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친정에 가서 보내고 왔다. 오랜만에 명절을 친정에서 보내려니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아 어색한 구석도 있었지만 이미 제 아빠보다도 키가 커버린 조카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중3이 되는 큰조카는 할머니댁에 있는 1박 2일 내내 잠만 자서 나를 안쓰럽게 했다. 3년 전 대여섯 살씩 차이나는 사촌들하고 마당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아주던 형이 아니었다. 학원에 가서 밤 12시가 넘어야 오고 하루 수학만 6시간을 공부한다고. 어떻게 그런 살인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건지... 세배를 받은 후 조카에게 공부 슬슬 하라는 덕담을 던져줘서 올케에게 눈흘김까지 당했다.
아직은 공부보다 놀릴 궁리를 더하는 나에게 올케가 전해주는 도시 아이들의 공부는 이해가 안 되는 면도 있었지만 내가 너무 아이들을 방치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덕분에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아이들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좀 나누었다.
"잘 놀면 됐지"라고 생각하는 남편을 설득시켜 우리도 열공시키는 엄마 아빠가 되어 보자는 결론으로 몰아가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이 한마디 거들었다.
"엄마, 공부를 한옥 짓는 것에 비유하면요, 초등학교는 기초 바닥 공사를 하는 거예요, 중학교는 기둥을 세우는 거구요, 고등학교는 지붕을 얹는 거구요, 대학교는 벽을 채우고 집을 완성하는 거예요. 한꺼번에 지으려고 하면 튼튼한 집이 안 돼요."
아니 아니, 이렇게 옳으신 말씀을 어디서 듣고 하나 그래!! 영어 학원도 보내자, 수학도 심화 학습을 시키자, 제2외국어도 시키자! 하고 있다가 아들한테 한 방 먹은 꼴이 되었다. 공부하기 싫은 아들의 머리 짜내기일 수도 있지만 구구절절 옳다는 생각에 기초 공사가 뭐냐고 물어보니 잘 놀고 잘 먹고 책 많이 읽는 거라고.
그야말로 지금처럼 살겠다는 얘기로구만. 남들 다 하는 정도의 공부도 안 시키고 산 덕에 요즘 내 머릿속이 시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