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에는 유난히 문인들이 많은데 가장 유명한 두 분이 소설가 이청준이랑 한승원이다. 아침에 나설 때는한승원 선생이 있는 해산토굴이랑 이청준 선생의 생가 두 군데를 모두 가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놀며 놀며 다니다 보니 시간이 늦어져 이청준 생가에만 다녀왔다. 해산토굴은 얼마 전 순오기 님 덕분에 구경을 했고, 늦은 시간에 가면 싫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다음으로 미루었다.
슬로시티 유치면은 장흥군 제일 꼭대기에 있고 이청준 선생의 생가는 장흥군의 가장 남쪽에 있어서 장흥군 일주를 한 셈이 되었다. 작년 여름 이청준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뉴스와 함께 장흥군에 생가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장흥군 회진면 소재지를 벗어나니까 바로 생가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왔다.
생가보다 먼저 만난 <천년학> 영화 세트장이다. 소설도 영화도 못 보았는데 지루했다는 이야기를 좀 들었던 것 같다. 이곳에 갔던 날은 집에 가서 영화를 찾아 보아야지 했는데 아직도 못 보고 있다.
세트장 앞에서 바라본 갯벌이 보이는 풍경.
작은 소나무 두 그루가 <천년학> 세트장을 지켜주는 느낌이 들었다.
세트장을 나서서 갈림길을 만났는데 더이상 생가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오지 않았다. 그물을 만들고 있던 동네 어른들한테 물어보고 알려주신 대로 올라가다 만난 진목마을 이정표가 반갑다.
남도인의 한과 소리를 담아낸 소설가 이청준, 그가 태어난 마을이 맞나 보다. 하지만 우리 현대 문학을 이끈 소설가가 태어난 마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마을에 기념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 안내판 하나가 그를 알리는 것의 전부였다. 빛이 바래고 훼손된 사진을 보니 마음이 안 좋다.
마을 회관 앞에 차를 세우고 골목길로 들어서니 생가를 알리는 작은 푯말이 나왔다. 이청준 선생은 2005년 장흥군에서 생가를 사들이기 전까지는 한 동네 살면서도 이 집에 발길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 번 더 왼쪽 골목으로 꺾어 들어서야 선생의 집이 나온다. 집들이 들어서기 전에는 이 길 담장이 예뻤다는데... 지나다 보니 왼쪽 담 문이 열린 곳에서는 소가 살고 있었다.
생가 마당. 장독대도 보이고 작은 마당엔 고구마도 심어놓아서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만 그리 넓은 마당은 아니다. <눈길>에 나오는 그 넓은 마당은 작가의 상상이었을까?
마당에서 바다가 훤히 보일 줄 알았는데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산에 가려져 바다는 잘 보이지 않았다.
마당가에 이청준 선생을 알리는 안내판이 집이랑은 정말 안 어울리는 모습으로 서 있다.
생가 앞 골목에서 만난 동네 아저씨인데 생가에 들르는 사람들을 위해 안내도 해주신다고 했다. 이 집이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다섯 칸 집일 정도로 선생이 어릴 적엔 부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집을 돌보지 않고 술을 좋아하다 보니 가산을 탕진했고, 광주로 중학교를 가면서 고향 마을을 떠났고, 고등학교 때는 이 집마저 남의 손에 넘어갔다고 한다. 1979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쓴 <서편제> <눈길> <축제> 등은 이 마을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이청준이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냐고 자꾸만 물으셨다. 고향을 떠났던 그가 소설을 쓴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오랫동안 고향을 찾지 않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냥 편한 동네 형님쯤으로 생각했지 유명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단다. 유명하다고 해서 소설들을 읽어 보았는데 너무 어렵더라고...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선학동 나그네> 때문에 요즘은 고등학생들이 문학 기행을 많이 온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청준 선생 덕분에 마을이 알려져서 좋은데 장흥군에서 너무 홀대하는 느낌이 든다며 섭섭한 마음을 드러내셨다. 강의실까지 지어준 한승원 선생과 비교하면서...
방안에 들어가 보니 소박한 모습의 유리장 안에 선생의 소설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방바닥에 있는 석유등이랑 재봉틀, 화로 같은 것은 선생이 쓰던 건 아닐 것 같고 어디서 가져온 거겠지?
생가에서 2킬로쯤 떨어진 언덕배기에 있는 선생의 묘소다. 위 묘소는 어머니고, 아래 두 묘소 중 왼쪽이 선생의 묘소다. 오른쪽은 선생의 아내를 위한 가묘라고 한다. 비석 하나 없어서 우리 문학계를 대표하는 소설가의 묘소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묘소 앞에 서 있는데 자꾸만 쓸쓸해지는 건 왜일까?
묘소 앞에 넓은 들이 있고 그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다. 이 모든 곳이 선생의 문학적 배경이 되었겠지... <당신들의 천국> <축제> 등 이미 가물가물해진 지 오래된 그의 소설들이 다시 읽고 싶어진다. 그리고 소설 속에 표현된 그의 고향을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