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돌아가는 흑두루미 이야기
일요일에 여수에서 직원 결혼식이 있었어요. 완도에서 여수까지 세 시간. 정말 가기 싫었어요. 지난 주에 친정 갔다 온 여독도 다 안 풀렸는데... 혼자 가기 싫은 남편이 순천만에 흑두루미가 와 있다고 아이들을 꼬시는 통에 저는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네요.
작년 봄에 가본 초록색 갈대가 있는 순천만하고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더군요. 그리고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정말 깜짝 놀랐어요. 주차장엔 관광 버스가 수십 대였고, 그 넓은 갈대밭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어요. 편의 시설도 많이 생겼구요.
들어가는 입구에 새로 생긴 찻집입니다. 추울 땐 여기 들어가서 따뜻한 차 한 잔 하면 좋겠다 싶더군요.
이 기차를 타고 갈대밭을 한 바퀴 돌 수 있대요. 피곤한 참에 편안하게 한 바퀴 돌고 싶었는데... 결혼식장에 갔다가 네 시 넘어 오는 바람에 표가 매진돼서 못 탔어요.
요게 갈대랍니다. 절대 억새랑 헷갈리지 마세요.(갈대는 주로 염분이 있는 물가에서 자라고, 억새는 야산이나 들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갈대꽃(실제로는 민들레 홀씨와 비슷한 상태의 씨앗)이 많이 진 상태라서 좀 허전해 보이는 갈대밭이었어요.
철저한 우리 서방님은 사무실에서 필드스코프(조류 관찰용 망원경)랑 쌍안경까지 빌려왔더군요. 요걸로 보니 점처럼 보이던 흑두루미가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였어요. 털색깔이랑 무늬까지 보이던 걸요. 우리 딸은 요걸로 새를 관찰하고 나서 조류학자가 되고 싶은 꿈이 하나 더 생겼을 정도랍니다. 딸아, 멋지기는 하다만 돈 안 되니까 그 꿈 접어라잉~
아들도 신이 나서 쌍안경으로 뭔가를 보고 있네요. 망원경으로는 주로 새를 보았어요. 오리, 도요새, 갈매기, 왜가리, 흑두루미 등. 망원경으로 보니까 그냥 스쳐 지나갔을 생명들이 다 보이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적금(?) 들어서 망원경 하나 장만해야 할까 봐요.
흑두루미는 세계적으로 2천 마리 정도밖에 없어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귀한 몸인데 올해는 순천만으로 250마리 정도가 날아왔다고 하네요. 나머지는 모두 일본으로 날아가서 겨울을 보낸대요. 흑두루미는 따뜻하고 먹이가 많은 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시베리아로 날아가서 새끼를 낳는대요.
순천만의 갯벌과 주변의 논은 흑두루미에게 풍부한 먹이를 제공하기 때문에 해마다 겨울을 보내러 오는 개체수가 늘어가고 있대요. 좋은 일이지요? 어쩌면 순천만 갯벌도 국립공원으로 지정될지도 모른대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요.
아들이 찍은 오리 사진.
도요새랑 갈매기가 보이네요. 망원경으로 보니까 도요새(남편 말에 따르면 마도요)가 구멍 속에 부리를 넣고 먹이 사냥하는 것까지 다 보여서 정말 신기했어요.
요 갯벌에 짱둥어랑 게가 아주 많이 산대요. 작년 봄에 갔을 때는 짱둥어랑 게도 많이 보았는데 추우니까 모두 뻘 속에 들어갔는지 하나도 안 보였어요. 짱둥어는 갯벌 속에서 겨울잠을 잔답니다.
날도 흐리고 썰렁했지만 새를 관찰하는 재미에 즐거운 하루였답니다.
나무 사이로 넘어가는 해가 아름답지요?
사실 저는 완도를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예요. 너무 시골이다 보니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고 남편에게 투덜대곤 해요. 하지만 이렇게 한두 시간만 투자하면 멋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매력에 그럭저럭 살고 있답니다.
서울 살면 평생 한 번 가볼까 말까 한 곳을 2년 사이에 정말 많이 가 봤어요. 요 대목에선 남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까요?