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늦은 아침을 먹고는 숙승봉에 다녀왔다. 숙승봉은 완도에 있는 오봉산(다섯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라서 붙은 이름)의 한 봉우리다.
저 뾰족하게 솟아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올라간 숙승봉이다. 완도의 산은 육지에 있는 산보다 낮은데 올라가다 보면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남편은 그 이유를 보통 산의 높이는 해발로 따지는데 완도는 바로 바다에서 산이 시작되기 때문에 해발이 고스란히 산의 높이가 되기 때문이란다.
664미터의 상황봉은 오봉산 중 가장 높은 봉우리로 재작년 가을에 한 번 올라갔다 온 적이 있다. 만만치 않은 등산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잘 안 알려졌지만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권하고 싶은 코스다.
정오 무렵이었는데 산길이 아주 컴컴했을 정도로 동백나무랑 붉가시나무를 비롯한 난대 상록수가 울창하다. 그래서 겨울에도 푸른 산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상에 오르기 전 숲길 사이 뻥 뚫려 있는 곳으로 몇 발짝 옮겨보니 이렇게 멋진 풍경이...
불목리 <해신> 드라마 세트장(신라방)도 한눈에 보이고.
드디어 정상이다. 바위 끝에 앉아 있는 아들이 아슬아슬하네. 누군가 쌓아놓은 돌무더기도 예쁘다.
461미터 숙승봉을 알리는 표지석. 숙승봉(宿僧峰)은 스님이 누워서 자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이 정말 아름답다. 상황봉에서는 제주도쪽 넓은 바다가 보였는데 이곳은 육지 사이의 바다와 작은 섬과 마을이 보이니 더 좋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면 믿을까?
바다 위에 떠 있는 아기자기한 작은 섬들이 내가 다도해에 살고 있다는 걸 실감나게 해준다.
숙승봉에서 바라다 보이는, 대흥사를 품은 해남 두륜산. 하늘과 바다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이 어쩌면 그렇게 잘 어울리던지.
바다 건너 멀리 보이는 마을은 다산초당이 있는 강진이다. 산에 올라오니 완도, 강진, 해남이 한눈에 다 보인다.
숙승봉에 오로지 우리 가족만 있다고 신나하고 있는데 이 동네가 고향이라는 젊은 아저씨 두 분이 올라왔다. 덕분에 이렇게 가족 사진도 찍었다. 모자 그늘에 가려 표정을 알 수 없는 사진이지만...
느릿느릿 천천히 걸어 왕복 세 시간이 걸린 행복한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