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간 지 2주 만에 남편이 내려왔다. 금요일 밤 11시에 도착하는 남편을 맞이하러 아이들과 야단법석을 떨며 터미널로 나갔다. 반갑고 보고 싶었는데 내가 남편에게 한 말은 고작 "배 고프겠다."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먹었다는 말에 밥준비도 안 해놓았으면서...

집으로 들어오기 전에 아파트 앞에 있는 생맥주 집에 들러 맥주 한 잔씩 했다. 맥주집에서 바라본 남편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입술 주변이 부르터서 헐었고, 얼굴도 많이 핼쓱해 보여 서울살이가 만만치 않구나 싶었다. 남편은 마누라 잔소리를 못 들어서 그렇게 되었단다. 보약 먹어야겠다고 했더니 세상에서 가장 좋은 보약은 마누라 잔소리라면서 나를 웃겼다. 또 마음이 짠해진다.

남편은 일이 힘든 건 괜찮은데 시끄러워서 죽겠다고 했다. 사무실만 나서면 시끄러워서 귀가 멍멍해질 지경이라고. 서울에서 처음 살아본 것도 아닌데...  완도 내려와 사는 2년 8개월 동안 조용한 시골 분위기에 익숙해진 탓이리라. 

남편은 출장이 있다며 일요일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하루 동안 현관에 놓여 있던 남편의 구두를 보며 든든했는데 그 자리가 또 비었다. 미국으로 떠나 보낼 때도 그렇지 않았는데 자꾸만 마음이 허전한 건 왜일까? 가을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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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9-09-07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짠해요. 너무 시끄러운 서울. 완도와는 천지 차이일 것 같아요. 그래도 또 금세 익숙해질 테죠? 그게 또 어쩐지 서글프긴 해요. 가을 탓인가봐요.^^

소나무집 2009-09-09 09:49   좋아요 0 | URL
그 익숙해짐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것 같아요.
완도를 떠나야 할 날이 다가오니까 완도의 좋은 점이 점점 더 많이 보이네요.

하늘바람 2009-09-07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참 멋지고 참 든든한 남편 같아요 그래서 부럽고 멋집니다,
가장 좋은 보약이 마누라의 잔소리라니.
그런 멋진 말이 어디 있대요.
많이 힘드신가봅니다
잔소리 많이 해 주셔요^^

소나무집 2009-09-09 09:50   좋아요 0 | URL
님, 고마워요.
그리 뭐 든든한 늒미은 아니에요.
나이가 같다 보니 제가 늘 엄마처럼 누나처럼 책겨주게 되거든요.

순오기 2009-09-07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현관에 놓인 구두~ 한편의 시 같아요.
집밥이 제일인데~~ 몸도 마르신 분이 시끄러움까지 감당키가 버거운가봐요.
과일즙이나 보약을 해드려야할 듯...

소나무집 2009-09-09 09:51   좋아요 0 | URL
시 한 편 쓸까요?
구두가 사라진 자리가 정말 뻥 뚫려 있는 듯했어요.
몸은 말랐지만 마라톤으로 다져져서 건강하답니다.

순오기 2009-09-09 22:57   좋아요 0 | URL
예에~ 시 쓰세요.^^
나는 시 쓸줄은 몰라도 볼 줄은 알아요.ㅋㅋㅋ
우리 뚱띵이 신랑도 마라톤에 중독돼서 한 3년 전국을 쫒아다니더니 무릎에 무리가 와서 접었어요. 거의 백킬로 나가거든요.ㅜㅜ

꿈꾸는섬 2009-09-0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이랑 떨어져 지내는거 전 좀 자신없어요. 허전한 마음 이해되요.

소나무집 2009-09-09 23:31   좋아요 0 | URL
저는 자주 떨어져 봤는데도 허전하더라구요.
아마 가을 탓인가 보다 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