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네 집에서 아침 일찍 서둘러 나온 건 마라톤 때문이었다. 남편은 한국에서도 기회가 될 때마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곤 했다. 그런데 자이언에서 근무할 때 100주년 기념 마라톤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참가 신청을 해놓았단다. 마라톤 때문에 마누라 구박도 참 많이 받았건만 미국에 가서까지 자신의 취미 생활을 즐기는 남편이 왠~지 멋쟁이처럼 보였다.
올해는 자이언 국립공원을 미국 정부에서 관리하기 시작한 지 10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자이언에서는 3년 전부터 기념 마라톤을 했는데 97주년에는 7킬로, 98주년에는 8킬로... 이런 식으로 해마다 1킬로씩 늘려가며 하는 펀(fun) 마라톤이었다. 그래서 100주년인 올해는 10킬로. 국립공원 홍보 겸 해서 하는 대회인데 멀리서 찾아오는 매니아도 꽤 된다고 했다.
홈페이지 행사 안내문에 남편을 의식한 듯 '올해는 한국을 비롯한... '이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랑 다른 것은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하는 행사인데 홍보물이라고는 달랑 저 플랭카드 하나뿐이었다.
골인 지점 근처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아이들. 자이언 국립공원에는 잘 닦아놓은 관광 도로가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돌아오는 10킬로가 오늘의 코스.
한 무리의 선두 그룹이 지나가고 드디어 아빠가 나타났다.
하지만 손만 한 번 흔들어준 아빠는 쌩하니 아이들을 앞서 달려갔다. "아빠, 같이 가요."
카메라가 남편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골인 장면은 찍을 수가 없었다. 국립공원 직원들로부터 완주 메달을 받고 있는 남편. 메달을 받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 10킬로가 아닌 42.195킬로를 완주한 것처럼 행복한 얼굴이었다.
"완주 메달 하나 또 추가했구려. 하지만 요건 미국까지 와서 받은 거니까 아들에게 가보로 물려주구려. 아이들이 앞서서 들어간 사람들을 모두 세었는데 17등이랍니다." 5등 안에 들 수 있었는데 오랫동안 김치찌개랑 된장찌개를 못 먹어서 체력이 떨어진 탓이라나...
가족들이 다 함께 참여해서 격려해주고 축하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뚱보가 많은 미국이지만 달리는 사람들은 남녀 모두 늘~씬했다.
마라톤을 마친 남편은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한다며 서둘렀다. 이 사람이 누구냐? 자이언 국립공원에 들어오는 기부금을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남편은 자이언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공원에 300달러를 기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금액이 좀 되다 보니 국립공원 측에서 남편에게 감사를 표시한 것. 길에 서서 감사장과 기념 메달을 받았다. 그 돈 나한테 기부했으면 한 1년은 바가지 안 긁었을 텐데...
메달을 걸고 계신 걸 보니 이 분도 마라톤 완주를 하신 모양. 사진은 저 양반의 부인이 찍어주었다. 워낙 기부 문화가 일반화된 미국이지만 동양의 아주 쬐끄만 나라에서 온 남자가 박물관 복원 비용에 쓰라며 돈을 내놓은 게 기특해 보였는지 내내 칭찬을 해댔다.
남편에게 들은 말인데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잘 알 거라는 생각은 우리의 착각이란다. 대도시에 사는 미국인들이나 우리나라에 대해 좀 알지 이런 시골에서는 코리아 하면 제일 먼저 북한을 떠올리고 다음이 올림픽 정도라고 했다. 한국은 미국인들에게 동양의 많은 나라 중 하나일 뿐이라고...
감사를 전하는 내용과 어디에 쓰일지를 설명하는 내용인 듯.
자이언 국립공원 100주년 기념 메달.
아무튼 영어도 제대로 못 하면서 별 일을 다 했습니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