 빼고 전부 사라졌다가 1993년에 현재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화성 행궁의 정문 신풍루 앞. 신풍이란 정조대왕의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 정조의 뜻대로 이곳으로 수도를 옮겼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행궁 모형을 보고 있는 아이들.
정조가 어머니의 환갑 잔치를 열어 드린 봉수당 앞마당.
봉수당이라는 이름은 '만년(萬年)의 수(壽)를 받들어 빈다'는 뜻으로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장수를 기원하며 지었다.
<봉수당진찬도>. <노빈손 정조대왕의 암살을 막아라>에서.
뒤주가 전시되어 있어서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잠깐 들어가본 딸아이의 소감은 "깜깜하고 답답하고 죽을 것 같애요." 당파 싸움 때문에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이했던 사도세자는 그런 곳에 8일이나 갇혀 있었으니... 그때 정조의 나이 11살, 지금 우리 아들이랑 나이가 같다.
화성행차도가 그려진 건물 벽.
화성 행궁이나 화성을 자세히 설명해주는 안내문이 없어서, 아니 있었지만 좀 부실해서 집에 와서 공부 제대로 했다.
*** 참고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